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시절 1
2 나의 부모님 2
3 나의 청소년기 5
4 나의 청년기 7
5 나의 결혼시절 8
6 나의 중, 장년기 11
7 우리집 반려견 강아지 (레오) 12
8 나의 노년기 14
1. 나의 어린시절
심 훈 구
나의 어린 시절은 울산 큰집에서 자랐다. 어머니께서 몸이 아프셔서 외갓집에서 요양을 하고 나와 동생은 큰집 에 맞겨 졌다. 큰집은 울산에서 큰 과수원(배)을 했다. 큰 기와집 본채와 왼편에 사랑채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큰 창고가 있었 으며, 사랑채의 왼편에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는 작은 연못이 있 었다 집 뒤편으로는 꽤 규모가 큰 과수원이 있었고, 그 당시 그 지역에 서 비교적 부유한 편이었다. 학교(초등)에서 친구들과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는데 친구들은 대부분 꽁보리밥에 그 속에 고구마를 섞은 밥이었는데 나는 보리밥이 조금 섞 인 쌀밥에 멸치볶음 반찬 이였다. 그 당시 학교 교실이 부족해서 오전 오후반으로 교대로 다닌 것이 기 억난다. 오후반 일 때는 학교 가는 길에 친구들과 놀다가 양지바른 논 두렁에 앉아 도시락 먹었다. 정말 꿀맛 이였다. 그리고 등에 맨 책보따리 속 빈도시락의 숟가락 부 딪치는 소리가 “철거덕 철거덕” 거리며 학교로 뛰어갔다. 미국 원조 분유로 학교에서 큰 가마솥에 우유를 끓여 나누어 주었고. 방과 후에는 줄을 서서 빈 도시락에 분유를 나누어 받았다. 그 분유를 밥할 때 밥 위에 계란 찌듯이 찌면 돌 처름 딱딱한 우유덩어리가 되는 데, 당시 별다른 간식이 없던 터라 그것을 깨어서 사탕 처름 빨아먹었 던 기억이 난다.
겨울에는 교실 난방을 위한 땔감(솔방울, 나무)을 구하려고 전교생이 산에 갔는데 그때 산토끼도 잡고 눈밭에서 눈싸움을 하면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다.
1. 어린시절 (맨왼쪽 나) 2. 초등학교 1학년 3. 오른쪽 두 번째 나
2. 나의 부모님
아버지는 울산이 고향으로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어셨고 아들만 5명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형제 중 유일하게 공부를 잘한 아버지는 울산농 고를 졸업하고 경성법학전문학교(현 서울법대 전신)를 졸업하고, 이어서 당시 신설된 경찰전문학교(현 경찰대학 전신)에 입학하여 1회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위로 임관하여 경찰전문학교 조교로 근무를 시작 하였고, 26세에 경감이 되었다. 요즈음으로 치면 사법고시에 합격한 젊은 판검 사 처름 그 당시 장래가 촉망되는 엘리트 신랑감 이였다. 어머니는 부산에서 부자집 딸로 태어났다. 부산남성여고를 졸업하고 시 집 갈 생각이 없는데, 외할아버지께서 좋은 실랑감이 있으니 결혼하라 고 하자 어머니는 좀 있다가 결혼하겠다고 반대 하였으나, 외할아버지 는 딸 중에 하나는 법을 전공한 경찰계통의 사위가 있어야 겠다고 생 각하여 결혼할 것을 강하게 강요하여 어머니는 19세 때, 26세의 아버 지와 결혼하여 서울에서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50. 4. 3 내가 태어났고, 3개월 후 6.26 전쟁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전투경찰 중대장으로 공비토벌 과 6.25 전투에 참전한 역전의 용사로 화랑무공훈장, 대통령방위포장 등을 수훈 받았고, 그 후 한국일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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