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원도심이야기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Contents
09 발간사 이명남 당진문화재단 이사장 10 축 사 김홍장 당진시장
11 축 사 김기재 당진시의회 의장 12 서 문 왜 원도심인가 - 문옥배 당진문화재단 사무처장
Section 1 Interview
박윤식 전 당일양복점 대표 Photograph story 원도심을 추억하다
Section 2 Interview
홍윤표 전 당진시의회 전문위원
Photograph story
원도심을 기억하다
Section 3 Interview
Photograph story
원도심은 스스로 살아있다
Section 4 Interview
Photograph story
이야기는 계속된다
손인교 전 당진새마을금고 이사장
이정진 더불어민주당 당진지역위원회 고문
136 작가의 말 기억의 역사, 역사의 기억 - 우현선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이사
발간사
<당진 원도심 이야기>를 발간하며
당진문화재단 이사장 이 명 남
당진문화재단은 지난 2년간 ‘당진원도심 문화공간읽기 사업’을 통해 원도심의 도시 재생과 문화자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전환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본 재단은 지역 민이 지속적으로 원도심의 문화공간에 관심을 갖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와 기 반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사업의 성과물 중 하나로 <당진 원도심 이야기>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당진 원도심의 뿌리를 찾고 기록을 남기고자 기획된 <당진 원도심 이야기>에는 1960 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원도심의 건물, 행사, 사람 등에 관한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더불어 원도심이란 공간에서 동시대를 함께 겪어 온 다양한 직업군의 주민들이 간직한 문화적 기억을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당진 원도심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삶과 나아가 우리의 삶을 기억의 역사로 되돌아 보며 현재 원도심 문화로 녹여져 있는 일상의 건물 그리고 보존과 개발이란 양면의 가 치를 재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미래 자원적 가치로서의 원도심 문화재생을 함 께 재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아가 지역 원도심의 객관적 자료로 활용되길 바랍니다. 책 발간을 위해 옛 사진을 내어주시고 구술 인터뷰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 씀 드립니다.
2018년 당진문화재단의 “ 당진 원도심 이야기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당진시장 김 홍 장
당진시의 과거와 현재를 한 권의 책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뜻 깊은 경험입니다. 그동안 원도심 곳곳의 이야기를 캐내고, 캐낸 이야기를 다시 잘 꿰는 역할을 해주신 여러분에 게 감사드립니다.
원도심 주민들의 기억과 사진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아 우리의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와 미래의 우 리를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알고 있듯이 스토리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생생한 현장이 담겨있습니다. 이러한 스 토리는 도시에도 적용됩니다. 감동과 여운을 남기며 도시의 이야기를 전하는 능력은 도시의 경 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스토리 발굴과 함께 그동안 우리가 발굴하고 다듬은 원도심의 스토리를 어떻게 도시 마케팅에 사용할 것인지 고민하고, 또한 피드백을 통해 스토리의 완성도를 높여 나가야 할 때 입니다. 이렇게 완성되는 원도심 스토리 북은 우리 시민들의 것뿐 아니라 다른 도시 주민들에게도 우리 시의 발자취와 우리 시를 이해하게 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정보 전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만큼 준비하는 작업이 그리 쉽지 않았을 거라 쉬이 짐작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 시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귀중한 작업이 계속해서 진행되어 한권한권더 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시 한 번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 당진 원도심 이야기 ”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당진시의회 의장 김 기 재
먼저, 이 번 원도심 문화공간 활성화란 주제로 스토리 북 발간에 애써주신 관계자 여러분 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사진을 인내의 예술이며, 순간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사진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서는 모든 조건이 일치 될 때까지 긴 기다림을 이겨내고,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야하 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진집을 통하여 그 시절 우리지역의 숨결이 배어 있는 한 장의 빛바랜 사진을 보 면 잊었던 추억과 감동을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당진 원도심 이야기”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우리 시민 여러분 또한 예전 우리 원도심의 추억을 느끼셨음 합니다.
감사합니다.
서문
왜 원도심인가? : 원도심이 중요한 이유
당진문화재단 사무처장 문 옥 배 아무 것도 없는 한 황무지에 일부 사람이 모여 정착하였다. 소수의 정착민은 그곳을 개 간하여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 소문이 펴져 외지에서 그곳으 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이제 그곳은 다수의 사람들로 인하여 공동체를 형성하 게 되었다. 그곳에서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곧 마을(도시)이 형 성된 것이다. 이제 무명의 황무지였던 이곳은 이름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 공동체의 특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이름이 지어졌고, 그곳은 외부에 그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는 한 공동체, 지역, 도시(마을)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당진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 성되고 명명된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도시는 경제적, 문화적, 교통적 중심이 되는 곳이 있다. 바로 그 도시 가 처음 형성되는 출발지역으로, ‘도심’(都心)이라 부른다. 도심은 지리적으로 대부 분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다. 도시를 움직이는 중추기관과 시설이 운집한 곳이며, 도시 내 입지여건이 가장 양호한 곳으로, 시민이 가장 접근하기에 좋은 지리적 환경과 시설 이 집중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 구역은 경제, 사회적, 문화적 활동이 다른 지역보다 활 발하다. 이제 형성된 도시는 공동체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점점 팽창하게 되고, 지역의 규모 는 확장되게 된다. 그 도심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외각지역에 새로운 도심을 형성하게 된다. 그곳으로 도시의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활동의 중심이 옮겨가게 된다. 곧 새로 운 도심, 신도심(新都心)이 형성되게 된다. 새로운 도심은 블랙홀이 되어 기존 도심인 구의 이탈을 촉진하고, 기존 도심은 공동화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기존 도심의 공동화현상의 특성은 중산층 주민의 외곽으로의 이탈, 주요 기관과 시설 의 이탈, 노령화의 급속한 진행 등이다. 도심지역 인구와 사업체의 감소, 행정관리 기 능의 이탈로 도시기반시설의 노후·불량화를 촉진시켜 기존 도심에 대한 부정적 이미 지를 갖게 한다. 도시생태학적 관점에서 볼 때 도심지역은 타 지역에 비해 우세지역에 해당하며, 비도심 지역의 퇴조를 지배한다. 기능적 측면에서는 한 도시 내에 형성된 최상위 중심기능이 집적한 곳이다. 도시는 생태계처럼 도시 발전의 무게 중심이 끊임없이 이동한다고 말 한다. 도시의 활성화에 따라 끊임없이 신도심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원래 의 도심은 가졌던 매력을 상실하고, 공동화되는 현상이 나타나, 낡고 활력을 잃은 구도 심(舊都心)이 되는 것이다. 이후 신도심과 구도심은 대비의 개념이 되었다.
그럼 다시 생각해 보자. 과연 원래의 도심이 낡고 버려진 구도심일까? 기존 도심은 초기 도시발전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한 지역으로, 오랫동안 도시가 형 · 성되어오면서 축적된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을 지니며, 양호한 접근성,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을 보유한 곳이다. 도시가 형성되고 발달하는 과정에서 최초의 도심지 역할 을 하였던 지역으로, 다른 도심이 생겨나기 전부터 형성되었던 도심의 ‘오래된 중심 부분’인 것이다. 따라서 신도심의 반대인 낡고 버려진 의미의 구도심이 아닌 ‘원도 심’(原都心)인 것이다. 원도심은 과거 도시경제의 거점이었으며 기능이 활성화될 경우 도시전체에 미치는 파 급효과가 높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쇠퇴에도 불구하고 업무, 상업, 행정, 문화 등 각 종 기능이 집중되어 있던 곳이기에, 오늘날 그 도시의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정체성 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도시생태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적, 사회적, 지역적, 문화적 지속가능성이다. 지속가능 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를 비롯해 지역성의 균형발전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도심 간의 균형발전을 이룸으로써 도시의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문화적 가치를 실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원도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그것은 오늘날 그 도시의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도시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Section 1
Interview
박윤식
전 <당일양복점> 대표
당진공립보통학교에서 만난 첫사랑과 결혼
박윤식(30년생) 씨는 어린시절 당진읍내를 회상하면 어김없이 꽃 같던 한 소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의 나이 12살에 보통학교에 들어갔다. 학교 선생은 일본인이었다. 지 금의 당진성당 자리가 당진공립보통학교였다. 졸업을 1년 앞둔 해에 지금의 당진초등학 교 자리로 이전을 했다. 그때 그 소녀를 처음 만났다.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얼굴이 후끈후끈해. 그야말로 연정이지. 그게 바로 이 사람이야.”
박윤식 씨는 곁에 앉은 아내(이영숙, 32년생)에게 가만히 눈짓을 하곤 말을 이었다. 아 내는 같은 학교 1년 후배였다. “그때 이 사람은 읍내에 살았는데 나에 비하면 아주 잘 사는 집 딸이었어. 그 시절엔 집 집마다 한복 조끼는 다 사 입었거든. 장인어른이 그 장사를 하셨어. 그러니 이 사람 눈에 내가 들어올 리도 없고, 나 역시 말도 못 붙였지.” 첫사랑이 찾아오고 1년이 채 못 되어 해방이 되었다. 박씨는 졸업과 동시에 당진읍내에 있던 <화성양복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양복점 앞 신작로 가에 앉아 잔심부름을 하다 우연히 소녀와 마주치면 창피해서 얼굴을 파묻곤 했다. 그렇게 상대도 모르게 마음으로 만 하던 첫사랑을 뒤로 하고 박씨는 직장을 찾아 서울로, 소녀는 부모를 따라 인천으로
떠나갔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두 사람은 각기 고향 당진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미아리에서 피난민들이 소도 끌고, 짐을 이고 막 내려오기 시작하더라고. 용산 쪽에 서 폭격도 하고. 27일에 당진에 내려오려고 기차를 타러 서울역에 갔더니 대전까지 가 는 임시열차가 딱 한대 있더라고. 그걸 타고 천안까지 와서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당 진에 왔지. 당진에 와보니 뭐 평상시랑 똑같아. 그리고 한달쯤 지났을 때인가 당진에도 인민군이 들어왔지 아마. 그땐 읍내에 집이 한 100여호도 안 됐어. 초가집이 대다수였고 주변은 전부 산이고 논밭이었지. 집에 와서 방공호를 판다고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부 역을 하고 그랬어. 그러다 혼인 이야기가 들어왔어. 허, 근데 알고 보니 이 사람(아내)이 야. 가슴이 덜컥했지.”
그렇게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해창 신부집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랑은 자전거 를, 신부는 인력거를 타고 채운리 운곡으로 돌아왔다. 신혼여행은 없었다. 그땐 다 그랬 다. 입던 옷을 빨아 입고 올린 결혼식이었으니까.
그 이후로도 부부는 시대만큼 굴곡진 삶을 살았다. 결혼식 일주일을 앞두고 영장을 받았 다가, 소집 하루 만에 다시 돌아온 이야기, 그리고 다시 석달 만에 재 입대를 한 이야기, 강원도 철원 어느 야산에서 벌여졌던 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이야기까지 어느 것 하 나 놓칠 수 없는 사연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박 씨는 틈틈이 그 시절엔 다 그 랬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도 살아남은 이유는 하나, 이 사람하고 살려고. 그러라고 하늘이 도와서 함께 70년을 산 것”이라고 말했다.
1940년대, 읍내에 양복점 3곳, 시외버스 2대가 전부
박 옹은 당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화성양복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화성양복점> 은 지금의 <로가디스 당진점> 뒷골목에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경호 씨가 운영하던 양복점에서 일을 배웠어. 처음 하는 일이란 게 다리미에 넣을 숯불을 피우는 일 같은 거였지. 그 당시 읍내에 <호서양복점>, <금성 양복점>이 더 있었어.” 1940년대의 기억이다. 그 후 당진을 떠났던 박 씨가 다시 당진읍내에서 일을 시작한 건
1950대 중반쯤이다. “제대를 하고 <금성양복점>에 들어갔지. 김희곤 씨가 하던 양복점이었는데 그분이 폐 병에 걸리셨었어. 당시에 그분 생질인 차경렬 씨와 내가 둘이서 보조를 했었는데 내가 김 희곤 씨한테 양복 재단 일을 배웠지.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몇 년은 내가 <금성양복 점>을 맡아 운영을 하다가 맞은편에 양복점을 따로 내서 나왔지.” 1963년 <당일양복점>이 당진읍내에 문을 열었다. 현재 <로가디스 당진점>의 전신 격 이다. “우리 가게 자리가 원래 버스 차부였어. 나 어릴 땐 한진나루에 인천 가는 배가 다녔거 든. 읍내에서 오섬을 거쳐서 한진 가는 작은 버스 한 대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어. 해방 이후에 천안 가는 버스가 생겼고. 내가 그 땅을 당시 돈으로 60만원을 주고 사서 양복점 을 차렸지. 우리 가게 앞에 <중앙약방>이 있었고, 그 옆이 구둣방이 있었어. 또 <평양 상회>라고 이북에서 피난 온 여자가 운영하던 비단가게가 있었어. 우리가게 옆(지금의 <탐앤탐스 당진점> 자리)에는 작은 양품점이 있었고.”
군청 공무원, 월부 양복 맞춰 입던 시절
“그때만 해도 양복이 귀했지. 군청 공무원이나 은행원 정도가 양복을 맞춰 입었어. 양 복 원단을 도둑맞는 일도 많았어. <호서양복점>이 크게 한 번 도둑을 맞은 적이 있었어. 우리도 한번 그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낮에는 양복원단을 가게에 걸어놓고 밤에는 전부 떼어서 송판으로 짠 함에다 넣고 자는 방에 들여놨었지. 그때 양복 한 벌이 쌀 세가마니 값이었으니까. 군청 직원들도 월부양복이라고 해서 외상으로 양복을 맞춰 입었어. 그럼 월급날에 맞춰서 양복값을 받으러 군청을 돌고 그랬지.”
박윤식 씨는 50세가 되던 1980년까지 <당일양복점>은 운영했다. 그리고 1972년에 오픈 해 <당일양복점>과 겸했던 <제일복장> 운영에 주력했다. 그 뒤 몇 차례 상호명이 바뀌었 고, 10년 전부터는 막내딸 박미현 씨가 <로가디스 당진점>을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장사가 한창 잘 될 땐 기술자들이 10명도 넘었지. 손님들도 많았지만 내 또래 친구들 도 우리 가게에 많이 모여서 늘 가게 안이 북적였어. 그땐 친구들이랑 모여 앉아 내기 바 둑도 참 많이 했어.”
60년대 당진읍내 숙박업 번성, <신행여관> 유명
박윤식 씨는 1960년에서 1970년대까지 <당일양복점>이 가장 번성했던 당시, 기억에 남 는 읍내 상점들로 <신행여관>과 <송이다방>, <당진극장>을 꼽았다.
“우리 가게에서 당진로타리 방향으로 첫 사거리 모퉁이에 <신행여관>이라고 있었어. 유명했지. 여관도 하고 식당도 했어. 그때는 교통이 불편하니까 당진에 일보러 나오면 하 룻밤 자고가야 했거든. 지금 <백악관> 앞 집 2층에 <송이다방>도 있었어. 거기가 내 단 골 다방이었지. 손님이 양복을 맞추면 으레 대접한다고 다방에 가서 차 한 잔 사주고 그 랬어. 그 시절엔 다방도 참 잘 됐지.”
박 씨는 당시 당진의 유일한 영화관이었던 <당진극장>에 얽힌 일화도 꺼내어 놓았다.
“<당진극장>에서 경품을 걸고 매표를 했었어. 손님들 끌려고 그랬겠지. 내가 본 영화 제목이 <내가 낳은 검둥이>(1959년 개봉)였어. 그런데 내가 경품 추첨에서 1등이 된 거 야. 그때 <부인상회>라고 그 집 딸이 추첨을 했거든. 경품이 금 한 돈이었어. 그래서 내 가 고맙다고 뭘 사주고 그랬던 게 아직도 기억나.”
박윤식 씨는 1930년 봄, 채운리 운곡에서 5남매 맏이로 태어났다. 스무살 무렵 잠시 서 울에 머물렀던 것을 제하면 90평생을 당진에서 보냈다. 8.15 광복도, 한국전쟁도, 88올 림픽도 모두 당진에서 겪었다. 씨앗이 처음 내려앉은 한 자리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나 고 목이 되듯, 박윤식 씨는 당진읍내를 지키는 하나의 고목이다.
근대와 현대의 첫 만남은 다른 모든 처음이 그렇듯, 조금 쑥스러웠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첫 양복을 맞춰 입었을 것이다. 생애 첫 양복을 입고 첫 직장에서 첫 월급을 타고 첫 사랑을 만나 첫 아이를 낳았을 수도.
처음이라 불리는 모든 것에는 장르를 불문하고 시간이 지울 수 없는 '설렘'이란 각인이 세겨져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무가치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또한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 한 사물에 대한 고유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은 더욱더 위대하다. 모든 열매가 딸기와 동시에 익는다고 상상하는 자는 포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 파라켈수스
그때 그곳 그리고 지금 여기
<비매품>
당진 원도심 이야기
구 술 박윤식, 홍윤표, 손인교, 이정진 사진제공 홍윤표, 박윤식, 박기호, 김형태 편 찬 우현선(글), 김형태(사진)
발 행 인 이명남(당진문화재단 이사장) 사업총괄 문옥배(사무처장) 기 획 김해원(예술교육팀) 발 행 일 2018년 12월 14일 발 행 처 (재)당진문화재단 충남 당진시 무수동 2길 25-21 T. 041)350-2911 /www.dangjinart.kr 만 든 곳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본 책의 저작권은 (재)당진문화재단에 있으며, 무단 전재나 복제를 금합니다.
글이 없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쪽은 뺐습니다. 이북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