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고향집앞에서, 큰누나결혼식이후가족친지들과함께
전라남도영광군법성면용덕리발막부락에서태어났다. 아버지이두만, 어머니진소임, 부모는가난한농민이었다. 열명의자식을낳았지만한국전쟁중에두아들을잃었고,
두형의죽음으로삼남인여니는장남이되었다.
딸하나는어릴적에병으로떠나보냈다.
여니는집안의기둥이었다. 전쟁통에두아들을앞세운어머니는 장남을위해모든정성을기울였다. 생일이되면참기름종지에실로만든심지를넣고불을밝혀 지극정성으로기도했던어머니모습을여니는기억한다.
부모님두분다무학이셨지만삶의지혜를터득한분들이셨다.
아버지는호인이셨지만원칙에서벗어나고, 양심적이지않은행동을눈감아주지않았다. 아버지를통해여니는사회정의에눈떴다.
제가어렸을때아버지가민주당지방당원이셨습니다. 아버지의영향으로그는권력에대한 저항의식과정의감을가슴속에키우며성장했어요.
어깨너머로정치를배웠다고할까요.
# 2. 7남매와그가족들
# 3. 광주북중졸업사진
용덕리에있는자그마한분교, 삼덕초등학교를다녔다. 공부도잘했지만 연날리기같은놀이도즐겼다.
가을이면추수를거들었다.
농촌의다른아이들처럼봄이면모내기,
매번일을못한다고야단맞기일쑤였다.
체구는작았지만어려서부터어른들로부터 어른대접을받아서인지책임감이남달랐다. 목소리도낮고굵어‘생영감’이라는별명이붙었다.
시골학교에20대총각선생님이부임해오셨다. 박태중선생님은여니의영민함을알아보시고 광주로중학교를가라하셨다.
간식거리와수련장을들고수시로가정방문을오시는 선생님의열정과설득에힘입어광주로유학을떠났다. 광주북중입학은인생의커다란전환점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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