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문화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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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들어가며 당진문화운동사 연보
제1장 당진문화운동의 흐름과 의미 1. 1980년대 이전의 지역 문화 여건 2. 당진사랑에서 당진문화연대까지 3. 마을 중심의 문화운동, 새마을문고
제2장 1990년대 당진의 문화운동 1. 읍내리카페와 읍내리 소식 2. 시민운동으로서 문화운동 3. 당진사랑 소모임 4. 월간 『당진사랑』 5. 문화운동과 사회운동의 만남 6. 시민단체의 태동과 문화운동 1) 당진환경운동연합 2)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 3) 어린이책시민연대 당진지회 4) 꿈회
제3장 문화사회를 향하여 : 2000년대 이후 1. 문화민주주의와 당진 2. 당진 기독교청년회(YMCA) 3. 당진문화연대
편집후기 참고문헌 및 사이트
추천사
시민문화운동이 지역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 당진 지역사회에서 이뤄진 문화운동 총망라
1987년 가을은 13대 대통령선거 분위기로 전국이 들떠 있었다.
장덕기 / 전 당진사랑단체연합 회장
그해 봄부터 뜨겁게 달구었던 직선제 개헌 운동은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민중 들의 함성이었으며 그 절정을 맞이한 것이 6.10 항쟁이었다. 다가오는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로 민주주의가 확고하게 완성되리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야권 의 분열로 정권교체는 이룰 수 없었고 민주화를 열망하던 사람들은 실의에 빠 졌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은 믿을 수 없는 집단이었던 것이다. 13대 대통령은 노태우가 당선되고 군사정권이 연장되는 비극적인 상황이 계속 되자 민주주의 세력들은 새로운 길로 시민운동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이다.
전국적인 운동단체로 당진에도 카톨릭농민회가 있어 반정부 활동을 꾸준히 하 면서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민중들의 정치의식을 깨우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카톨릭농민회는 전국농민회(전농)로 발전한다. 그즈음 당진에서도 시민운동이
태동하기 시작하는데 읍내리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모여 당진을 사 랑하는 시민의 모임(당진사랑)을 만들었다. 당진사랑에는 많은 청년과 학생,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은 매주 만나 토론을 벌이고 매달 소식지를 발간하며 공동체 의식을 키우고 함께함으로 서 시민들 곁으로 다가갔던 것이다. 소식지에는 민중들의 정치의식을 깨우치는 칼럼이나 시와 수필 등 문예창작 활동 을 통해 얻은 작품들이 수록됐다. 특이할만한 것은 청년, 학생 중심으로 풍물놀 이패가 구성된 것이다. 풍물놀이패는 시민운동행사에 참여해 행사 분위기를 고 취하고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하는 전위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다. 곧 당진사랑은 시민문화운동 성격의 모임이었다.
시민운동은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는데 당진은 어느 지역보다 주목받는 곳 이 되었다. 당진사랑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당진시대라는 지역신문이 드디어 창 간되었고 그 결과로 당진의 시민운동은 더욱 알차고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 다. 지역신문의 파급력은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서 당진의 정치, 사 회, 문화 전반에 많은 영향력을 주었던 것이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당진사랑은 당진참여연대와 당진환경운동연합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진은 전농, 전 교조,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이 연대의 틀을 굳건히 하여 여러 사업을 공동으 로 추진하게 되었고 여러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일례로 2000년 총선 당 시 전국적인 낙천, 낙선 운동에 공동을 참여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곧 당진사랑이라는 시민문화운동이 당진의 시민사회운동, 시민주언론을 탄생시 키는 토대가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문화연대가 새로운 시민문화운동단체로 탄생하면서 이 지역과 시대에 부합되는 사업을 꾸준히 전개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앞으 로도 시민운동은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건전한 발전에 크게 기여 할
것이며 그렇게 되도록 후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 그동안 당진지역사회에서 이루어진 문화운동을 총망라하는 당진문화운 동사가 출간하게 되어 반갑다. 이를 계기로 문화운동을 비롯, 당진의 시민운동
이 한층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들어가며
우현선 /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이사
이 책의 기획은 낡은 한 뭉텅이의 문서에서 시작됐다. 30년 전 갱지에 수동 타 자기로 찍어낸 『읍내리 소식』에는 지역을 생각하는 시민들의 애향심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이 적고 함께 읽은 글은 3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도 여전히 의미 있는 어떤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문화의 힘인 동시에 여 전히 그때와 다르지 않은 물줄기가 이곳 당진에 이어져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 문일 것이다.
『읍내리 소식』에는 급격히 속도를 내고 있는 도시화와 산업개발 속에서 오래도 록 지역의 정체성이었던 농어촌을 지키고자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수록되어 있 다. 급격한 도시 개발에 따른 농어촌의 피해와 우려, 해결책과 대안을 농어민과 시민들의 시각으로 적었다. 특히 사회 보편적인 문제를 비롯해 지역의 현안을 다룬 글에서는 3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을 자주 만나 게 된다. 그럴 때면 글쓴이의 세련된 사고에 대한 감탄과 더불어 그 문제가 해 결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이 동시에 든다. 무엇보다 여전히 군부정 권의 잔재가 남아있던 그 시절, 좁은 지역사회에서 겪어야 했을 어려움을 감내 하면서도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에 괘념치 않았던 시민들 의 용기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책은 당진지역에서 20여 년 간 일어난 시민들의 문화운동을 기록한 책이다.
문화운동이란 무엇을 일컫는가. 문화운동의 사전적 의미는 문화의 여러 요소나 문화 전체의 성격을 변혁하기 위해 전개하는 조직적인 활동을 말한다. 그렇다면 문화운동과 문예운동의 차이는 또 무엇인가. 이 책의 범주와 관점은 다음과 같다.
1. 이 책은 1989년부터 2015년에 걸쳐 당진에서 일어난 일련의 역사를 기록한다.
2. 이 책은 당진의 지역사 중에서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의미 있는 변 화를 이끌어낸 문화운동을 기록한다.
3. 이 책에서 언급되는 ‘문화운동’은 7,80년대 국내에서 민중을 문화의 생산과 소 비의 주체로 상정하고 진행된 민중문화운동에 뿌리를 두고, 지역의 다양한 시민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벌어진 ‘문화 활동’을 주요 범주로 한다.
4. 문화예술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뤄진 문예운동은 이미 당진문화재단에서 발 간한 『당진문학 40년사』와 『당진미술아카이브』를 통해 기록, 이 책의 범주에서 는 제외한다.
제1장
이 책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술되었다.
에서는 1989년부터 2015년까지 당진에서 일어난 문화운동의 흐름과 의 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편 이 책의 주요 연구대상인 시민사회단체로 분류하기 는 어려우나 시민 중심으로 이뤄진 마을문고에 대한 기록을 별도로 정리하여 제 1장에 수록하였다.
제2장
에서는 본격적인 시민사회문화단체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1990년대의 지역사를 기록하였다. 주요 시민사회문화단체의 역사를 기록하되, 문화운동적 관점에서 단체가 시민을 대상으로 펼친 ‘문화 활동’을 분야별로 살폈다. 특히 오 래도록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방치되어 있던 소식지들 을 모아 함께 실었다. 소식지에 담긴 사진과 글들은 그 자체만으로 당시의 시대
제3장
적 상황과 문화운동의 의미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에서는 2000년대 이후 탄생한 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에서 벌어진 문화 운동에 대해 기록하였다.
이 책은 198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일어난 당진 지역의 ‘문화운동’을 기록한 역 사서다. 역사학자도 아니면서 책의 집필을 맡게 되어 부담감이 없지 않았다. 허 나 오래도록 당진의 안과 밖에서 지역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해 온 경험을 토대 로 산재해 있는 기록들을 모아 보기 좋게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하였 다. 따라서 이 책은 문화운동을 주제로 한 지역에서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난 역사 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으나 학술서라기보다는 기록서에 가깝다.
당진문화운동사 연보(1980-2015) ≫
1985년
1993년
1994년 1996년
1997년 1999년 1999년
2011년
꿈회 창립 1989년 12월 읍내리 소식 창간
』 1990년 5월 학생풍물패, 다울문학회 창립 1990년 6월 학생문학회 창립 11월 향토사랑청년회 창립 12월 당진사랑단체연합 창립 12월 소리나눔 창립 12월 읍내리 소식 ⇒ 당진사랑 제호 변경 』 1991년 5월 당진을 사랑하는 시민 모임 발족 당진사랑청년회, 당진을사랑하는시민모임 통합 1993년 11월 당진시대 창간 당진민주시민회 창립 당진사랑 』 복원 1996년 11월 당진사랑청년회 재창립 당진동화읽는어른들의모임 창립 당진환경운동연합 창립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 창립 2007년 9월 서산YMCA 당진회관 개관 2008년 3월 어린이책시민연대 당진지회 창립 2008년 6월 당진문화사랑 창립 2009년 4월 당진YMCA 창립 당진문화사랑 ⇒ 당진문화연대 명칭 변경
』
제1장
당진문화운동의 흐름과 의미
1. 1980년대 이전의 지역 문화 여건 2. 당진사랑에서 당진문화연대까지 3. 마을 중심의 문화운동, 새마을문고
1. 1980년대 이전의 지역 문화 여건
197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태동한 한국의 민중문화운동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민중가요를 함께 부르고 구호와 표어를 외치며 국가폭력에 대항하였다. 대학가 에서 시작된 노래패와 탈춤반 같은 동아리들은 민중운동과 결합되어 노동자, 농 민의 삶의 애환을 다루면서 급격히 확산되었다. 문학 분야에서 실천문학 등의 잡 지가 만들어졌고, 영화와 미술 등의 분야에서도 민중문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
1)
되었다.
한편, 80년대 후반까지도 당진의 문화운동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지역 내 문 학, 미술, 음악 등 예술분야의 각 부문별로도 독자적인 조직은 소수에 불과했다. 1980년대 이전 당진에서는 문화예술단체로 1973년 청림회, 1980년 나루문학회, 1982년 학동인회, 1984년 당진사진동우회, 1986년 온누리합창단, 1987년 당진음 악동우회, 1987년 금랑문학동인회 등이 창립해 활동하였다. 이러한 단체들이 지
1)『 한국근현대사전 』 2005, 한국사서편찬회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한국학중앙연구원
1. 1980년대 이전의 지역 문화 여건
역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바는 분명하나, 활동상을 살펴볼 때 대중에게 영향 을 끼친 ‘문화운동’으로서 분류하기에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조직 결성과 시대적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서 꿈회(1985) 가 활동한 바 있으나, 이마저도 ‘운동’적 요소가 결핍되어 문화운동으로서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 이처럼 1980년대 이전까지는 문화예술계 안에서의 문화운동은 물 론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일반 시민 중심의 민중문화운동의 개념에서도 유의미 한 조직이나 활동이 미비했다.
시야를 넓혀 ‘문화’라는 영역에서 지역을 살펴볼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오랜 중앙집권화와 교통, 통신 기술 발달 등의 문제로 1980년대 이전 당 진의 문화 기반은 매우 취약했다. 1980년대 대중문화의 시대가 개방되어 이미 서 울에서는 공연문화가 활발히 보급되고 있었다. 하지만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이었 던 당진의 경우, 1980년대 소수가 참여하는 예술동우회 등을 제외하면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라고는 하나뿐인 극장(당진극장)과 기지시줄다리기 같은 전통 민속행사 정도가 전부였다.
2. 당진사랑에서 당진문화연대까지
역사적으로 대중사회운동은 곧 문화운동이었다. 3.1운동의 태극기 만세운동에서 민주화운동의 민중가요를 거쳐 최근의 촛불집회까지 거의 모든 사회운동은 ‘문 화운동’으로 전개되어 왔다. “민중들은 문화와 예술의 힘을 빌려 행동의 정당성 을 확임함과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 싸워나갈 의지를 다졌다. 군부독제의 총칼에 맞선 민중들의 거룩한 투쟁이자, 매일매일 싸움의 현장이 곧 문화투쟁의 현장이
2)
기도 했다.”
당진 최초의 시민사회단체, 당사연의 태동
문화예술기반마저 미비하던 당진에 ‘대중사회운동으로서 문화운동’의 움직임이 일어난 건 1989년 즈음이었다. 당진읍내의 작은 카페를 드나들던 시민과 학생들 이 만들어 낸 『읍내리 소식』을 시작으로 당진사랑단체연합(1990, 이하 당사연)이 결성되었다. 다울문학회와 향토사랑청년회, 농촌사랑모임 등 소모임의 연합단체
2) 추천사, 김준태 『오월의 문화정치』, 2016 천유철, 오월의봄
로 시작한 이 조직은 당진 최초의 시민운동단체였다. 당사연의 초기 주요 활동은 문예잡지에 가까웠던 『읍내리 소식』 발행과 문화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소모임이 었다. 『읍내리 소식』 발간 불과 1년 여 만에 구독회원 겸 후원회원이 200명을 넘어 서고 1천부를 발행하는 등 당사연의 조직과 활동은 짧은 시간 내에 빠르게 성장했 다. 이는 전통적인 농어촌사회였던 당진에서 시민들의 내제되어 있던 사회, 문화 적 욕구가 반영된 결과였다. 당사연은 창립과 동시에 본격적인 시민운동단체로서 의 면모를 갖추어 갔다. 당사연의 조직 구조는 당진사랑 문화공간을 중심으로 활 동한 학생들의 소모임과 청년모임이었던 당진사랑청년회, 시민모임이었던 당진 을사랑하는시민모임으로 이뤄졌다. 문화운동으로 시작한 조직인 만큼 문화 공연 보급자로서의 역할에 매진하여 당진 최초의 대중문화공연을 열었다. 더불어 풍물 동아리 등 소모임을 통해 시민들이 문화 생산자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 였다. 문화공간 당진사랑을 개관하여 시민들에게 도서를 무상으로 대여하고 여러 소모임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사회운동의 변화가 일어났다고는 하지만 당시는 여전 히 언로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당사연은 늘 국가정보기관의 ‘감시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연은 시민
『당진시대』 창간을 계기로 당사연 분화
들의 참여 속에 활동과 영향력을 키워가며 지역운동을 펼쳐갔다.
1990년대 지방선거 부활, 시민사회 연대
1991년 31년 만에 지방선거가 부활하면서 지역의 시민운동단체가 연대하기 시작 했다. 당진군농민회, 전교조, 성직자모임, 당사연 등은 연대를 통해 공명선거 운
동을 이어갔다. 당사연은 오래도록 지역에서 활동했던 사회운동 단체들과 연대를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며 시민사회영역에 진출하였다. 초창기부터 지속적으로 연대해 온 대표적 인 단체는 당진군농민회(이종현, 서흥석, 정광영, 이만영, 김남일, 이재만, 박성만 등), 전교조당진지회(이인호, 이용호, 최윤호, 박경희 교사 등), 성직자모임(김중회, 노정길, 이종명 목사 등) 등이었다. 특히 당사연의 상근자들은 성명서를 작성하는 등 연대 조직의 실무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 당진의 시민문화운동에도 첫 번째 변화기가 찾 아왔다. 당사연의 주축이 되었던 청년회 회원 최종길, 김태숙, 황성렬, 손은영이 편집국으로, 당진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의 장덕기, 박세진, 이준섭, 최원기, 박연신, 정봉식, 최평곤 등이 이사로 참여해 『당진시대』를 창간하며 지역언론운동을 시작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실무자들의 이탈로 당사연은 자연스레 분화의 시기를 맞 게 됐다. 당사연의 큰 축이었던 당진사랑청년회가 당진을 사랑하는 시민의 모임 으로 통합되었으며, 당사연의 회원 일부가 참여해 당진민주시민회를 창립하였다.
중부권특정폐기물 처리 반대운동
시민사회단체, 문화를 통한 지역운동 펼쳐 당사연의 회원들이 전문분야로 활동 반경을 넓혀가며 조직적인 분화기를 맞이하 던 이때, 당진에는 지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중 부권특정폐기물 처리장 반대운동이다. 이를 통해 지역 내 분화되었던 시민사회운 동단체들이 다시 한 번 연대하게 된다. 5년이란 시간에 걸쳐 이어진 지난한 싸움 속에서 당진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설 때마다 앞세웠던 건 역시 ‘문화’였다. 마당
극과 문화공연을 통해 시민을 모으고, 목소리를 결집했다. 구호를 적은 색색의 만 장기를 앞세운 거리집회는 비장하였으나 동시에 축제의 행진을 닮아 있었다. 지 역언론 당진시대의 보도와 당진사랑, 당진JC가 주축이 되어 주민교육도 실시되었 다. 이러한 모든 활동은 지역의 농민과 시민, 노동자들로 이뤄진 시민사회운동단 체들의 연대로 이뤄졌다.
지역환경운동 통해, 시민사회단체 성장과 변화
1990년대를 거치면서 지역사회는 중부권특정폐기물과 석문공해공단 한보화력 반 대투쟁위 등 굵직한 지역환경운동을 경험했다. 이는 곧 시민운동단체의 성장과 변 화에도 직결되었다. 석문공해공단 한보화력 반대투쟁위의 해산과 맞물려 당진환 경운동연합(1999)이 조직됐다. 당진 최초 환경 시민운동단체의 탄생이었다. 당진민 주시민회가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1999)로 명칭을 변 경하여 새롭게 출발했다. 더불어 당진사랑청년회가 재창립(1996)하고 당진동화읽 는어른들의모임(1997) 등이 태어났다. 이들 시민사회단체들은 저마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지향성을 지니고 이를 시민들에게 확산, 보급하는 운동적 실천방안 으로 ‘문화운동’을 택했다. 대중강연과 교육, 문화공연과 문화사업, 지역현안과 관 련한 캠페인, 조직 내 문화 소모임 등이 대표적인 ‘문화운동’ 영역의 활동이었다. 이후 2000년대 말, 또 한 번 시민사회단체의 지형 변화가 이뤄졌다. 이때의 변화 는 주로 새로운 단체들의 탄생이었는데 대표적인 단체가 2008년, 2009년 각각 창 립한 당진문화사랑과 당진YMCA다. 특히 당진문화사랑은 문화예술인들이 주축이 되어 이뤄진 문예운동 중심의 시민사회단체를 표방, 2011년 당진문화연대로 명칭
을 변경하고 현재까지 지역 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3. 마을 중심의 도서운동, 새마을문고
대중문화운동의 또 다른 축, 마을문고
1980년대 이전 당진 전역에서 이뤄진 가장 대표적인 문화운동은 독서운동이었다. 70년대 당진의 마을마다 책장을 마련하고 도서를 비치했던 마을문고 운동은 이 후 새마을운동과 접목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떼어 내 고 본다면 70년대부터 시작된 마을문고 운동은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독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려온 시민문화운동으로 명명하기 충분해 보인다. 현재 새마을운동본부의 산하 단체인 새마을문고는 사실 한 민간인의 독서운동으 로 시작됐다. 도서운동가로 불리는 엄대섭은 1951년 자신이 갖고 있던 3천여 권의 책으로 현재 울산광역시에 사립 무료 도서관을 열었다. 그리고 농민들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탄환 상자를 이용해 50여 개의 순회문고를 만들었다. 1961년에는 마을문고보급회란 단체를 설립해 문교부의 후원 아래 마을 단위의 소규모독서시 설설치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3)『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3)
이즈음 당진에도 마을문고가 들어서게 되었다. 오래도록 당진새마을지회 사무국 장을 역임한 이민선 씨는 “63년 전후로 각 시군마다 읍면별로 마을문고가 생겨나 기 시작했는데 문교부의 후원으로 구입한 책들이 마을에 지원됐다”며 “당시 학생 이었던 나 역시 방학 때 고향에 내려와서 대촌리 이장댁에 구비되어 있던 마을문 고를 본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1961년 첫 해에 26개였던 마을문고는 1968년에 1만 개, 1971년에 2만 개를 넘어서 고, 1974년에 3만개를 돌파하였다. 1981년 마을문고보급회는 새마을운동 조직에 흡수되어 새마을문고중앙회로 개편, 개칭되면서 세력과 활동이 확산되었다. 새마 을문고 당진시지부(이하 당진새마을문고)는 1981년부터 새마을운동 당진군지회( 이하 당진새마을)가 설립(1984.3)되기 전까지 당진문화원에서 운영하였다.
90년대까지 30여개 마을문고 운영
당진새마을문고는 당진새마을 설립 이후, 조직의 규모는 축소하였으나 마을문고 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도서운동을 펼쳐왔다. 90년대에는 김병로, 최천재 씨 등 마 을문고에 애정을 가진 시민들을 중심으로 30여개의 마을문고가 운영되었다. 90년 대까지 마을문고가 활발하게 운영된 마을은 거산2리, 출포리, 통정리, 삼화리, 대 포리, 영정리 등이다. 지금이야 시립도서관 산하 작은도서관이 운영되고 사립 도 서관이나 작은 서점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시대지만, 1990년대만해도 당진에 서 책을 무료로 대여할 수 있는 공립 도서관은 당진군립도서관(1974년 개관), 당 진군합덕도서관(1995년 개관)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당진읍에 위치한 당진군립도 서관은 “극소수의 장서가 진열되어 있고 시설도 미비하여 장서 확보와 시설 확장
4)
이 시급 ”한 형편이었다. 한편 당진새마을문고에서는 도서 대여와 더불어 공부
4)『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1970년대 당진의 한 마을문고 모습. 당진에서는 90년대까지 마을문고가 운영되었다. 마을회관과 같은 공용공간에 장서를 구비해 무료로 대여했으며, 한켠에는 책상을 배치해 주민과 학생들에게 학습 공간 을 제공하였다.
방, 충효교실 등을 여는 등 도서문화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당진 내 곳곳에서 명맥이 유지되어 오던 마을문고 운동은 인터넷 보급과 다양한 문화 확산 등의 시대적 변화에 따라 점차 축소되었다.
70년대 중반부터 이농현상이 일어났잖아요. 일손도 부족하고 TV 보급도 확산되어서 마을문고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어들었어요. 그래도 90년대 초반까지 김병로, 최천재 씨 등을 중심으로 몇몇 마을문고들이 활발히 운영되었어요. 그때 마을문고를 유지할 수 있었던 큰 힘이 공부방이었죠. 90년대 까지만 해도 농촌의 취락 구조가 열악했어요. 한 방에서 온 식구가 자는 집들이 태반이었 으니까요. 그러니 집에서 공부할 공간이 없잖아요. 마을문고에서 공부방을 운영해서 지역 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 들었죠. 방학이면 대학생들이 와서 공부도 도와주고 효교실 같은 걸 운영하기도 하고요. 또 학교에는 자체 도서관이 있었지만 당 진에서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도서관이 지금처럼 늘어난 건 2000년대 이후의 일이에요. 지금이야 새마을문고라면 새마을운동의 조직으로 인식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실 역사를 알고 보면 새마을문고는 엄대섭이라는 인물의 도서운동에서 시작된 민간운동이에요. 당시 시대흐름상 새마을운동과 마을문고운동이 결합하면서 정치적 색채를 지닌 활 동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새마을문고만큼은 순수한 문화운 동으로 봐야하죠.
(이민선 / 전 새마을운동 당진시지부 사무국장)
2006년 마을문고 폐지 후, 다양한 도서문화운동 실시
당진새마을문고는 2006년 마을문고를 폐지하고 독서동아리 형태로 조직을 개편 했다. 사실상 마을문고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없고 실효성 있는 활동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주된 이유였다. 조직을 개편한 당진새마을문고는 읍면별로 독서동아 리 형태로 조직을 운영하는 동시에 다양한 도서문화운동을 실시해 나갔다. 삽교천관광지, 왜목마을 등 지역의 관광명소에 도서를 비치한 피서지문고는 최근 까지 이어온 대표적인 당진새마을문고만의 사업이다. 2015년까지도 삼선산수목 원에서 피서지책방을 운영해 무료로 책을 빌려주고 마술쇼, 동화구연, 전통놀이 체험 등의 문화행사를 실시하였다. 이외에도 학생 대상 독서 진흥 운동으로 새마 을독서골든벨, 국민독서경진대회, 독후감대회 등을 실시했다. 새마을문고 회원들 과 시민들이 함께 하는 역사문화캠프, 인문학기행 등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중 고 도서를 서로 바꿔 읽는 도서교환전을 운영하기도 했다.
당진새마을문고는 2006년 마을문고 폐지후 독서동아리 형태로 조직을 개편하고 다양한 독서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삼선산수목원에서 진행된 피서지책방 행사의 한 장면이다.
새마을문고는 매년 회원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역사문화캠프와 인문학기행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당 진독서가족나들이에 참가한 시민과 당진새마을문고 회원의 모습.
당진예술총서 Ⅳ
당진문화운동사 1980-2015
집필
우현선 사진정리 김형태 구술자 권중원, 김봉운, 김병빈, 김형태, 이민선, 조상연, 조재형, 최종길 자료감수 정봉식 총괄 문옥배(당진문화재단 사무처장) 기획 최종길(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대표) 디자인 문성기획 발행일 2020.07 발행인 김규환(당진문화재단 이사장) 발행처
ISBN 979-11-966078-3-8
(재)당진문화재단 (우)31774 충청남도 당진시 무수동 2길 25-21 전화 : 041-350-2911 팩스 : 041-352-6896 http://www.dangjinar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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