신전에서 자랐지만 사후세계를 믿지는 않았던 그에겐 오히려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놓인 힐데베르트는 이것이 죽음으로 비롯된 인과관계가 아닌 자각몽에 가까운 꿈으로 치부하는 것이 좀 더 현실 성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렸다. 다만 꿈에서의 그는 육체의 소실로 인한 어떠한 결핍증 세를 겪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육체가 없었기에 물리적 인 힘을 가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물체를 잡을 수 없었 으며 폐가 비었기에 공명할 수 없어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온도조차 느낄 수 없었기에 계절을 잃은 힐데베르트는 알 수 없는 시간 속을 표류했다. 영혼이 된 힐데베르트는 원하면 벽을 뚫을 수 있었고 하염없이 아래로 추락하여 땅 밑 어둠 속으로 파묻힐 수 도 있었다. 한참을 육체가 있을 시절엔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을 저질러보던 힐데베르트는 문득 제 사람들이 생각 이 났다. 죽기 전 그가 눈에 담았던 자들. 거기까지 생각했을 무렵, 갑작스레 그들을 만나봐야겠다 는 거대한 충동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들을 찾는 것은 그 리 어렵지 않았다. 흐르는 발길을 따라 가다보면 쉬이 만 날 수 있었기에.
아미. 저 정말로 죽었나요? 그녀를 만나자마자 힐데베르트가 가장 먼저 묻고 싶은 말이었다.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손이 없었기에 힐데베르 트는 그녀의 주변을 한참 맴돌다가 떠나는 것으로 대신하 였다. 힐데베르트가 다음으로 찾아간 사람은 예현이었다. 변함 없이 창백한 얼굴, 그리고 그 아래로 단정하게 다물린 정 장 차림. 평소와 같은 차림새였지만 힐데베르트는 왠지 그 것이 상복 같다고 느꼈다. 슬픔을 참아내는 아이의 곁을 한동안 맴돌던 힐데베르트는 이어서 리카르도, 카이로스, 배저의 시작부터 함께 했던 동기들, 연이 닿았던 수많은 사람들을 찾아가 한참을 그들 곁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이 제 다음 목적지를 잃은 힐데베르트는 잠시 고민을 한다. 최윤. 망설이는 제 모습에 힐데베르트는 괜스레 웃음이 났다.
왜냐면 자신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에. 힐데베르트는 최윤을 사랑한다. 그랬기에 그가 자신의 상실에 있어 여타 다른 인간들처 럼 슬퍼하기를 바랐다. 하여, 두려웠던 것이다.
제 상실이 그에게는 큰 일이 아니었을까봐.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힐데베르트는 자신의 이기심 또 한 깨닫는다. 그를 사랑하고 존중했다면 그의 본질적인 모 든 것 또한 이해해야 했기에. 그리하여 영혼이 된 힐데베르트는 최윤을 찾아갔다.
내심 죽은 자신을 살리겠답시고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 은 연구라도 하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그의 일상은 생전의 힐데베르트가 지켜봤던 것과 별 반 다를 게 없었다. 정해 진 시간에 일어나고 규칙적인 식사, 운동, 업무의 루틴. 그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힐데베르트는 제법 오랜 시간을 들여 그의 곁에 머물렀다.
영혼이 된 힐데베르트는 처음으로 상실감을 느꼈다. 머 지않아 그 틈사이로 자신의 영혼은 서서히 흩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었던 힐데 베르트의 바람이 만들어낸 마지막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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