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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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아주 오랜 짝사랑을 끝내는 기분입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면 나니아 연대기와 해리 포터가 있습니 다. 끼니를 챙기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잊고 활자 속의 세계가 너 무 좋아 푹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곳에서는 밥을 먹지 않아도 온갖 맛이 나는 젤리를 나의 혀로 직접 느낄 수 있었고, 방구석에 웅크려 앉아서도 빗자루를 타고 하 늘을 날았고, 책장만 넘기면 사자를 타고 이세계의 왕이 될 수 있었 습니다. 그뿐인가요. 엄청난 행운의 주인공이 되어 윌리웡카의 초콜릿 공장을 누볐고, 마틸다의 초능력도 쓸 수 있었으며, 심지어는 세상 을 구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책으로 세상을 배웠고, 생각하는 법을 연습했고, 마침내 무엇이든 말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
할 지경이 되었을 때,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문예창작을 ‘전공’ 삼아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년을 7 채워갑니다. 문학은 제게 있어 광장입니다. 아주 큰, 무엇이든 말하
고 듣고 싶어지면 나가서 몇 시간이고 머물 수 있는 광장이요. 세상 의 온갖 이야기, 기상천외한 삶, 역사와 진보의 지점까지 그 광장에 모여듭니다. 휘발되더라도 끊임없이 말해야 합니다. 작은 중얼거림 이라도 광장을 거치고 여러 사람의 눈과 귀를 경유하면 어떤 방식 으로든 이정표가 되리라 믿습니다. 광장은 여기 있습니다.
년 가을의 끝에서 김지연
차례
산책로
분수대
들어가며 … 4
투명한 존재 …
가로등의 시간 …
은행나무 사거리 - 번길 행복고시원 앞 … 16 4
19 모자이크 … 21 어떤 사람의 발자국은 혼자 소리가 날 것 같다.. 24
방황하는 자를 위한 등불 …
빚의 렌즈로 바라보기 굴레 혹은 유대 … 38 소설에 대한 소설 쓰기 … 58 분리된 자아, 너머의 세계 … 73 상징으로 복원되는 세계 … 87
벤치
작품 해설
감사의 말
홰 …
관창 …
홈 스위트 홈 …
임민영 광장을 나서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
광장을 나서며 …
투명한 존재
씨앗이 날아들었다 거대한 건물의 보이지 않는 틈
청소부의 곁으로
한 뼘 짜리 세상에서 씨앗은 갈라지고 새싹이 움튼다
펜을 쥔 손으로
빛바랜 유니폼을 입고 웅크린
청소부는 한때 인류의 시작을 연구했다
백지에 수많은 실선을 그을 때마다 보이지 않던 역사가 하나씩 기록되었다
수억 년의 먼지를 빨아들인 고대 동물의 뼈를 살피던 손 이제는 락스물이 배인 대걸레를 쥐고 몇백 년 전의 토기에서 먼지를 털어내던 붓은 복도 창틀을 지나가는 먼지털이가 된다
청소부는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허락된 곳은 오래된 균열 같은 계단 밑 콤콤한 곰팡내와 락스 냄새가 가득한 곳에 간신히 몸을 뉘이면
씨앗의 균열도 몸집을 키운다 그녀의 땀방울 이 스민 목베개의 삐져나온 솜
지워지지 않는 락스 냄새보다 역한 수치의 악취를 먹고
바오밥나무는 자랐다
허리춤에 붙은 파스를 뚫고 나오는 불면
신이 실수해 거꾸로 심었다는 나무 이천 년 동안 인류를 지켜보았다던
작은 균열을 뚫고 뿌리가 올라온다 청소부의 불면이 뻗어나간다 주름진 손처럼 잎사귀가 돋아나고
잎맥에는 뜨거운 땀방울이 흐른다
사람들은 그제야 틈 을 발견했다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작은 휴식처에서 자라난 살아 있는 역사 수백 번 터지는 플래쉬에 다른 청소부들의 눈이 멀었다 웅성거림을 먹어치우며 나무는 재빠르게 커진다 뿌리가 더욱 깊어진다 이 나무 를 보존해야 합니다 나무 곁에는 울타리가 쳐지고 그 옆 청소부가
보이지 않는
몸을 뉘던 낡은 매트리스는 사라졌다
탄생한 세계에 청소부의 자리는 없고
걸레를 든 수많은 여자들과 나무 사이로 젊은 여자가 지나가고 있다
가로등의 시간
저녁은 뜨개실이 엮이듯 오네
불빛들이 하나둘 매듭지어지며
골목길의 저녁이 시작되고
나의 불빛이 닿는 곳은
한 뼘 아래
쓰러질 듯 기울어진
반 모금쯤 남아 있는 소주병
담배 꽁초 두어 개
맑은 웃음 섞인 총총걸음도
실한올한 올이 얽혀 목도리를 만들듯이
그러나 쓰러지지는 않는 쓰레기 봉투와
뜨거운 햇빛에 녹아내리다가 해가 진 후
얼어붙은 시간 속에 갇힌 눈사람
여러 번 밟혀 회색빛이 든 눈 무더기 그 사이
양 볼과 코끝이 빨개진 채로 눈사람을 굴리던 아이들의
한숨과 함께 병을 두고 간 노인의
절름거리는 발자국도
끝이 해진 운동화와
도망치듯 빠른 발걸음도
그 모든 것이 휘발되듯
알람 소리가 들려오네
집게와 양동이
담배 꽁초가 타들어가는 동안 움직이지 않던
새벽의 안개가 골목에 다다를 때
매일같이 등 뒤에서 가까워지는 그 소리
주머니 속의 열쇠고리와 핸드폰이 부딪히며
불규칙하게 딸그락대는 발걸음 소리
아침은 뜨개실이 풀리듯 오네
주머니 밖으로 딸랑이는 열쇠고리
소주병과 꽁초 낙엽 쓰레기봉투
집게손에 하나둘 끌려가고
환경미화원의 뒷모습과 함께
골목의 불빛도 올올이 사라지네
다시 시작되는 하루
오직 흔들리는
청년
해가 뜨고
거대한 몸을 꺾어내
벽은 보았다
은행나무 사거리 - 번길 행복고시원 앞 16 4
벽은 움직이지 못하므로 나무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
웃음처럼 흔들리는 그의 얼굴만을 보았다
다만 항상 갖고 있는 궁금증은 있었다
매일 새벽 나무의 뒤편으로 향하는
소매가 닳아빠진 항공점퍼를 입고
행복고시원에서 열다섯 발자국을 걸어가
무언가를 속삭이듯 허리를 굽혔다가 다시 돌아오는
그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겨울
그 날도 청년은 나무와의 만남을 가졌다
나무가 종이와 장롱과 그 무엇으로 변하기 위해
밀회가 마지막을 맞이하고서야
그의 뒷허리에 수치처럼 꽂힌
약물 주머니를
매연으로 막힌 그의 숨통 대신
새벽
청년도 나무도 없는 사거리에서
문득
매일 밤 누군가가 바꿔 달아 주었던 인공호흡기를
오직 나무가 만들어내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푸릇한 이파리가 흔들리는 모양을
유일한 눈요깃거리로 삼았던 벽은
제 뒤에 사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모자이크
골콩드
라는 것을 알았을 때
골콩드
읊어 주었다 나는
르네의 친구를 떠올렸다
비처럼
허공에 쏟아지는
네가 보여준 익숙한 그림의 이름이
나는 모국어를 잃은 사람이 되었다
입술을 오므려 인도의 어느
폐허가 된 도시의 이름을 발음하며 너는
다이아몬드 가공업의 중심지였던 도시의 역사를
그림에 그 제목을 붙여 주었다는
시인은 왜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그림에 부의 원천이었다는 고대 도시의 이름을 붙였을까 그들
이
폐허처럼 보였던 걸까 그도 아니면
말 없는 나를 두고 너는 정장을 입은 남자들을 오려내기 시작했
다
프린트한 르네의 그림이 조금씩 분해되고
순간을 잘라다 붙이는 일 어쩌면 삶의 모든 순간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사라진 고대 도시의 이름을 친구의 그림에 가져다 붙여 준 시인 처럼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죽은 시인의 말이고 소설가의 말이고 영화 감독의 말이며
세기 화가의 그림을 오려 회화 숙제를 하는 너처럼
모자이크일 수도 있다
다만
모국어를 잃은 나는
이 시간을 살아간다
무수히 많은 세상의 모서리를 잘라다 붙여 놓은
미래의 어느 순간에 붙여질
어떤 사람의 발자국은 혼자 소리가 날 것 같다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언제나 혼자다
가방은 늘 그 뒤에 있는 존재였다
캐리어, .××, 녹색, 합성 플라스틱 퍼센트. 39 5 28 61cm 가방은 그것으로 규정지어졌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공장 바깥으로 낳아지면서 그는
이제 그가 있는 곳은
먼지 쌓인 베란다
언뜻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았던 것 같다
오랜 공복에 쪼그라들어버린 뱃가죽을 움켜쥐고
그러게 누가 결혼하재? 니가 하자 그랬잖아 결혼
저 가방은 어쩔 건데 신혼 여행도 남들 다 가는 뉴질랜드 하와이
한번못가 보고 어 제주도나 가서 바가지 쓴 저 가방 저거 어쩔 거
냐고
여자의 뻣뻣한 손가락을 본다
가방을 손가락질하던 그녀는 화가 난 소 같은 걸음으로 다가와
가방은 직감했다
영영
걸음을 옮긴다
언제나 그래왔듯
뒤에서
그의 뱃속에 마구잡이로 옷가지를 쑤셔넣는다
그건 그가 년의 생에서 처음으로 본 여자의 20 앞모습이었다
됐고 내일까지 도장 찍어 보내 …
말소리의 울림이 사라지기 전에 문이 닫힌다
체한 것처럼 울렁이는 속으로 복도를 굴러가며
여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가방은 일생의 임무대로 묵묵히
방황하는 자를 위한 등불
. 0 빈 커서를 앞에 두고 시간을 보낸 지 일주일이 넘어간다. 김현과
김윤식, 한국 근대 문학 비평의 시작점에 위치한 두 라이벌. 일주일 사이 김현의 『한국 문학의 위상』을 다시 읽고 최인훈의 「회색 인」 또한 구해 읽었으나 두 평론가의 텍스트 앞에서 말 못하는 벙 어리가 된 듯한 기분만은 여전하다. 아마도 두 평론가가 평생에 걸 쳐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문학을 통해 독자는 무엇을 읽어내는가’, 즉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귀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실증주 의와 실존적 정신 분석, 두 갈래로 나뉘어 대척점에 섰지만 결국 그 끝은 같았던 두 평론가가 읽어낸 문학은 무엇인가. 수십 년을 말없 이 살아 왔던 벙어리가 처음 말문을 떼는 기분으로, 김현의 글부터 이야기해 보려 한다.
. 진짜 욕망의 거울 : 김현, 「책읽기의 괴로움」, 「행복한 책 1 읽기」
소비 사회의 최대의 특징은 인공적으로 욕망을 만들어내는 데 에 있다. 칼로 깎아도 되는데 연필을 깎는 기계를 만들어내고, 부품 의 하나를 더욱 개량하여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내어 새로운 것을 사용하는 것이 문화적이고 진보적이라는 환상을 소비자들에게 소 비 사회는 열심히 불어넣어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불필요한 것과 피상적인 것을 소비하고 싶다는 가짜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 이다. 그 가짜 욕망은 그러나 인간에게 자기가 억압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불어넣어주기는커녕 자기가 자유로우며, 그래서 모든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가짜 자유를 느끼게 해준다.
김현의 평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욕망’이다. 욕망, 이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행복이다. 김현은 『한국 문학의 위상』에서 문학이 ‘가짜 욕망’을 깨부수고, 진짜 ‘행복’으로 인도한다고 이야기 한다. 라캉이 욕망의 삼각형 이론에서도 이야기했듯, 인간의 욕망 은 끝없이 돌고 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욕망을 충족한 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짜 욕망은 가짜 자유로 사람들 을 속인다. 이를테면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서 보바리 부 인이 이 그토록 꿈꿔 왔던 낭만적인 사랑을 이루었는데도 불행했던
1) 김현, 『한국 문학의 위상』, 문학과지성사, 1996, p.35.
이유 또한 그렇다. 그녀가 꿈꿔왔던 ‘낭만적 사랑’은 사실 그녀 본 인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내재화한 것, 즉 ‘가짜 행복’이었 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생각으로는, 자기의 욕망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면,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무엇을 왜 욕망하는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그 앎에 대한 욕망은 남의 글을 읽게 만든다.
문학은 억압하지 않음으로써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가짜 행복을 깨부수고 진짜 행복에 조금씩 더 가까워진다.「책읽기의 괴로움」에서 이야기하는 바에 따르면 이 ‘진짜 행복’은 즉 독고준이 읽던 소설 속에 있는 완벽한 삶의 원형 이고, 나아가 소설 자체이며, 이후에는 준이 그리워하는 고향이다.
행복, 그것은 현실이란 말처럼 환상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것에 미친다. 환상적이 아닌 어떤 것도 우리를 미치게 하지 못한 다.
2) 김현, 『김현 문학전짐 15』, 문학과지성사, 1995, p.72. 3) 김현, 『한국 문학의 위상』, p.34. 참조. 4) 최인훈, 『역사와 상상력』, 민음사, 1976, p.26.
우리는 고통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행복스럽 게 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스럽게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은 불가능한 꿈이다. 그러니 고통스럽지 않 을 리 없지 않은가! 이 시대에 행복을 생각한다는 것은 고통스
숨 쉬는 것을 어떻게 포기하겠냐는 김현의 말은 ‘내 자신이 불행 이고 결핍’이라는 「책읽기의 괴로움」 마지막 문장으로도 이어진 다. 독고준, 즉 김현에게 책읽기란 ‘결핍의 충족이며, 행복에의 약 속’이다. 나는 「회색인」을 읽으면서 회색인, 즉 독고준 자체가 최 인훈의 대변자 같다고 느꼈다. 지식인으로써 급변하는 세상에서 극 과 극의 사상 가운데 휩쓸리고, 실존적 자아를 찾아 내면으로 침잠 하는 최인훈 본인의 분신. 「광장」의 이명준으로도 나타난 이 분 신은 곧 김현의 분신이기도 하다.
↓ 삶의 원형에 대한 갈망 = 욕망
독고준 - 이명준 - 최인훈 – 김현
책이 삶의 전거이며, 책읽기는 살아가기의 원모습이다. 그
5) 김현, 『한국 문학의 위상』, pp.40-41.
(…)
러나 책의 부름에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책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부르기 때문에 그곳으로 간다. 책은 여자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고향이다.
원형에 대한 꿈을 상실할 때 삶은 한 비평가의 표현을 빌면 짐 승스럽고 더럽고 치사한 어떤 것이 된다. 책 속의 원형들은 이 세계 에 무엇이 결핍되어 있으며, 우리는 왜 불행한가 하는 것을 반성케 하는 표지들이다. 그 원형들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으면, 그 원형들을 생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삶은 최소 한도의 초월성을 간 직할 수 있다. 그것을 도피주의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손에 잡히지 않는 근원적인 행복의 상을 찾으려 김현은 끊임없 이 읽었다. 현대인으로서 회색인의 모습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나 또한 괴로운 글 읽기롤 지속해나간다. 사르트르의 실존 적 정신분석의 목표에 걸맞게 세계=나의 모든 가능성 속에서 나 자 신을,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그 지점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행복으 로 가는 에움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현은 유고집에서 ‘행 복한 글 읽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 읽기의 괴로움, 결핍으로의 행복 찾기는 어떻게 ‘그 자체로 행복한 글 읽기’, 나아가 ‘행복한 글 쓰기‘로 바뀔 수 있었을까.
6) 김현. 「책읽기의 괴로움」, 『책읽기의 괴로움/살아 있는 시들』, 문 학과지성사, p.231. 7) Ibid., pp.232-233.
사랑하는 사람이여 사람을 보내 말하지 말고, 제발 직접 와주세요. 중간에 사람이 끼면 위험하니까요.
김현은 월 일자 일기에서 중세 연애시의 서두를 인용하며 2 25 ‘독자들에게 작품은 직접 읽어야 한다는 권유’로 새롭게 읽힐 수 있 다고 말한다. 직접 읽는 것. 직접 억압을 부수고, 가짜 욕망을 부수 고, 원형을 마주하는 것. 그것이 오히려 괴로움을 이겨내고 진정으 로 ‘행복한 글 읽기’가 된 것이 아닐까.
무엇이 ‘책읽기의 괴로움’에서 책읽기의 행복‘으로라는 정반대 의 현상을 빚었을까. 이 물음은 신비주의에 함몰될 수밖에 없지만 굳이 논리를 빗댄다면 ’죽음‘에 대한 인식이 아니었을까. 말을 바꾸 면 죽음 앞에서는 괴로움도 행복도 같은 것이다.
김현은 김윤식의 말마따나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불행과 결 핍을 마주하는 일, 즉 욕망의 뿌리를 보는 일이 그 자체로 행복임을 알았는지도 모른다. 어느 비평가에게 김현이 던진 질문은 인상적이 다. ‘자신의 내부로 하강 초월하면 거기에 대상이 있는 게 아닐까?’ 이는 김윤식이 말한 ‘실존적 정신분석’으로도 이어진다. 8) 김현,「일기」발췌,『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 문학과지성사, 1995, p.20. 9) 김윤식, 「‘실증주의 정신’과 ‘실존적 정신분석’의 어떤 궤적」,『문학 사의 라이벌 의식』1, 그린비, 2013, p.156.
. : 김윤식, 「‘실증주의 정신’과 ‘실존적 정신분석’의 어떤 궤 2 적」
김윤식의 「‘실증주의 정신’과 ‘실존적 정신분석’의 어떤 궤적」 에서는 ‘뿌리를 만지고 싶은 충동’이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한다. 글에서 김윤식은 김현이 문학사가 하나의 역사 영역이라는 것을 간 과했다고 말한다. ‘근대’가 사라지고, 하나의 유기체로 통합된 문학 은 뿌리만이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김윤식과 김현이 쓰고자 했던 『한국문학사』의 목표가
‘근대
(김윤식만의 입장일 수도 있지만) 문학’의 정의라는 것을 본다면 이는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지점이 다. 그러나 이 뿌리, 즉 책 속의 원형을 찾는 김현의 실존적 태도는 ‘존재’ 그 자체를 내면에서 찾아내는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김현은 김윤식의 “열정이란 재능을 가리킵니다. 열정 없는 재능 이란 없지요.”라는 문장이 그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 직전에 그가 이론에 대해 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론을 지탱하고 있는 원칙들의 의미는 설명하지 않고 실증적
인 사실들만을 나열할 때, 원론은 그 관여성을 잃기 쉬운데, 그의 경우가 때로 그러하다. 남의 이론을 공들여 읽지 않고 몇 개의 이론 적 개념들만을 감각적으로 이용하려 할 때, 이론은 휘청댄다.
여기서 그가 말한 ‘이론’은 황현산이 「젊은 비평가를 위한 잡다 10) 김현,「일기」발췌,『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 p.29.
한 조언」에서 이야기한 ‘이론’과 비슷한 맥락의 기표다. 김윤식은 이러한 그의 비판에 뒤늦게 변명한다. 민족적 사명감에 휩싸였던 김윤식은 적어도 이 무렵 “스스로를 ‘실증주의적 정신’이라 믿었던 것처럼 보였”다고. 김현은 『한국문학사』 「서언」에서 ‘한 사람의 실증주의적 정신과 한 사람의 실존적 정신분석의 정신이 상호 보족적인 것임 을 확인하게 된 것은 우리로서도 크나큰 즐거움’이라고 말한 바 있 다. 동시에 「행복한 책읽기」에서 “그의 내면의 무의식은 작가와 세계가 부딪치는 자리에 있어 그 앞이나 뒤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것에 그의 문체를 이상하게 과잉-서정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며 그의 실증주의는 그것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며, “그의 늘리기는 수수께 끼의 놀라움이 없기 때문에 진부하고 지겹다”라고 신랄하게 비판 한다. 역사와 실증을 통해 문학사를 쓰고자 했던 김윤식은 이러한 그의 비판에 침묵했는데, 그 이유는 김현의 비판이 “김윤식 자신의 글쓰기의 참모습이었던 것, 변명의 여지없는 그러한 것이었던 것” 이다. 그리고 김현이 김윤식의 내면을 분석해낸 방법은 “‘실존적 정 신분석’이 아니라 김윤식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김현의 ‘행복한 글쓰기’란 김윤식의 실존적 위기 분석을 통해 김현 자신의 위기의식을 분석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 는 이를 실존적 정신분석이라 하지 않았을까. ‘행복한 글쓰기’란 어 쩌면 생리적 결벽성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글 읽기의 괴로움’ 에서 ‘글 읽기의 행복’에로의 회심이란, 죽음을 앞둔 인간의 정직성
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세상을 떠난 라이벌을 향해 뒤 늦은 변명을 던지는, 더불어 ‘색불이공 공불이색“이라는 찬사를 두 번에 걸쳐 보내는 이 글은 김윤식 자신의 위기의식 분석이 아닌가. 아니, 위기의식 분석에서 나아가 자신의 ‘행복한 글쓰기’로의 회심 이 아닐까. 두 사람은 결국 각자의 자리에 서 보고, 사랑으로 서로의 글을 씹어 삼키듯 읽으며 한 걸음씩 나아간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김현 이 얻은 구원과 같은 구원을 김윤식도 얻게 된 것이 아닐까. 구원과 같은 회심에 다다른 김윤식은 김현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문학 속 의 원형을, 껍데기뿐인 실증이 아닌 보다 본질적인 자신의 내면을 읽을 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타인의 텍스트에 있는 방황하는 자를 위한 등불을 다시 씀으로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비평은 타인의 등불을, 그 뿌리를 발견해내는 읽기의 작 업인지도 모른다.
11) 김윤식, 「‘실증주의 정신’과 ‘실존적 정신분석’의 어떤 궤적」,『문학 사의 라이벌 의식』1, p.163.
빚의 렌즈로 바라보기: 굴레 혹은 유대
. 빚지고 사는 사람들 1 어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빚을 진다. 빚은 때로 상속되며, 양
육의 대상으로써 살아가는 매 순간이 빚으로 적립되기도 한다. 빚 은 때로 누군가의 선의에 대한 되갚음의 강박이고, 똘똘 뭉쳐 돌멩 이처럼 가슴에 얹힌 복수심이다.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압박감 또한 빚이다. 년 이후, 권여선, 편혜영, 황정은 등 여성 작가들의 소설 속 2010
1) 이 글에서는 권여선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 2020)과 『각각의 계절』(문학동네, 2023), 편혜영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문 학동네, 2007), 『어쩌면 스무 번』(문학동네, 2021), 황정은 소설집 『파 씨의 입문』(창비, 2012)에 실린 작품들과 편혜영 장편소설 『선의 법 칙』(문학동네, 2015)을 논의에 사용했다. 앞으로 같은 책을 인용할 경우 본문에 작품명과 면수를 표시한다.
에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인생에 속아 넘어” 가, 불행에 갇혀 사
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 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 아가는 삶의
모습은 언니의 죽음 이후 그 과거를 파헤치며 살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권여선의 장편소설인 『레몬』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 다. 이 “이유 없는 가혹한 삶”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빚-부채는 세기 자본주의 사회 속 우리 삶의 구조에서 떼어 21 놓을 수 없다. 개인 파산 신청, 신용불량자 등은 더 이상 낯선 별세
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학자금 대출이나 전세 자금 대출, 하다못해 신용카드 할부금까지 우리 삶 속에는 크고 작 은 빚이 존재한다. 빚은 현재를 만들어 주지만 동시에 그것을 갚는 미래를 저당 잡아 우리 삶에 그늘을 드리우고 그림자로 존재한다. 년대 이후 발표된 소설 속에서 빚-부채의 구조 양상은 간과할 2010 수 없는 문제다.
금전적 부채만이 빚은 아니다. 마음의 빚, ‘갚아 주어야 한다는 마음’ 또한 빚이기에 본문에서는 ‘부채’가 아닌 ‘빚’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사람을 옭아매고, 파멸시킬 수 있는 구조로서의 빚
(부채) 이 있는 한편, 그것이 불가능한 선물로써의 빚, 마음의 빚 또한 존 재한다. 빚의 일차적 의미는 ‘쓰기 위해 빌린 것’이다. 빌림의 본래 적 뜻은 갚음에 있다. 빚은 ‘쓰기 위해 갚기로 하고 빌린 것’이며 갚 음의 형식은 ‘그대로 갚음 (되갚음, 앙갚음)
’과 ‘안 갚음’ 등으로 나뉜
2) 편혜영, 「원더우먼」, 『소년이로』, 문학과지성사, 2019, 131면. 3) 권여선, 『레몬』, 창비, 2019, 145면.
다. 갚아야 할 것으로서의 빚은 누군가 자신이 ‘빚이 있다’는 사실 을 깨닫는 순간 삶에 등장한다. “나는 고맙다”
거나 “나는 꼭 갚아주어야
(황정은, 「디디의 우산」) 할게 있다”는 생각 (편혜영, 『선의 법칙』) 으로 이어진다. 빚을 깨달은 사람이 빚을 갚고자 할 때, 즉 그에게
은 “나는 빚이 있다”는 자각
갚아야 할 빚이 남아 있을 때 그는 비로소 빚을 떠맡고 짊어지며 그 빚에 값하는 삶을 살 의무를 갖는다. 이는 곧 ‘스스로 빚지고 있음 을 떠맡는 행위’이다. 이 평론에서는 사람을 옭아매는 빚의 구조에 대해 조명하고, 스 스로 빚지는 인물들의 삶을 바라본다. 나아가 마음의 빚, 그리고 선 물의 영역에서 갚음을 떠맡은 인물들의 삶이 변화하는 양상을 살핀 다. 무언가 반드시 되갚아야 한다는 마음을 떠안고 살아가는 인물 들의 삶에는 ‘빚’이라는 공통된 모양이 있다.
. 굴레에 가둬진 사람들: 부채 사회 2 사회에 빚으로 만들어진 구조가 있다면, 권여선 「손톱」의 ‘소
희’는 부채 구조 가장 끄트머리에 내몰린 인물이다. 소희와 배다른 언니, 본희는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어느 날 홀어머니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자’며 본희 명의로 대출을 받고, 그 돈을 가 지고 도망가 버린다. 시간이 흘러 본희는 같은 방식으로 소희의 돈 을 가지고 떠나 버린다. ‘구조’에 선행되는 것은 ‘반복’이다. 반복을 거치며 인물은 빚을 인식하고, 빚 갚음이 인물의 삶에 체화된다. 빚은 반복되며 삶 속에
서 자신의 몸집을 키우고, 햇빛을 받으면 조금씩 커지는 그림자처 럼 삶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불어난다. 「손톱」 속에서 끊임없이 대물림되는 빚이 대표적 예이다.
그러니까 년 전 스물한 살, 지금 소희 나이였던 언니도 소희처 8 럼 들떴던 거다. 아무 생각 없이 대출도 받고 저금한 돈도 선뜻 내 주고 한 거 보면. 언니도 소희에게 똑같이 새로 이사 갈 집은 반
(…) 지하도 옥탑도 아니고 방도 두 개고 욕실도 크니까 이번에는 꼭 고 양이를 키우자고 했으니까. 소희가 쉬는 날 같이 새로 이사 갈 집을 보러 가기로 해놓고는 휙 사라졌으니까. (「손톱」, 면) 60
빚은 어머니에게서 본희로, 본희에게서 소희로 대물림되며 반 복된다.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방도 두 개고 욕실도 큰 집에서 다 같이 사는 미래가 희망이 되어 본희-소희가 빚을 지면, 그 돈을 가 지고 어머니-본희가 떠나간다. 끊임없는 대물림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홀로 남아 본희와 소희, 두 자매를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모종의 계기로 그 삶에서 벗어나 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끝없이 일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반복 적인 삶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은 빈털터리 신세로 중학생 소희를 맡 았던 본희의 무력감으로, 나아가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와 빚 원금 과 방세를 계산하는 소희의 기계적인 생활 속 무력감으로 계승된 다. 일하고, 빚을 갚고, 생활을 영위하는 반복적인 삶에서 어머니와 본희가 선택한 것은 도망이다. 그러나 소희는 도망칠 곳이 없다. 더
이상 빚을 대신 져 줄 가족이 남아 있지 않고, 소희 혼자 남았기 때 문이다. 도망칠 수 없는 소희는 노동과 상환이 반복되는 굴레 속에 서 살아간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눈을 뜨고,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 하고, 정해진 시간만큼 일하고, 퇴근을 하고, 월급을 받고, 이자와 각종 요금과 생활비를 내고, 차근차근 돈을 모아 빚을 갚는다. 빚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무려 년 동안이나 똑같은 삶을 살아야 5 한다.
화수목 사흘은 아침 시부터 저녁 시까지 일하고, 금토일 사흘 9
7 은 아침 시부터 밤 시까지 일한다. 일찍 끝나는 화수목에는 길 9
10 이 막혀 퇴근 시간이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시쯤 집에 와서 저녁 8 을 지어 먹고 씻는다. 소희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시청료를 내 지 않으려면 텔레비전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해서 이사 오자마자 낡은 텔레비전을 없앴다. 소희는 자기 전까지 인터넷만 한다. 매일 출석 체크를 하면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사이트만도 열한 군데 가입 해 있다. 할인 정보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카페와 중고매매 사이 트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반값 쿠폰의 유효기간 을 확인하고, 장바구니에 휴지와 세제를 가격 맞춰 넣어놓고, 주말 쯤에 화장품 사이트에서 적립한 포인트로 겨울 로션을 살 것을 잊 지 않도록 메모하고, 자정이 넘어 분 동안만 가능한 휴대전화 로 5 또 앱을 찍고 잔다.
(「손톱」, ~ 면) 70 71
미래를 저당 잡힌 사람들은 빚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소희의 계
산을 따라가 보자. 년이 지나면, 딱 년만 지나면 소희는 주일하5
6 루 ~ 시간씩 일하고, 집에 와서는 ‘앱테크’를 하다가 잠드는 삶 10 11 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희는 끊임없이 돈을 계산하며 언제쯤이면 빚을 다 갚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한다. 동시에 빚을 다 갚는 미 래에 대한 생각 자체가 소희의 현재를 휘감고 놓아주지 않는다. 아 름다운 미래, 빚을 다 갚고 고양이가 있는 집을 사고, 돌아온 엄마, 본희와 함께 살아가는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현재의 삶이 구성되고 재편된다. 이 과정 속에서 개인은 필연적으로 거대한 사회 구조 속 톱니바퀴가 된다. 소희의 빚은 ‘행복한 미래를 살기 위한 대출금’이 다. 빚을 져야만 꿈꾸는 미래를 얻을 수 있으나, 미래가 현재의 삶 을 저당잡는 빚이 되는 악순환이다. 반복은 구조를 만들고, 구조는 반복되며 맞물려 사람들을 더욱 단단하게 옭아매는 ‘구조의 지옥’ 이 만들어진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부 터 빚을 진 인간, 즉 “부채인간” 이다. 부채인간이 살아가는 ‘부채
사회’ 속 가장 중요한 관계는 채권자-채무자의 관계다. “현대 자본 주의의 가장 중요하고도 보편적인 권력관계”
인
(『부채 인간』, 면) 57 데, 단순히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가 아니다. 채권자-채무자의 꼬리 를 무는 순환은 자본과 노동, 복지 시스템과 수혜자, 기업과 소비자 의 관계처럼 거대한 체제와 개인의 관계로 확장된다. 부채 사회는 어느 대상에게 부채를 빌려주기에 앞서 그 사람의 미래적 능력을 담보로 한 ‘신용도’를 기준 삼는다. 이 신용도는 채무자가 스스로 4)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부채 인간』, 허경, 양진성, 2012, 15면.
빚을 갚기 위해 해야 하는 노력까지 전제한 기준이며, 소희의 경우 끝없이 노동하는 년 간의 삶이 ‘신용도’로 계산된다. 다시 말해 미 5 래의 시간까지 빚지는 ‘소희’처럼, 부채 경제가 채무자의 미래까지
확보하는 구조가 생성된다. 그럼 소희가 빚을 갚으면 그때는 굴레 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빚을 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 지 평생 채권자-채무자의 힘 관계에 예속” 된다. 결국 사지 못
. 스스로 진 굴레, 혹은 희망 3 「손톱」 속 소희처럼 미래를 꿈꾸며 현실을 저당잡다 못해 파
멸에 이르른 인물도 있다. 편혜영은 초기 단편에서부터 꾸준하게 빚을 진 인물을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사육장 쪽으로」
(이하 「사 의 주인공부터 「소년이로」 속 짧게 등장하지만 홀로 사업 육장」) 을 이어다가 빚으로 파산한 유준의 어머니, 『선의 법칙』의 기정 까지 편혜영 소설 속 인물들은 얼핏 스스로 빚을 지는 것처럼 보인 다. 그러나 누구도 ‘빚을 지고 싶어서’ 빚진 인물은 없다. 「사육장」은 주인공 ‘그’가 붉은 편지, 즉 빚 갚음을 재촉하는 경고장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중개인 의 말만을 믿고 Y
“죽어서도 갚을 수 없을 정도의 빚”을 내어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다. 그러나 전원주택은 그가 꿈꾸던 굴뚝 달린 아름답고 넓은, 상위 층에 편입될 수 있는 주거 공간이 아니다. 주택을 구입한 대가로 그 는 파산하고, 안락한 미래 또한 사라졌으며 이사한 집은 짓는데 열 흘도 채 되지 않았을 정도로 어설픈 공산품이다. 게다가 출근까지 는 편도 두 시간이 걸리고, 편하게 쉬어야 하는 집에서는 사육장의 개 짖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린다. 그가 집값의 절반을 넘는 빚까지 내며 주택을 산 이유는 무엇인 가? 소희가 꿈꾸는 ‘고양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아파트’와 ‘그’ 의 ‘전원주택’은 일맥상통한다. 전원주택에 살면서 이상화된 상위 층의 삶에 편입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연립주택에 거주 하던 그의 안락한 생활을 뒤흔든다. 그는 ‘부채 사회’가 주입하는 ‘일반적이고 좋은’ 삶, “진정한 도시인의 꿈”을 이루고자 빚의 굴 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사육장」의 주인공은 전원주택과 같 은 ‘일반적 도시인’에 편입될 수 있을 듯한 상품에 대한 소비를 통 해 존재를 확인받고자 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돈은 갚을 수 없는 어 려운 상황을 분명히 알면서 굳이 돈을 빌려준 뒤 그로부터 이익을 얻으려 하는 ‘약탈적 대출’로 인해서 만들어진 돈이다. 불안에 떠
는 노모와 아내, 다친 아이를 차에 싣고 그는 달린다. 이제 그에게 는 금전적인 빚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파산한 상태에서 가족들을 책 임져야 하며, 아이를 치료할 병원도 찾아야 하고, 사실상 주거 공간 은 안전하지 못하기에 또 다른 주거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 급박하 5) 제윤경・이헌욱, 『약탈적 금융사회』, 부키, 2012, 114-168면.
고 불안한 마음으로, 집행자들을 피해 혹은 병원을 찾아 사육장 쪽 으로 속력을 높이는 그의 모습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 얽매 여 스스로를 빚으로 속박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에게 빚은 미래에 거는 덧없는 희망인 동시에 마음과 몸을 속박 하는 굴레이다. 반면 빚짐의 희망이 신기루로써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빚이 있 는 곳에 연대가 있을 것” 이라는 디인스트의 말처럼, 자본주의 부
채 사회에서 속박으로 나타나는 빚은 때로 같은 빌림을 공유하는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를 이끌어낸다. 미래를 저당잡은 희망 이 신기루가 아닌 현실이 되고, 삶의 그림자에서 이정표로 모습을 바꾸는 순간이다. 권여선의 최근 소설집 『각각의 계절들』에 실린 「무구」의 주인공, 곧 환갑을 맞이하는 ‘소미’는 과거를 저당 잡은 희망, ‘미래’ 를 빚-갚음으로써 구매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소미’는 우연히 부동산을 운영하는 옛 대학 동기 ‘현수’를 이십 년 넘는 세월이 지 난 후 만나고, 그녀의 추천으로 시의 땅을 산다. 시의 땅을 현수 U U 도 몹시 갖고 싶어했으나 현수에게는 돈이 없었고, 소미는 빚을 내
면 간신히 돈을 끌어모아 살 만한 형편이 됐다. 소미는 “자신이 미 쳤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수 에게 일단 자신이 돈을 낼 테니 나중에 땅값이 오르면 너는 원금 의 절반만 나에게 달라고 이야기한 뒤 돈을 긁어모아 그 땅을 산다.
6) 리차드 디인스트, 『빚의 마법』, 권범철, 갈무리, 2015, 9면. 앞으로 같은 책을 인용할 경우 본문에 책 제목과 면수를 표시한다.
“우리가 자본에서 벗어날 필요에 대한 신념을, 그리고 다른 유대들 을 공통으로 구축하려는 욕망에 대한 신념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은 빚짐의 강요에 대한 경험에서뿐”
이라는 디인스
(『빚의 마법』, 면) 227 트의 말처럼, 같은 빚을 공유하는 현수와 소미는 순식간에 가까워 진다. “이익을 봐도 손해를 봐도 우리가 같이 보는 게 중요” 한 관계로 묶인 것이다.
( 면) 129
그러던 중 묘역이 들어설 땅이라는 소식이 들리고 땅값이 떨어 질 위기에 처하자 현수는 십육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흔적 없이 증 발해 버린다. “모아놓은 현금 전부에 엄청난 빚을 얻어 보탠” 돈으 로 산 땅을 남편이 알아채지 못하게 “안간힘을 써”가며, “악착을 떨 며” 십 년 이상을 버텨내 겨우 자신의 땅으로 만든 소미. 그
갑에 들어선 소미와 남편은 여유롭게 골프를 치고, 쇼핑을 하고, 마 사지샵을 다니며 ‘은퇴 생활자’의 삶을 여유롭게 즐긴다. 누구든 남 부럽지 않게 살아간다고 부러워할 만한 상황임에도, 소미는 끊임없 이 현수를 떠올린다. 언젠가 그때 그 땅값의 절반을 내겠다고 찾아 오지 않을까 기대와 두려움이 섞인 채로 현수를 기다리기까지 한 다. 땅을 가진 뒤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는 소미이지만, 시의 땅을 U 가진 소미보다 땅을 가지려고 애쓰며 현수와 땅을 보러 다니고, 함
께 앉아 만둣국을 먹던 마흔다섯의 소미가 더욱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재의 소미와 남편은 한 집에서 생활할 뿐, 그 이상의 것을 공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흔다섯의 소미는 시의 땅과 경제 U 적으로 안락한 삶을 열망하는 동시에 그러한 열망을 현수와 공유하
며 “그때 우리는 젊었으며 … ” 라는 현수의 말 속 “그때”
( 면) 122 청춘으로 회귀한다. 빚을 함께 지며 가진 그들의 유대감 자체가 오 히려 삶에 대한 열망을 강화한 것이다. 소미는 언젠가 땅을 싸게라도 팔아 치우기 위해 다시 시에 방 U 문한다. 부동산 매매 계약을 하기 위해 간 시에서 혼자 현수와 함 U 께 방문했던 식당에 간 소미는 젊은 커플과 늙은 남자를 마주한다.
젊은 커플은 만둣국 그릇에서 만두 네 알을 덜어낸 뒤, 공깃밥 두 그릇을 주문해 그것으로 허기를 달랜다. 곧이어 들어온 늙은 남자 는 밥을 주문하지만 젊은 커플의 밥 두 그릇이 마지막 남은 그릇이 라 밥을 먹을 수 없다. 만둣국을 먹는 내내 궁시렁대는 남자의 불만 을 못 들은 척 국물에 만 밥을 먹고, 먹지 않은 만두 네 알을 꼼꼼히 봉지에 담아 가는 커플은 뻔뻔해 보이기까지 한다. 땅을 팔기만 하 면“다시는 이 동네에도, 이 식당에도 올 일이 없으리라” 생각하는 소미의 안에서 커플은 처음 현수와 식당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퉁 명스럽게 말하고 바닥에 쏟아진 음식물을 말없이 주워담던 “미쳐 가는 가여운 부부”와 겹쳐진다. 그러나 매입자가 외지인이라 믿고 거래를 하러 간 부동산에서 소미는 식당에서 보았던 늙은 남자를 마주친 뒤 공포에 휩싸여 땅을 팔지 않기로 한다. 소미의 공포는 금 전에 집착하는 시의 사람들에 대한 공포임과 동시에 떠안게 된 부 U 채에 대한 공포다.
마침내 시의 땅이 소미의 것이 된 순간, 커플이 느꼈던 “그의 U 것을 가로챈 기쁨인지 미안함인지 모를 어떤 감정” 은 소미에
함인지 모를 감정’과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마음의 빚으로 소미 에게 남아있다. 그렇기에 소미가 아무리 “그러니 그 땅의 모든 권리 는 그걸 홀로 지켜낸 자신의 몫” 이라고 되뇌어도 마음의 빚 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 면) 144
. 마음의 빚: 앙갚음, 또는 되갚음 4 권여선 소설 속 ‘현수’처럼 금전적 빚이 마음의 빚과 연결되는
인물도 있는 한편, 물질적 빚과 관계 없는 마음의 빚을 지닌 인물들 도 있다. 빚짐은 꾸준히 갚아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목적을 불어넣 는 행위다. 금전적으로 빚진 인물은 돈을 벌고, 빚을 갚고, 누군가 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꿈꾸면서 세계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느낀다. 이 소속감은 곧 삶에 대한 희망으로, 희망은 곧 압박으로 이어진다. 마음의 빚을 진 인물들은 어떤 의미로든 ‘갚아야 한다’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갚음의 압박을 느낀다. 『선의 법칙』의 두 주인공 ‘기정’, ‘세오’는 마음의 빚에 얽매인 인물이다. 『선의 법칙』은 추리 스릴러의 구성을 따라가지만 범죄 나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가는 소설은 아니다. 인물들은 오직 두려 움에 의해 움직인다.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 얼결에 장물아비의 누명을 쓰고 뒤집어쓴 부채로 인한 현실적 압박에 대한 두려움, 가 족에 대한 두려움이 기정과 세오를 따라다니는 빚이다. 동생의 죽 음을 이해하기 위해 탐문하는 신기정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 수를 위해 이수호를 쫓아다니는 윤세오도 자신의 마음의 빚을 없애 기 위해 움직인다.
합판 위에서 밤과 밤을 보내며 생각했다. 나무의 연두색 잎이 단 단한 녹색이 되는 걸 지켜보며 생각했다. 그 사람이 아빠를 독촉하 고 위협하고 두렵게 하며 모든 걸 폐허로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했 다.
( ~ 면) 62 63 동생을 홀로 죽게 했다는 죄책감을 덜고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 들로부터 벗어나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지금의 처지 를 상기시키는 것으로부터, 원도준의 분노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동생만큼 그 자리를 완벽하게 채워주는 것은 없었다. ( 면) 104
윤세오가 이수호를 ‘악’으로 규정하고 그에게 복수하려 한 이유 는 그녀의 복수 대상이 특정지을 수 있는 어떠한 대상이 아님을 알 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자살하게 만든 당사자가 이
수호가 아님을, 결정적으로 어떤 이유라고 명확하게 결론 지을 수 없이 여러 가지 일이 얽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난 일임을 알 고 있었다. 그럼에도 복수를 향한 강렬한 열망은 그녀에게 삶의 목 표이자 버팀목이었다. 살기 위해 세오는 이수호를 ‘악인’으로 규정 짓는다. 한편 기정이 ‘동생이 죽은 이유’를 파헤치려 노력한 이유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함이다. 배다른 동생의 죽음을 경찰에게 들었을 때, 교사인 기정은 억울하게 장물아비가 되어 학 교와 학부모와 자기에게 물건을 건네준 도준에게서 도덕적인 비난 과 멸시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원하지 않은 부채를 짊어진 기정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관심 속에서 홀로 죽어간 동생에 대한 죄책 감까지 떠맡게 된다. 기정은 그에 대한 도피로 동생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는 빚을 짊어지기로 선택한다. 그러나 삶에는 끊임없이 선과 악의 구분 기준을 의심하게 만드 는 순간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 나뭇잎의 색이 바뀌고, 낮과 밤의 길이가 바뀐다. 세오는 이수호를 좇으며 나뭇잎의 색이 무조건 어 떠한 색이라고, 낮은 언제나 몇 시간이라고 확정지어 말할 수 없다 는 것을 깨닫는다. 두 사람 모두가 “어쩌다 그렇게 된 일. 그것이
(…) 야말로 트집 잡을 수 없는 인생의 유일한 법칙이라는 걸 알”게 되고 , “인간은 선과 악 같은 구분과 상관없는 존재” 임을 깨 ( 면) 31
시하기 두렵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스스로 마 음의 빚을 짊어지는 굴레 속에서 인물들의 삶은 흐릿하게만 보인 다. 그러나 그 순간, 빛이 드는 찰나에 해방이 찾아온다.
노인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졸기 시작했다. 잠에 빠진 노인의 숨소리가 나직했다. 윤세오는 옆에 놓인 이불을 노인의 어깨에 덮 어주었다. 그 다정한 손길에 놀라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시간을 들 여 노후한 호스를 뽑으려던 손, 밸브를 움켜쥐던 손, 가위를 찾아 쥔 손, 노인과 이수호의 짐을 종이상자 안에 담아준 손, 노인에게 이불을 덮어준 손.
( 면) 259
세오는 노인에게 이불을 덮어준 자신의 다정한 손길에 놀라,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후 노인을 놔두고 바깥으로 나오자 비치 는 창문의 “부드러운 불빛” 은 그 선명한 순간들에 따라 세오
( 면) 259 의 삶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든 달라지리라는 암시다. 자신이 그 토록 복수하고자 했던 노인에게 이불을 덮어 주면서 세오는 비로소 자신을 짓누르던 마음의 빚으로부터 해방된다. 빚은 삶의 굴레인 동시에 깨고 나갈 수 있는 알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세오와 기정에게 마음의 빚은 복수에 대한 강박의 형태로 작용한다. 세오는 악인이라 규정지은 이수호의 노모가 웅크린 모습 에서 그의 고단한 삶을, 노인이 지고 있을 노인만의 빚을 본 것인지 도 모른다. 그리하여 알 속에 자진하여 갇힌 이들에게 찾아오는 알 껍데기의 균열은 미래에 대한 소비적 열망이 아닌, 노인에게 이불
을 덮어주고 창문 사이로 햇빛이 비추는 일상적 순간들이다. 황정은의 소설에도 일상을 통한 빚으로부터의 해방이 있다. 그 의 소설집 『파씨의 입문』에는 빚을 진 인물이 몇 등장하는데, 「야행」 속 한씨와 「디디의 우산」 속 디디다. 한씨는 “보증문제 로 내 집이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나는 서류에 이름 하나 써주었을 뿐이었고,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그들도 알고 나도 알았는데 도, 이거 가차가 없더란 말입니다”
라는 대사로 미루
(「야행」, 면) 28 어 짐작할 수 있듯 누군가의 보증을 서 주다가 집을 저당 잡혀 빼앗 긴 인물이다. 그러나 디디의 빚은 다르다. 비가 오던 날, 디디는 도도의 우산을 빌려 쓰고 집으로 향한다. 깨끗하게 말려 다시 돌려 주려고 했으나 “괜히 비싼 물건” 이 ( 면) 160 었던 우산은 언제나 식구 수보다 모자랐으며 우산을 돌려주지 못
한 채로 디디와 도도는 국민학교를 졸업해 버린다. “가지고 잊던 빚 에서 빚을 조금 더 얻은” 상황에 디디는 첫 급여를 받은 이후로 꾸 준히 식구 수에서 하나나 두 개쯤 더해서 우산을 사 둔다. 돌려주 지 못한 우산에 대한 마음의 빚이 계속해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연히 만난 도도에게 디디는 우산을 돌려준다. 그 리고 “돌려주지 못했던 우산에 대해서 여태 남은 부채감에 대해 서” 도 털어놓고, 둘은 함께 사는 연인으로까지 발전한다. 그
디디는 더 이상 집에 우산이 몇 개나 있는지 기억하지 않는다. “어 쨌든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 기에 디디가 달칵
방된 순간이다. 그 순간 디디가 가지고 있던 언제든 우산을 돌려주 어야겠다는, 선의에 대한 마음의 빚은 그 대상인 도도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른 선의를 베풀 수 있는 마음으로 확장된다.
. 빚, 너머의 삶 5 빚을 지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에서 빚을 떼어 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빚이 그들 삶의 전부는 아니다. 되갚아 주겠다는 마음, 삶을 옭아맨 굴레를 벗어나겠다는 마음, 빚을 지고 무언가를 얻고자 하 는 마음이 인물들의 삶을 이끌어 가지만 그 삶에는 분명 빚과는 관 계없는, 그러나 분명 삶인 순간들이 있다. 도리어 갚기 위한 삶을 살아가면서, 인물들은 그 살아감의 과정 속 짧은 해방의 순간들을 마주한다. 이 순간들은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끝나는”
인생 속에서도 반드시 찾아온다. 부당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 고, 빚을 짊어진 채 굴레 속에서 쳇바퀴 돌리든 떠돌아야 하는 삶
7) 권여선, 『레몬』, 창비, 2021, 12면.
속에서도 빛나는, 세오의 “다정한 손길”
(『선의 법칙』)
이나 “아침햇
살에 반짝이는 강물”처럼 “슬프면서 좋은”
(「손톱」)
순간들이다.
소희는 강변을 달리는 통근버스 차창에 바짝 붙어앉아 아침햇 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본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알지 못한다.
(「손톱」, ~ 면) 81 82
도망치듯 들어갔던 은행에서 쐬던 에어컨 바람, 물 한 모금은 소 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 순간의 햇빛 한 줄기, 물 한 모금은 짧 은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게끔 만드는 예기치 못한 동력이 된 다. “어디 소풍 가는 것 같”은, “반짝반짝 따뜻”한 아침햇살 강물을 보는 소희의 출근 시간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나오는 길에 마주 했던 그토록 “짧고 강렬했던” 햇빛도 소희에게는 “슬프면서 좋은” 것들이다. 『아직 멀었다는 말』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 도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는 모를 것이다. 세오와 기 정은 여전히 자기 자신의 나약함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구조와 예고 없이 찾아드는 인생의 불행이 두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마다의 삶에는 이런 ‘빛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점멸하고 사라지 는 순간들일지 모르지만 그 순간들을 통해 기정은 “어쩌다 그렇게 된 일”이야말로 인생의 유일한 법칙임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삶은 불확실하므로, “항상 올바르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
은 기정이 그동안 애써 모
(『선의 법칙』, 면) 261 른 척해왔던 자신의 또 다른 두려움을 마주하게 한다. 이제 그녀는 선생으로서 부족한 자신을 숨기며 애써 연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에
게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용기 내어 말하기도 한다. 세오 역시 마 찬가지다. ‘악’을 만들고, 한 사람을 악인이라고 규정짓고 복수하고 자 했던 세오는 편의점 주인과 직원이 서로 비아냥거리다가도 웃음 을 터뜨리고 싸웠다가도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이란 결국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수호의 노모에게 복수하려다 저도 모르게 그의 어깨에 이불을 덮어주며 느낀 어떤 찰나의 선명함은 이제 그의 삶을 깨우고, 갚음의 압박으로부터 해 방시켜 그 너머의 삶을 비춘다. 삶에 있어 빚짐은 필연적이다. 금전적 부채이든, 누군가 선의로 건넨 우산이든 우리는 끊임없이 빌리며 살아간다. 그 삶은 선도 악 도 아니며, 빚만으로 굴러가지도 않는다. 내가 지금 어떤 굴레에 있 는지, 무엇을 갚고 싶은 것인지 알지 못하는 무지한 상태 속에서 그 래도 조금 살아갈 수 있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희미한 순간, 이를 테면 담요를 덮어 주는 손길이나 햇살 같은 것들 속에서 인물들은 성장하고 다시 내일을 살아간다. 달칵, 하고 열리는 신발장 속 미지 로 남은 우산의 개수처럼, 내일에 대한 기대는 일상 속에서 찾아온 다. 그렇다면 앞으로 끊임없이 빚을 지는 인물들에게, 무너지더라 도 다시 한 발짝 나아가는 걸음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걸음 의 원동력 또한 누군가에게서 빌려온 것이더라도 괜찮다.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반드시 내가 빌린 만큼 네게 빌려줄, 따스한 빛이 있 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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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명작 이후의 명작』, 현대문학, . 2022
. 소설을 쓰는 소설
소설에 대한 소설 쓰기 -최제훈론
소설에 대해 지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을 굳이 나누자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비평하기, 둘째는 이야기 쓰기이다. 비평 은 소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보다 직관적인 문장으로 가시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로 소설에 대해 말하는 것은 끊임 없는 재생산이며 새로운 세계의 탄생과도 같다. 소설에 대해 말하 는 이야기가 탄생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 ‘소설’이라는 것이 어 떻게 되어 먹은 것인가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그러면서 또 새로운 1) 최제훈 단편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문학과지성사, 2010)과 장 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자음과 모음, 2012), 『천사의 사슬』(문 학동네, 2018)을 논의에 사용했다.
장면을 떠올리고, 다시금 새로운 방향으로 이야기의 가지가 뻗어 나간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 설화가 가진 이야기의 근본 적인 특성이다. 처음 얼굴 없는 이야기꾼의 입술에서 발화된 단 하 나의 이야기가 수백, 수천 명의 입술을 거치며 수백, 수천 가지의 이야기로 변주되고 몸집을 불려나간다. 그 과정 속에서 주체와 객 체가 뒤섞이고 무너진다. 최제훈의 소설 또한 활자 속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소설 자체 가 하나의 서사를 끊임없이 재해석하며 확장시킨다. 나아가 그 확 장은 소설을 읽고 재해석하는 독자의 머릿속을 통해 더 넓게 퍼져 나간다. 특히 그의 등단작인 「퀴르발 남작의 성」과 첫 장편 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이러한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소설을 쓰는 소설, 픽션과 실제의 구분을 흐리는 소설, 끊임없이 재 탄생되면서 이야기에 대해 더욱 긴밀하게 다루는 이야기가 최제훈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 이야기꾼에게서 시작된 뒤틀린 미로 2 - . 원전 없는 패러디
이야기꾼 최제훈이 능청스럽게 독자에게 풀어내는 이야기는 일 종의 연쇄다. 하나의 이야기 원형이 있고, 그 원형의 이야기가 끊임 없이 복제, 변형되며 퍼져나가는 과정 전반을 담은 소설이다. 예를 들어 그의 등단작이자 첫 번째 단편집의 표제작인 「퀴르발 남작의
성」의 경우 이렇다. 이야기는 처음 소설을 쓴 작가의 할머니가 해주는 옛날이야기 로부터 시작된다.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잡아먹 는다는 퀴르발 남작이 살아 숨 쉬는 성은 다시 동명의 영화로 바뀌 고, 영화는 다시 ‘도센 남작의 성’이라는 일본 영화로 재탄생된다. 흥미로운 점은 중간중간 삽입되는 조각난 이야기들이 취하는 형식이다. 영화 장르, 구전 설화, 소설을 거쳐가며 변화하고 또 확 산되는 이 이야기는 논문과 블로그 게시글, 대학 강의실의 강의 등 의 짤막한 현상들 속에도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몇 번이 고 필터링된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며 종국엔 ‘괴물 남작’의 미스터 리한 형상 속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기까지 한다. 짧은 이 야기로 시작된 소설은 소설을 읽는 독자, 분석하는 교수, 그로부터 탄생된 건축물에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는 블로그 작성자, 각색된 영화 시나리오를 읽는 배우까지 이어지며 변주된 이야기를 읽는 과 정 또한 소설 안에 포함시킨다. 이 과정 속에서 독자는 소설 속에서 ‘퀴르발 남작의 성’을 읽고 분석하는 이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된 다. ‘퀴르발 남작의 성’ 이라는 옛날 이야기는 끊임없이 돌고 돌며 저마다 각기 다른 결말,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파생시킨다. 배역을 따내고 싶었던 배우,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 작품의 변화를 연구 하는 연구자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퀴르발 남작의 성에게로 섞여든 다. 하나의 이야기가 이야기를 변주시키는 인물들의 욕망과 탐욕에 의해 모양새를 바꾸고 오히려 인간들의 모습을 비춰내는 거울의 형
상으로 변화한다. 소설은 얼핏 보면 패러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원전 자체가 비어 있는, 또 다른 서사의 탄생 혹은 재건에 가깝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시작을 추리하고 싶은 욕망이 독자를 텍스트의 미궁 속에 몰아넣는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셜록과 모리어티의 관 계,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에게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던 코난 도일과 셜록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시작과 끝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 현대 사회에 고깔모자와 빗자 루 등으로 정형화된 마녀의 이미지에 대해 신화와 역사, 점성술, 종 교까지 끌어와 이야기하며 인간의 광기와 책임전가를 날카롭게 비 판한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 실체 없는 괴물을 좇 는 에르네스트 프랑켄슈타인과 월턴 선장의 가상 대화를 통해 자 기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자아에 대해 이야기한 「괴물을 위한 변명」 등은 기존에 정형화되어 스테레오 타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상식들을 뒤틀고 꼬아 새롭게 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만든다. 단편집 『퀴르발 남작의 성』가장 마지막 챕터에서는 여태까지 책장 위에 등장했던 모든 인물들이 한바탕 뒤섞여 파티를 벌이다 어디선가 나타난 시체 토막들을 모아두고 추론을 한다. 시체 토막 은 저마다 성별도, 나이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이상하게도 직소퍼 즐처럼 정확히 들어맞는다. 인물들의 모습은 이곳저곳에서 조각들 을 가져와 틈 없이 딱 들어맞도록 끼워 맞춘 최제훈의 소설 그 자체 이며 동시에 그의 글을 읽는 무수히 많은 독자의 모습이다. 챕터가
끝나갈 즈음, 난장판의 한복판에서 ‘퀴르발 남작의 성’에 등장했던 나카자와 사토시는 다시금 이야기한다.
“시공을 뒤섞어 한바탕 난장을 벌여봅시다.”
‘한바탕 난장’이라는 말이 정확하다. 최제훈은 이곳저곳에서 가 져온 텅 빈 원전의 패러디 조각들로 얼기설기 기워 맞춘 서사를 난
- . 끝없이 살아나는 추리 2 2
장처럼 펼쳐 놓고 그 미로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야기의 확장은 의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최제훈의 소설이 얼 핏 보면 추리 소설처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추리 소설과 닮아 있는 구조는 장편 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더욱 특 징적으로 드러난다. 총 네 가지 챕터로 이루어진 소설의 첫 번째 챕터, 「여섯 번 째 꿈」는 한 산장에서 살인자를 연구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 여섯 명이 모여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섯 번째 꿈」이라는 챕터 하나만을 중편 소설로 놓고 보았을 때도, 소설 안 에서 전말을 알 수 없는 사건은 끊임없이 돌고 돈다.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탐구하고자 했던 괴담 속으로 회원들이 빨려들어간 것 같 다가도, 눈이 오는 산장이라는 시공간에 갇혀 버린 듯한 묘사로 모 든 사건이 반복되는 꿈처럼 표현되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이야기
가 돌고 돌면서 왜곡되는 모습을 담고 있지만, 이후 이어지는 다른 챕터에서 이 소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등장한다. 「여섯 번째 꿈」에 등장하는 번역가, 닉네임 ‘폐쇄미로’는 그 다음 챕터인「 」에서 성별도 나이도 성격도 다른 사람이 되어 블 π 랙 쉬폰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산장 속의 살인사
건을 써내려간다. 일종의 환생처럼, 전생의 자기 자신이 겪었던 미 스터리한 사건을 자신이 써내려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편 「복수의 공식」에는 일생의 복수를 위해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 죽음과 소녀>를 틀고, 뭉크의 명화를 걸어둔 방에서 천천히 원수를 살인하는 살인마가 등장한다. 충격적인 반전으로 그 복수극은 누군 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적절히 요리해 만든 연극에 필요한 스토리 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놀랍게도 복수극의 대상으로 죽임당한 사람 또한 실제 복수극의 대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민증을 훔쳐 살아 가고 있던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뭉크의 해골을 끌어안은 소녀 그림은 이후 「 」에서 새롭게 재등장한다. π 산장에서 가장 먼저 죽었던 닉네임 유혈낭자는 산장의 이야기를 쓰
게끔 한 묘령의 여인이 입었던 블랙 쉬폰 원피스를 갖게 된 또 다른 여인의 고양이 이름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이처럼 앞서 소설에 등장했던 모든 인물, 사건, 사물은 모형과 형태를 바꿔 가며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불쑥불쑥 독자의 앞에 모 습을 드러낸다. 그의 등단작에서 퀴르발 남작의 성 이야기가 끊임 없이 살아 움직이며 모습을 바꾸었던 것처럼, 마지막 챕터인 「일 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도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
가며 제 몸뚱이를 자유자재로 부풀린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가장 첫 번째 챕터 「여섯 번째 꿈」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전 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전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듯, 최제훈의 이야기 또한 한 권의 책 안에서 등장인물의 입에서 또 다 른 인물의 입으로 옮겨다니며 조금씩 모습을 바꾸고 그 몸집을 더 해간다.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혼돈을 느끼고, 동시에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에서 이야기의 파편을 재조립하는 경험까지 이른다. 생명체처럼 ‘살아 있는’ 이야기의 구전적 특성이 여기에서 다시 되 살아난다.
- . 추리 혹은 의심 2 3
추리 소설과 최제훈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범인이 없다’는 점이다. 범인은 오직 이야기이며, 이야기는 동시에 피해자이고 사 건 그 자체이다. 그의 소설은 이야기 위에 또 이야기가, 그 위에 몇 개의 연결고리를 가진 비슷하고도 다른 이야기가, 그 위에 같은 방 식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겹쳐지는 방식으로 거대한 미로처럼 정교 히 완성된다. 그렇게 완성된 그의 폐쇄 미로는 더없이 견고하고 단 단해 쉽게 출구를 찾을 수도, 빠져나갈 수도 없다. 범인 없는 범죄수사극이지만 독자는 끊임없이 범인을 찾아 의 심할 수밖에 없다. 어딘가 모르게 석연치 않은 사건이 계속되고, 인 물들에게 범죄적인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일 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도, 『퀴르발 남작의 성』 속 단편들에서
도, 장편 소설 『천사의 사슬』에서도 반복되는 패턴이다. 다음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첫 장에 쓰인 노래 같기도, 시 같기도 한 짧은 글귀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 마리뿐인데 하얀 고양이, 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세 마리 고양이를 키우는데 어느 날 집에 돌아왔더니 화자를 반 기는 일곱 개의 고양이 눈. 그가 잠깐 잘못 본 것일 수도 있고, 어쩌 다 들어온 길고양이가 한쪽 눈을 감은 것일 수도 있고, 고양이가 네 마리가 되어 그가 키우는 고양이 중 하나가 눈을 잃었을 수도 있다.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있으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정답이냐가 아 니라 서술자가 그 사실을 확인하기 두려워하며 “차마 불을 켜지 못 했”다는 것이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천사의 사슬』, 「셜록 홈즈의 숨 겨진 사건」, 「괴물을 위한 변명」, 「그림자 박제」 모두 모종의 사건이 일어난 뒤 인물이,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독자가 함께 그 사건의 배후를 텍스트를 따라가며 좇게끔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추리 소설과 최제훈의 추리 소설이 다른 점은 여기서 나타난다. 최
2) 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 모음, 2012, p.7.
제훈의 소설에서 배후의 진상은 중요하지 않다. 사건의 배후는 드 러날 때도,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으나 확실한 것은 그를 전부 믿어 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최제훈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항상 독자 의 예측을 뛰어넘어 이것이 진실이라 믿게 되는 순간에 ‘과연 그럴 까?’ 하고 그 믿음을 완전히 흔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천사의 사슬 속, 마지막의 거대한 반전이 그렇다. 최제훈의 장편,『천사의 사슬』은 두 가지의 얼개가 얽혀 있다. 하나는 어느 날 짧은 기사를 보고 상상력을 땔감 삼아 사건을 수사 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이야기이고, 나머지 하나 는 그 작가가 만들어낸 형사의 이야기이다. 따지고 보면 서사는 형 사가 화재 사건을 추적하는 것 하나뿐이지만 독자는 그 얼개를 따 라가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최제훈이 직조해낸 이야기의 사슬에 걸려들고야 만다. 특이한 것은 이 소설의 형식이다. 이 소설 안에는 소년 마롤리가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순간이 세밀하게 묘사되 어 뒤섞여 있다. 영화 속에 메이킹 필름이 녹아들어 있는 동시에 그 것을 뛰어넘어 메이킹 필름 자체가 영화가 된다. 앞서 말했던 에셔 의 그림처럼 이야기와 형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소설 속에서 무 엇이 진실인지 알아내려 애쓰면 애쓸수록 독자는 거미줄에 걸린 먹 잇감마냥 소설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사건의 시작은 더 이상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눈 여겨봐야 하는 것은 평범한 화재 사건을, 아서 코난 도일의 죽음을, 마트 화장실에서의 일방적 폭력을 어떻게 꼬고 뒤집고 비틀었는지, 그리고 비틀린 것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는 일이다. 최제훈은
범인을 밝혀내지 않는다. 그는 결과로 나타난 이야기를 미끼로 한 거대한 소설 속에 독자를 빠트리고, 그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다시 몸뚱이를 불리는 이야기를 그대로 내버려 둘 뿐이다.
“누가 그러더군요. 진실을 말하는 건 단순한 반복이지만, 거짓 말을 하는 건 창조적인 과정이라고. 예를 들면 유미미 씨가 처음에 했던 거짓말처럼.” “예?” “저 커피, 맛있다고 했죠?”
‘커피가 맛있다’는 사소한 거짓말로도 하나의 거짓된 세계가 창 조된다. 진짜 같은 거짓말은 어떤 세계에서는 때로 거짓말 같은 진 실이 되기도 한다. 시작을 알 수 없는 진짜 같은 거짓말, 그것이 바 로 소설의 근원이 아닐까. 떠돌아다니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에 깜 빡 낚아 올려져 허구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어디인지도 알
- . 연결고리, 모티프 2 4
수 없는 미로의 중심까지 휩쓸려가는 것이다.
‘미로 같은 소설’을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수없 이 많이 분열되어져 나온 이야기 조각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묶어 내느냐 하는 지점이다. 최제훈은 나비의 날갯짓에 휩쓸리는 세상에 3) Ibid. , p.393.
살고, 그 휩쓸림을 즐긴다. 나비 효과처럼, 하나의 모티프에 몇 가 지 상상력을 보태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흔적을 만 들어진 이야기에 남김으로써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이야기는 연결된 다. 고전 명작이든, 신화든, 명화든, 음악이든, 심지어 불경까지도 최제훈은 가리지 않고 가져와 그의 소설에 응용한다. 그의 모티프 는 달리 말해 방대한 배경 지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대 신화에서 부터 종교 서적, 온갖 과학 이론과 타밀어까지. 그의 폭넓은 지식은 다양한 모티프가 되어 소설을 확장시키고 독자를 그의 방대하고 정 교한 종이 위 미로로 끌어들인다. 최제훈이 모방의 대상으로 차용하는 대상 중 가장 흥미로운 대 상은 스스로 쓴 소설 그 자체이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모 티프를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그 새로운 이야기 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그런 의미에서 도려내진 잡지와 오려낸 사진을 붙이는 판이 같은 곳에 있는 거대한 콜라주 작품처럼 보인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마지막 챕터는 망막박리 수술을 받 게 되어 잠깐 눈먼 작가가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추리 시 리즈 첫 권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독 자가 들고 있는 책 자체가 하나의 상징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주인 공은 폐관 시간 탓에 마저 읽지 못한 뒷내용을 침대에 누워 상상하 기 시작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연체된 책은 『후미코의 발』 로 챕 4) 다니자키 준이치로, 김정미, 『후미코의 발』, 스토리하우스, 2009. 편 지 형식으로, 후미코의 발에 대한 집착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는 소설이다. 해당 소설이라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눈먼 주인공이 누워서 상상하는
터 에 등장하는 책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시력을 되찾고 우연히 π 읽게 된 책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던 그가 여동생에게 눈먼 자 신을 돌봐준 대가로 사주는 원피스는 그 앞 챕터 에 등장하는 고혹 π 의 화자를 이야기 적인 미녀가 입은 옷과 같다. 그리고 그 미녀는 π 속으로 끌어들여 다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원고를 쓰게 만
든다. 책의 탄생부터 읽히는 순간까지가 여러 가지 챕터를 넘나들 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의 구분 없이 무한히 반복된다. 따라서 최제훈의 소설은 소설 쓰기에 대한 소설인 동시에 읽기 에 대한 소설이며, 동시에 스스로 유기체처럼 무한확장한다. 그런 맥락에서 최제훈의 소설은 세상과도 궤도를 나란히 한다. 그의 소 설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자신을 쓰고, 또 읽어 주는 이들의 존재 로 하여금 존재하며 읽히고 상상되는 만큼 무수히 많은 갈래로 뻗 어나간다. 이처럼 겹겹이 쌓인 비틀린 글자의 미로 속에서 독자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흥미로운 이야기에 홀려 끊임없이
헤매고, 또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소설을 벗어난 소설, 그 밖의 우리
그러니 최제훈의 소설은 읽고, 입 밖으로 이야기를 옮기는 독자 가 없으면 완성되지 못하는 소설이다. 실제로 그의 소설은 언제나
책의 제목이 젊은 여자의 발을 집착스럽게 묘사하는 책과 같다는 점이 아 이러니하다.
어떤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읽거나, 어딘가에 전달하면서 시작된다. 변화하고, 전달되고, 퍼져나간 이야기는 출처를 더듬어 올라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퍼져 나가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그가 만들어내는 정교하고도 끝없이 순환하는 미로는 그 매 듭지어진 형상으로 세상을 그대로 비춰낸다. 그렇다면 그걸로 끝인 가? 비춰지는 것으로 소설의 임무는 다한 것일까? 그에 대한 실마 리를 그의 세 번째 장편, 『천사의 사슬』 끝머리에서 찾았다.
“너무 방심하는 거 아니에요? 이거 공모전 같은 데 당선되면 책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으로 출판될지도 몰라요. 정말 그대로 써도 괜찮겠어요?”
“괜찮습니다. 그런 얘길 누가 믿겠어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연결된 지식과 세계 속에서 소설 쓰 기-읽기란 무엇인가. 그에 대한 질문 혹은 미로와 같은 비춤을 던지 는 것이 바로 최제훈 소설의 묘미이다. 그의 소설은 정교하게 짜인 미로다. 정교하게 짜인 미로이되 출구는 없다. 그가 만들어낸 살아 움직이는 정교한 세상, 종이 위의 미로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독자가 그와 이어진 또 다른 미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연쇄는 결국 끝없이 이어져, 비틀린 세 상을 비춘다. 최제훈의 소설은 꼭 `곡선의 미로`처럼 느껴진다. 입 구와 출구가 결국 합쳐지는 곡선의 미로. 시작점도 끝도 없는 완벽
5) 최제훈, 『천사의 사슬』, 문학동네, 2018, pp.340-341.
한 모양의 거미줄처럼 뒤엉킨 사슬 같은 소설 속 세계는 곧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아닐까. 동시에 이 미로는 허구와 외부의 경계가 무너지며 양쪽이 뒤엉 킨 출구 없는 소설이다.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그 것이 허구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소설에 대한 소설”이 다. 『천사의 사슬』에는 유독 불에 관련된 모티프가 많다. 베트남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 부나방, 힌두교의 파괴의 신들, 파유리가 새 유리로 다시 태어나는 유리 공장의 도가니, 자기 몸을 태우고 잿 더미에서 다시 태어나는 피닉스…… 불의 이미지에서 뻗어 나온 이 숱한 모티프들은 기존의 체제에서 정의된 것과는 다른, 독립된 존 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과 소통한다. 이것은 최제훈의 텍스트 전체 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소설을 원료 삼아 타들어가는 불 속에서 새 롭게 뻗어나오는 이야기의 미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 까? 이에 대한 답을 도출하는 것이 최제훈의 다음 작품에 기대해 볼 만한 부분이다. 『위험한 비유』에 이어 『단지 살인마』까지 이 후로도 최제훈의 신작이 꾸준히 발표되었다. 『단지 살인마』에서 는 주식투자, 죄책감, 악의, 범죄심리에 『위험한 비유』에서는 조 금 더 본격적으로 판타지 장르를 넘나드는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 지만 퍼즐을 푸는 것처럼 미로를 따라가는 형식의 구성이 신작에서 도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은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노타우 로스의 미궁처럼 실타래를 풀며 미궁을 더듬는 읽기에서 끝내도록 할 것인지, 소설에 대한 소설 이외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에 대
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느껴진다. 책장을 덮어도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소설을 쓰는 작가 최제훈의 또 다른 신작은 미궁의 복제일 까, 환상문학의 새로운 국면일까?
. 분열하는 ‘나’
분리된 자아, 너머의 세계 -임솔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임솔아의 첫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에서 ‘나’는 여러 번 분열한다. 내가 들여다보는 또 다른 나는 자아 성찰의 도구 로 쓰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불합리함, 모순, 부조리에 희생되고 있는 ‘나’이다. 그의 시에서 자아는 늘상 따로 분리되지만
이 빵 한 개만 주세요.
“내 그림자로 인해 나는 나를 구경할 수 있”
(「나를」)
나는 집게로 빵을 집는다. 내 손으로 만든 빵이지만 빵에 손을 대면 안 된다.
다.
「렌트」 부분
시급과 맞먹는 가격의 빵을 만들면서, 내가 만든 빵을 먹고 싶지
만 쳐다만 봐야 하는 슬픔은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다. 『괴괴한 날
씨와 착한 사람들』에는 이렇게 부조리와 아이러니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적응하지도, 타협하지도 못한 채 놓여 있는 나와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가 여럿 있다.
남겨진 나와 또 다른 나
이곳을 떠나본 자들은
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
나를 여기에 둔 채 나는
저곳으로 다시 빠져나가서
지옥 같은 별, 나를 둘러싼 세상에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아름다움」 부분
창문을 열면 창 안에 서서 창문을 세어보는 나를 볼 수 있다. 알
알이 유리가 빛나고 있다. 불을 끄면 창밖에 서 있는 나와 창 안에
서 있는 내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석류」 부분
시집 전체의 화자에게 이 세상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이곳을 떠나본 자들”에겐 “아름다운 별”이지만, 나에게는 “지옥” 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그리고 화자는 뒤이어지는 시를 통해 그것을 정말 “증명”해 낸다. “기린에 기린이 없”고, “지구에 지구가 없”고, “사람에 사람이 없”는 가짜들이 가득한 세계 속에서 ‘나’ 역시 “사람 같은 모형”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모형들 과 함께 세워둔다”
(「모형」) 이러한 현실 속에서 화자는 ‘자신’과 ‘세계 속의 자신’을 분리함 으로써 ‘나’를 구성하고 있는 세계를 인지한다. 나를 분열시킴으로 써 내 세계를 확인하고, 그 객관화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파 악하는 것이다. 시인은 이 과정에서 “창문”,“액자”,“사진”,“티브 이”와 같은 프레임을 가져온다. 창 안의 ‘나’가 창밖의 ‘나’를 보고, 바다를 액자에 걸고, 그 “바다에 가라앉는 나”를 지켜보면서 화자 의 행동은 ‘나’가 속한 세상을 재현한다. 동시에 프레임 밖의 또 다 른 ‘나’가 존재함으로써, 자아의 분리는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나 를 여기에 둔 채”로 또 다른 나는 “저곳으로 다시 빠져나”감으로써 내가 속한 세계를 관찰하되 덤덤하고 담백한 표현으로 그것을 그려 내는 것이다. 오히려 솔직하고 담백한 진술들은 읽는 이의 가슴을 묵직하게 때린다.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나의 선의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미래 시제로 점철된 예보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선의는 잘 차려입고 기꺼이 걱정하고 기꺼이 경고한다. 미소를 머금고 나를 감금한다.
창문을 연다.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
오늘 날씨 좋다.
「예보」 부분
‘나’는 선의로 예상 가능한 말만 되풀이해 반복한다.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고, 창문 안에 갇혀 지낸다. 그럴 수도 있고 아 닐 수도 있는 일들을 “경고”하고 “걱정”한다. 마침내 시의 후반부 에 ‘선의’에 의해 갇혀 있던 ‘나’는 창문을 열고, 창문 안 혹은 화자 의 안에 고여 있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밀어
낸다. 그리고 드디어 미래 시제가 아닌 현재 시제로 말한다. “오늘 날씨 좋다”고.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만 창문을 열어 들여다보 면 결국 내가 아닌 나와 착한 타인들 뿐이고, 그들을 전부 밖으로 밀어냄으로써 나는 ‘나’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평가에 순응하지 않 음으로써 자아를 찾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화자의 진취적인 ‘나아감’은 다른 방식으로 여러 번 반복된다. 얼룩진 흰 티셔츠에 치약을 묻혀 얼룩을 지우고 , “바다에 가라앉”아 부식되어버린 나
(「기 는 “불가능 (「아름다움」)
본」) 을 보여주는 서커스 단원이 되고” 싶고, “잉어를 따라 헤엄쳐가는 쥐처럼 숨을 거스르고 싶”다며, “드디어”
걸어간다. 자
(「중계천」) 아를 분열시킴으로써 세상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거기서 나아가 다 시 “떠오르”게 된다. 시집의 뒤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젠더, 나이, 신체, 지위, 국적, 인종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과 폭 력에 반대합니다.” 시집 안의 수많은 프레임처럼, 시집 안의 화자와 시집 밖 시인을 겹쳐 보면 겹쳐지는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 개인을 분열시켜 사 회의 부조리를 발견하는 것. 그 발견은 어쩌면 발견 이상의 의미를 지닐 것이다. 세계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살아가는 동력을 얻는 그
일련의 과정을 이 시집은 보여주고 있다.
. 맥락 이어붙이기, 그 속의 또 다른 ‘나’
검은 눈동자 주변을 검은 하루살이들이 배회했다. 눈동자에
무더운 나라의 동물원에도
북극곰이 있었다.
녹아내리는 얼음덩어리 위에
널브러져
북극도 북극곰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북극곰도
입을 벌린 채
비가 내렸고
내 몸을 타고 내려온 것도
발밑에 웅덩이로 고였다.
한 방울
빠져 죽은 하루살이를 손끝으로 꺼냈다.
거기가 북극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매일 아침 나는 순환선에 앉아 있었다.
돌돌 접은 우산의 꼭지에는 빗방울이 모였다.
한 방울 한 방울
호수가 남아 있었다. 북극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웅덩이를 순환선에 두고 내렸다. 「동물원」 전문
이 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마지막 연, 특히 마지막 행 이었다. 우리는 지하철, 혹은 버스에 많은 걸 두고 내린다. 그것들 은 대체로 건망증이나 부주의에 의한 분실물이다. 화자는 웅덩이를 일부러 두고 내린다. 그것은 “하루살이”에게는 빠져 죽을 수 있는 못이기도 하고, “북극곰”에게는 삶의 터전인 호수이기도 하다. 그 를 두고 내림으로써 화자는 그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하루살이 - 북극곰 -나┃┃┃ 검은 눈동자 - 북극의 호수 - 웅덩이
시인은 하나의 시 안에서 “하루살이”와 “북극곰”, “나”를 “검은 눈동자”와 “북극의 호수”, “웅덩이”를 하나로 엮어내고 있다. 시의 첫 행에서 하루살이는 내 눈동자 속에 빠져 죽는다. 나는 하루살이 의 시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건져내고, 북극에 있어야 할 북극곰은 북극이 아닌 “무더운 나라의 동물원”에서 “녹아내리는 얼음덩어리
위”에 “널브러져” 있다. 시의 제목인 ‘동물원’에는 보통 동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화자는 그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너는 왜 여기에 있니. 질문은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왜 “매일 아침” 순 환선에 앉아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눈동자에 빠져 죽은 하루살이, 무더운 나라의 북극곰, 순환선에 앉아 있는 나, 이 모두가 역설적으 로 생뚱맞은 장소에 ‘놓여’ 있는 장면을, 시인은 절묘하게 이어붙인 다.
보고 싶은 세계를 보지 못해 이 세계를 만들던 손들이 지금 이 세계를 부수고 있다.
이 세계도 어느 세계의 모형에 불과하다.
세계가 세계로부터 헛걸음을 한다. 나는 나를 모형들과 함께 세워둔다. 「모형」 부분
앞에 챕터에서도 언급했던 시, 「모형」이다. 플라톤은 ‘이데 1 아’를 이야기하며 ‘시인 추방론’을 주장했다. 자연이 이데아를 모방 한 것이니, 그러한 자연을 모방하는 시는 모방의 모방이라는 것이 다. 시 「모형」 속에 등장하는 세계는 모방의 모방의 모방의 모방 정도 될지도 모른다. 이데아가 사라진 이 세계에서는 오히려 모방 이 실재를 뛰어넘는다. 모든 게 가짜가 되는 것이다. “어느 세계의
모형에 불과한” 세계는 “세계로부터 헛걸음을 한다”. 세계의 원본 조차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임솔아 시인의 특징이자 장점은 바로 자아의 분열과 동시에 이 질적인 사물들을 한데 모으고 그것을 절묘하게 겹쳐 놓는 것이다. 하나와 다른 하나를 겹쳐 보이게 하는 것, 이것은 분열된 나 자신 일 수도 있고 모형과 동물원처럼 완전히 다른 사물일 수도 있다. 어 쩌면 이것은 문학의 본질일 수도 있다. 문학과 삶을 겹치고, 일상의 이질적인 구석을 찾아내 작품 안에 숨겨 놓는 행위로 하여금 우리 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욱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 기 때문이다.
. 세계와 나, 그리고 너머의 것들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시민들이 다시 도시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만” “도시를 망가뜨”리는 게임일지도 모른다.
(「아홉 아무런 목적도 없이, 단지 “더 놀고 싶”은 유희의 욕망으로 불 살」) 타는 어린아이의 게임. 이 세계의 재난과 폭력은 욕망만 있는 어린 아이의 무지로 상징된다. 목적과 의미의 부재보다 우리에게 절망적 인 상황은 없다. 무의미하게 지속되는 온갖 폭력과 희생은 우리에 게서부터 ‘좋은 삶’과 ‘선한 인간’에 대한 믿음을, 그리고 의지를 박 탈한다.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고, 나빠진 상태로 지속될 것이다.
그렇게 슬퍼? 광복 주년 기념 프로그램에서 숭례문이 불타고 70 있었다.
로션을 바르는 것처럼 그는 콧물을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우리나라 국보 호인데 가슴이 미어진다며 운다. 1
나는 키즈 과학체험을 보며 운다. 소의 배에 구멍을 뚫고 아이들
에게
손을 넣게 한다. 소야. 커다란 눈을 껌뻑이는 소야.
아이들이 배에서 꺼낸 곤죽이 된 음식물을 허연 침을 뚝뚝 흘리
면서 핥는 소야.
나는 콧물을 풀고 눈물을 닦으며 티브이를 본다.
지금은 긴급속보에서 카트만두가 무너지고 있다.
사망자가 팔백 명이라더니 내가 이 시를 쓰는 동안 사천 명으로
늘었다.
왜 울지 않아?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는 눈물은 안 난
다고 한다.
티브이에서 본 비극을 모아 나는 지금 시를 방영한다.
뛰어난 인류를 상상한 독재자가 학살을 만든 다큐를 보았고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중심가를 질질 끌려가며 죽어갔고
수백의 사람들이 구경만 했다는 뉴스를 감자칩을 먹으며 메모
했다.
잔재 아래에서 울음소리가 올라온다. 이름이 뭐예요? 대답하세
요. 구조대 올 거예요.
말을 해요, 그래야 살 수 있어요. 나는 티브이에게 말을 건다.
깜박깜박 졸음에 빠지는 티브이를 깨운다.
나는 티브이 속으로 들어간다. 차벽 너머의 그를 만난다.
우리는 마주보고 있다. 이곳은 마주보는 것을 대치 중이라 한다.
이 차벽 너머에서 그가 등을 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등을 돌려야만 같은 티브이를 볼 수 있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티브이」 전문
이 시에서 ‘티브이’는 타인의 불행을 보여 주는 매개체이다. 화 자는 티브이를 통해 숭례문 방화, 동물 학대, 네팔 카트만두 지진, 유대인 학살, 강남 여성 폭행 사건 등의 비극을 관전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라서” 눈물이 나지는 않고, “수백의 사람 들이 구경만 했다”는 뉴스를 “감자칩을 먹으며” 작품으로 쓰기 위 해 메모한다. 화자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도 수많은 와 인 SNS 터넷 창들을 통해 다른 이들의 고통을 그저 ‘목도’한다. 미얀마 사
태도, 트윈타워 청소근로자의 농성도 그렇다. 우리는 쉽게 타인 LG 의 불행을 소비하며, 관람한다. 모니터라는 거대한 “차벽 너머”에 서 그 사람들이 등을 돌리길 내심 바란다. 등을 돌린 채로 우리는 안됐다고, 어떡하냐고 입술을 벌려 말한다. 그 가벼운 말들 속에서 애도와 연민은 어느새 인스턴트 시대의 사이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창밖의 폭풍우’는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시인은 이러한 세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분리하며 나아가 그 너머까지도 발견한다. 현실을 실감하고, 고통을 그대로 느끼며 잔인함에 두려워하는 능력, 공감하고 아파하는 연민의 능력이 현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임을 말한다. 시인은 이러한 나와 타인, 나와 공동체의 미묘한 간극과 연대를 조명한다. 그리고 담담한 문장으
로,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으면서 먼저 손을 내민다. 어쩌면 그들은 ‘나’일 수도 있고, ‘나’일 것이며, ‘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아무와 나는 겹쳐 살고 아무도 나를 만진 적은 없다.”
나는 “궁금
(「나를」) 함을 앓”으며,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본” 다. “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 문장에게 인기가 좋은 아픔과
더불어, 오늘도 “내가 수두룩”할 것이다.
(「모래」)
임솔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문학과지성사, . 2017 전영규, 「세계를 구원하는 우아한 재앙의 미학 - 임솔아, 양안다, 전문영의 시」, 『문학들』 , . 48 호 2018 인터파크 북 저자 인터뷰, 「오늘을 사는 시인 임솔아 DB “가장 경계하는 것은…”」, . . . 2017 / 12 16 :// . . /@ https brunch co kr bookdb 1356
(검색일: . . ) 2022 10 22 차유오, “낯설고 아름다운 세계, 임솔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
:// .
람들>”, 아트인사이트, . . .
(검색일: . . ) 2018 . / 11 12 /.?= 2022 10 23 . https www artinsight co kr news view php no 38423 김지수, “[데스크칼럼] 괴괴한 날씨와 보통사람들”, 조선일보
(검색일: . . ) 2018 :// 08 31 ..//// 2022 10 22 . https biz chosun com 2018 08 31 2018-****-00637 html
상징으로 복원되는 세계 -김숨 작가론, 『물』, 『국수』, 『당신의 신』, 『 의 운동화』를 중심으로- L
. 그로테스크, 일상 속의 압젝트
김숨의 초기작은 크게 첫 소설집 『투견』 과 두 번째 소설
( ) 2005 집 『침대』 로 묶을 수 있다. 이질적인 재료들이 충돌하면서 ( ) 2007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그로테스크한 세계로 점철되어 있으며, 삶의 현실에서 느끼게 되는 불안과 절망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포착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이후 세 번째 소설집 『간과 쓸개』에서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아프게 감지되는 의식의 내밀한 풍경을 그리고 있으며 인간관계 의 심연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 진실과 마주하려는 노력을 보여준
다. 낯설고 불길한 것으로부터의 공포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 일상 속의 공포로 옮겨온 것이다. 최근 작품으로 올수록 잊혀지는 사람들, 소외된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으며 특히 장편소 설 의 운동화를 시작으로 역사적 사건의 피해자들을 집중하여 조 L 명하는 중이다.
이러한 김숨의 네 번째 장편 소설 『물』을 비교적 초기 작품으 로 두고, 단편 소설집 『국수』와 중편 소설집 『당신의 신』, 장편 소설 『 의 운동화』와 비교하며 김숨의 그로테스크함이 어떻게 L 변화 및 발전하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김숨이 다루는 비루한 것
즉 압젝트가 어떻게 세밀화되고 우리 삶의 주변부로 침투해왔는지 그 변화의 흐름은 놀라우리만치 세밀하다. 그녀의 작품은 우리의 일상에 밀접하게 붙어 있으며, 동시에 우리가 제대로 보려 하지 않 았던 불안감과 공포를 건드린다. 이러한 감정의 진동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또한 어떤 방식으로 그녀가 세계를 조명하는지 또한 이 작가론에서 함께 조명하고자 한다.
- . 뚜렷한 상징 2 1
. 심상함이 수상함이 되는 세계
약 네 권의 책을 전부 읽은 뒤에는 자연스럽게 상징에 대한 얘기 를 가장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숨의 소설은 전부 선명하고
뚜렷한 상징을 가지고 있다. 「국수」, 『물』, 『 의 운동화』. 이 L 세 소설의 공통점은 전부 소설 전반을 꿰뚫는 하나의 사물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김숨의 네 번째 소설집, 『국수』의 표제작 단편소설 「국수」 에서는 외롭고 고단했을 계모의 삶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화해를 이 루는 주인공의 심리를 국수를 만드는 일련의 조리 과정과 함께 직 조해 보여준다. 국수를 직접 뽑아 내밀던 계모를 생각하며 직접 국 수를 뽑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며 김숨은 그녀 특유의 가족을 향 한 시선, 잊혀진 기성세대를 바라보는 연민 어렸으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스테이크 한 번 먹어본 적 없 다던 계모가 손으로 밀어 뽑아, 직접 만든 양념장을 끼얹어주던 국 수를 그대로 만들어 혀에 암이 생겼다는 계모가 씹어 삼키기 쉽도 록, 그녀가 예전에 자신에게 해 줬던 것처럼 면발을 똑똑 끊는 장면 을 통해 말이다.
반죽에 찰기가 붙어서인지, 한 덩이의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응 어리를 주무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단단하고 차지게 맺힌 응어리와 한바탕 씨름이라도 하는 듯해요.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괜한 오기까지 뻗치는 게……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내 손가락들이 악착같이 달려들고 매달릴수록 이놈의 응어리 는 더 차져만 가지 뭐예요. 그런데요…… 글쎄 이놈의 응어리와 달 리 말이에요. 제 안에서는 뭔가가 풀리는 것만 같아요. 이놈의 응어 리처럼 뭉치고 맺힌 뭔가가…… 응어리라고밖에는 별달리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그 뭔가가 부드럽게…… 반죽의 시간이 당신에 게는 혹 가슴속 응어리를 달래고 푸는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이처럼 「국수」에서의 국수는 단순한 국수가 아니다. 국수 반 죽은 말없이 그녀와 형제들을 키워내야 했을 계모의 응어리이고, 국수를 뽑아내는 것은 외로움을 풀어내는 행위이며 사랑이고 이해 의 과정이다. 동시에 국수는 ‘당신’에게 있어 ‘끈’이 되기도 한다. 자 식이란 끈 대신 연고 하나 없는 집안에서 재혼한 ‘당신’이 버틸 수 있게끔 해 주었던 끈. 그리고 이러한 국수를 끊어내는 ‘나’의 행위 는 국수를 뽑고 끓이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작품 말미에 가서 완전 히 그 의미가 변화한다. 계모인 ‘당신’이 만들어 준 국수-끈을 원망 과 치기 어린 몸짓으로 끊어내던 단절의 행위에서 혀가 아파 제대 로 국수를 먹지 못하는 당신이 먹기 편하도록 국수를 끊어내 주는 배려의 행위로 말이다. 『 의 운동화』에서는 이러한 매개물이 당 L 연하게도 ‘운동화’ 다.
『 의 운동화』는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소재로 쓰인 장편 L 소설이다. 김겸 박사의 복원 과정 인터뷰를 토대로 쓰인 이 작품은, 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하며 광주 . 사건 L 을 한 개인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거시적 사건으로만 비추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사건으로, 모두의 아픔으로 확장한다.
“삼화고무에서 나온 흰색 타이거 운동화가, 영문어로 타이거
1) 김숨, 「국수」, 『국수』, 창비, 2013, p.61.
라고 쓴 로고가 붙어 있던 그 운동화가 실은 제게도 있었습
( ) TIGER 니다.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그 시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운동화 를 신고 다녔을까요. 그 운동화가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제 친구 도, 도, 도, 도 그 운동화 MJLK를 신고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의 운동화는 저의 운동화이기도 하 L 면서 과와과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MJLK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 시절 의 운동화와 똑같은 운동화 L 가 몇 켤레나 만들어지고 팔려나갔을까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의 L 운동화를 신고 다녔을까요? 그 운동화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요?”
“나는 역사를 기억의 투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억은 구체 적인 매개물로 형성되고 유지되는데, 의 운동화 같은 물건이 그 L 매개물이 아닌가 싶어요.”
작중 ‘ 의 운동화’는 그저 복원해야 하는 복원품, 운동화에 그치 L 지 않는다. 채 관장은 의 운동화를 보면서 길을 잃었던 아들에게 L 억지로 신겼던 짝이 맞지 않는 운동화를 연상한다. 의 어머니는 L 그 운동화가 정말 아들이 신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가 신던 운동 화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 ‘ 의 운동화’라는 것은 단순히 이 신었던 운동화, 신발 한 L
L 2) 김숨, 『L의 운동화』, 민음사, 2016, pp.216-217. 3) Ibid. , p.135.
짝이 아닌 그 시대의 상징, 희생의 상징인 동시에 당대를 살았던 모 든 이들을 한데로 모아주는 어떤 끈이자 매개체이다. 장편소설 『물』같은 경우에도 그렇다. 『물』에서 화자에 의 해 어머니는 물, 아버지는 불에 비유된다. 주변에 관심이 없는 형제 는 공기, ‘나’는 소금, 아름다운 동생은 금, 태어난 나의 아이는 납이 다. 주인공 가족의 집으로 몰려오는 삼백만 톤의 ‘물’은 죽은 어머 니가 밀려오는 것이면서 동시에 쫓겨난 배관공이 드러내놓은 배관 에 흐르는 것이고, 이들이 집을 짓기 위해 몰아낸 어떤 배제된 것들 이기도 하다. 비단 그것은 ‘물’ 뿐만이 아닌, 그 외의 타자화되고 쫓 겨난 모든 것들이다. 이처럼 김숨은 자신의 작품 안에 눈에 띄는, 분명한 상징들을 활 용해 불안한 현실 세계의 균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 . 사람의 이야기, 관계 사이의 심연 2 2
그렇다고 균열을 보여주기만 하는 데서 소설은 끝나는가. 아니 다. 김숨의 소설은 사람에게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난다. 표정 하나, 아픔 하나가 그녀의 소설 안에서는 모두 사건이고 그 사건들은 전 부 사람을 벗어나는 법이 없다. 결국 김숨의 이야기는 사람, 이 세 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김숨의 소설에서 가족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당신의 신』은 김숨의 가족관과 동시에 사랑관을 잘 드러내 주는 책이다. 「이혼」, 「읍산요금소」, 「새의 장례식」 세 편의 중편소설로
이루어진 『당신의 신』은 일종의 연작소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오르기도 하는 작품 편집 방식이다. 각 각 다른 시기에 쓰인 이 중편들은 가정의 분열, 즉 이혼이라는 거대 한 궤도 안에 놓여 묶인다. 가장 첫 번째로 배치된 「이혼」에서는 신화에 등장하는 ‘릴리 트’가 언급된다. 이 ‘릴리트’는 이후 나오는 두 편의 중편소설에 등 장하는 ‘최’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그녀는 “최초의 여자이자 아 담의 첫 아내”로, 아담을 “주인이자 남편으로 섬기기를 거부”해 낙 원에서 쫓겨나 사탄이 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그녀들’. ‘어 머니’이자 이혼하기를 요구하고 요구받는 여성들이 바로 이 릴리트 이다. 이러한 릴리트들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이혼 법정에 어머 니와 아버지를 밀어넣고 나오면서 이제 나는 고아가 되는 건가, 하 고 중얼거리는 ‘나’의 모습은 가정 안에 만연한 폭력과 현대 사회 속 자식과 부모의 가까운 듯 먼 위치, 그리고 가족 관계 사이의 균 열을 보여준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 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중략) “이혼이 나는 통과의례 같아. 나도, 당신도 피할 수 없는 통과의 례. 시속 백이십 킬로로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 만난 터널처럼……” “그래……” “나는 이혼이라는 통과의례가 내게 불행이 아니기를 바라……”
“그래야겠지……” “당신에게는 더더구나 불행이 아니기를 바라고 바라……” “그래, 그래야겠지……”
『당신의 신』뿐만 아닌, 김숨의 모든 소설에서 관계 사이의 심 연이 빠지지 않는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에서는 늙은 시 아버지와 임신한 며느리 사이의 갈등이 기묘한 분위기와 어딘지 모 르게 불쾌한 일련의 사건들로 표현된다. 며느리는 끊임없이 오리 뼈 국물을 우려내고, 시아버지는 병적으로 성경을 필사한다. 온 집 안에 끈적하게 들러붙은 뼈 국물 냄새는 퀴퀴하게 눌어붙은 시아버 지와 며느리,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얼룩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 인지도 모른다. 또한 「구덩이」에서는 이혼을 요구하는 아들과 가 정을 버렸던 아버지의 모습이 구덩이에 돼지들을 묻는 모습을 통 해 현대 사회의 잔인하고 모순적인 모습과 맞물려 제시된다. 후에 서술할 일상 속의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을 통해 관계 사이의 심연을 포착해내는 것이다.
- . 잊혀진 인물들 2 3
김숨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이 불안하다. 동시에 잊 혀진 이들이기도 하다.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섬세한 묘사 로 현대인들의 불안한 심리와 현대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4) 김숨, 『당신의 신』, 문학동네, 2017, pp.64-65.
주던 초기작과는 달리, 최근작으로 올수록 그녀는 잊혀진 이들, 피 해의 기억들을 복원해내는 일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선 기존에 등장하던 인물들은 기성 세대와의 갈등에 빠진, 현 대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에 등장하는 ‘나’가 그렇고, 「그 밤의 경숙」속의 경숙과 남편이 그렇다. 자아를 잠식당한 사람들은 지독한 자본주의 속에서 방황하며 떠돌아다닌다. 그 속에서 기성세 대들은 서서히 잊혀지고
, 드러나지 않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막차) 게 폭력적인 가족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며 , 마침내 그로부 (구덩이) 터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발버둥이 되기도 한다 . (이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복원 역시 복원에 속한다. 분석만 하고 그 어떤 치료도 하지 않는 것도.
그런 김숨이 최근에는 폭력의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그녀에게 관심이 생긴 것은 년, 평창 동계 2018 올림픽대회 미 동계패럴림픽대회 계기 국제 인문 포럼에서 그녀의
강연을 듣고 나서부터이다. 강연에서 김숨은, 전쟁터의 여성들이 겪은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기억의 복원과도 같다고 이야기 했다. 그 복원은 결국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고도 이야기했다. 그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여 개를 엮은 장편소설, 『한 300 명』을 시작으로 꾸준히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책을
펴내 왔다.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와 『당신의 신』속 여성들, 그리
5) 김숨, 『L의 운동화』, 민음사, 2016, p.21.
고 위안부 피해자들까지. 그녀는 잊혀진 이들에 대한 복원 작업을 끊임없이 해나가고 있다.
- . 심상함이 수상함이 되는 세계 2 4
초창기 장편소설을 발표할 때 그로테스크, 우울, 공포 같은 수식 어가 따라붙었죠. 여전히 따라다니는 것 같아요. 공포는 기질적으 로 잘 느껴요. 그런 성향이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이기도 하고요. 어 떤 장면을 보고 공포감을 느끼면 그 장면이 강렬하게 기억되고, 그 게 제 안에서 편집되고 재구성되어 소설 속 장면으로 그려져요. 사 람에게는 단점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순간도 있는 것 같아요.
초기작을 벗어나 최근작까지도, 그녀의 소설 안에는 여전히 ‘그 로테스크함’이 존재한다. 이것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분명 김숨의 소설이 특별히 환상적인 요소를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만 공포심을 느꼈다. 그 이유는 그녀 가 현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면모들을 조명해 소설 안에 드러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에서 노 인의 필사 노트를 덧그리는 장면과 장롱을 열어보는 장면이 공포스 럽게 느껴지는 까닭은 현대인들이 지금 사회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안감을 그대로 잘 잡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서론 제목에 언급한 ‘압젝트’, 그리고 ‘언캐니’에 대해 이 6) <‘기억의 복원’ 위한 소설가 김숨의 질문>, 임지영, 시사IN, 180830
야기해볼까 한다. / Abject abjection 한
은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이야기 로, 폐기물, 즉 비체를 이야기한다. 비체는 비루한 신체, rosuadlm 신체가 아닌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오줌, 똥, 고름, 정액, 땀 등이
그것이다. 김숨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질병, 아픔, 고통, 불안함, 찝 찝함 등이 이것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비체화라는 것은 삶의 감각 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감각을 분리하고자 하는 과정이다. 환경에서 “내가 아닌 것”을 분리하는 과정인데, 여기서 분리된 것 이 바로 비체인 것이다. 이러한 비체화는 죽음의 불가피성을 직접 적으로 상기시킨다. 「국수」에서 당신의 혀가 아픈 것,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에서 노인이 병든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는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개념이다. 이것은 번역하자면 Uncanny 섬뜩함, 두려운 낯섦, 억압된 대상의 회귀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등
을 포함한 낯선 감정이다. 라캉적 의미에서는 실재에 해당하며, 꿈 속에서 억압된 대상이 되돌아오는 현상 또한 언캐니라고 볼 수 있 다. 김숨의 소설에서 우리가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숨 소설 속의 언캐니는 초기작에서는 장편소설 『물』에서 어머니 가 죽고 물이 밀려들어 오는 것과 같은 초자연적이고 거대한 재해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최근작으로 올수록 김숨의 언캐니는 현실 에 기반해 있다. 「그 밤의 경숙」 속 민두 마네킹 머리, 화를 내는 오토바이 운전사,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 등이 이것에 속한다.
중요한 것은, 이 작가를 포함해서, 우리 문학의 미래는, 심연의 언저리를 잠시 배회하다 쉽게 이를 등지고 안전하고 손쉬운 현실
로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오래 심연 속에서 심연을 견디 며 한 걸음이라도 더 전진하려고 노력하는 데 있을 것이라는 점이 다. 심연을 향한 이 작가의 투신과 더불어 한국소설은 새로운 모험 의 길에 들어섰다.
마찬가지로 「구덩이」에서 ‘그’가 돼지를 파묻기 위한 구덩이 를 파면서 자꾸만 그 구덩이로 빠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감히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그 밤의 경숙」 또한 그렇다. 밤중에 도로를 달리며 그녀가 느끼는 불 안과 공포는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과 지위에 자기 자신의 자아가 집어 삼켜진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김숨은 그것을 어두운 도 로와 퀵 오토바이, 남편의 피해망상으로 선명하게 우리의 눈앞에 들이민다. 우리가 그녀의 소설을 읽고 본능적인 공포심을 느끼는 것은 우리 일상 속의 그 내밀한 불안, 언캐니를 마주하는 것이 두렵 기 때문이 아닐까. 「그 밤의 경숙」 마지막 장면이 그토록 섬뜩하 게 느껴지는 것 또한 전조등을 켜지도 않은 채 앞으로만 달려가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심연을 눈앞으로 끌고 오는 이러한 김숨의 시도는 독자로 하여금 심연 속을 헤쳐나 올 수 있는 희미한 불빛이 될 수도 있다.
그녀는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아이들을 지우듯, 혹은 그녀 자
7) 남진우, 「세계의 일식-편혜영 소설의 세계」, 『문학동네』, 2007년 가을호, p.107.
신을 지우듯 실내등을 껐다. 전조등도 밝히지 않은 채 자신들의 차 가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도, 그녀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상징으로 복원되는 우리의 일상
김숨의 소설은 하나의 복원된 세계 같다. 심상한 일상이 수상 한 공포가 되기도 하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현실적이면서도 두렵 도록 내밀한 이야기를 다루기도 한다. 거대한 이야기를 하나로 꿰 뚫는 구체적인 사물 하나가 놀랍도록 정교하게 현대 사회를 비춰준 다. 이를테면 국숫발이, 이혼서류가, 구덩이가, 오리 뼈 국물이, 물 과 불과 공기와 금이 그렇다. 김숨은 사물의 속성을 면밀히 파악해 그것을 우리가 사는 세계와 엮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줄 아는 작가다. 그뿐인가. 그녀의 복원 작업은 현 사회에만 그치지 않는다. 『 L 의 운동화』 속 운동화가 물질의 복원이라면 그녀가 쓰는 위안부
이야기는 기억의 복원이다. 김숨은 스스로가 역사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오직 세계를 ‘복원’할 뿐이 다. 그러나 여기에서 복원은 기억, 기억의 투쟁이며 자아의 싸움이 다. 역할과 지위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는 이들, 폭력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결국은 김숨의 복원 작업 안에 포함된다.
8) 김숨, 「그 밤의 경숙」, 『국수』, 창비, 2013, p.265.
우연한 것들, 계획에도 없던 것들, 지나가는 것들, 지나가지만 일상에서 반복되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결정짓고는 합니다.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 김숨. 그녀가 앞으로 복원해낼 세계는 또 어떤 모습일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또 어떤 표정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그녀의 작품은 여전히, 세상의 어느 모서리를 복원하고 있다.
9) 김숨, 『L의 운동화』, 민음사, 2016, p.229.
공종구, 「 김숨 소설의 병리학적 상상력 , 현대소설연구
」 『 제 호, 한국현대소설학회, . 58 [ - 대담] 김숨에게 묻다 , 오늘의 문예비 김경연・김숨, 「」『E mail 여름 통권 호, 오늘의 문예비평, . 평 』 2008
』
홰
닭들이 홰치는 소리가 들린다. 양계장을 둘러싼 철창이 달빛에 시퍼렇게 빛났다. 나는 숨을 죽이고 양계장 뒤쪽으로 숨어들었다. 한때 자주 애용하던 뒤쪽 개구멍을 통해서였다. 양계장 특유의 옅 은 소독약 냄새가 섞인 콤콤한 배설물 냄새와 닭털 냄새가 물씬 풍 겨왔다. 닭들이 있는 컨테이너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코끝에 맴도 는 비릿한 냄새가 짙어졌다. 새벽의 양계장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 다. 컨테이너 앞쪽에 무언가 그득히 쌓여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침 을 꿀꺽 삼켰다. 떨리는 발밑에 젖은 풀잎이 밟혔다. 가까이 다가가 자 언뜻 흐릿한 형체가 보였다. 나는 망설이다 한 발을 더 내딛었 다.
“다녀오겠습니다.” 늘 그렇듯 돌아오는 답은 없다. 닫힌 안방 문은 미동조차 없이 잠잠했다. 차려둔 밥이 식을까 걱정되기도 잠시, 언제나처럼 나는 더 말을 보태지 않고 신발에 발을 욱여넣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문 질러 빠는 탓에 금방 해진 운동화는 내 가무잡잡한 피부와는 달리 새하얬다. 최대한 신발을 느리게 신어 보았으나 꼭 닫힌 문 너머에 선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단단히 신발끈을 매고 집을 나섰다. 나는 출신도 분명하지 않은 놈을 호적에 올리고 키워준 것만으 로도 할머니에게 감사해야 한다. 어릴 적 할머니 뒤를 쫓아 시장을 나돌아다닐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꼭 한 마디씩을 보탰다. 어쩜 그 렇게 마음이 넓으시냐, 꼬맹이 너는 할머니한테 잘해라, 뭐 그런 식 이었다. 말을 보태는 사람들에게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내게 그 말들이 거짓이라고 일러주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내 게 동정하듯 관심을 갖는 이유를 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내가 없 는 것처럼 행동하는 이유를 안다. 몇몇이 내 등 뒤에 대고 가래침을 뱉듯 끈덕지게 욕지기를 내뱉는 이유도 안다. 그건 내가 베트남 튀 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 쯤은 나도 알 수 있다. 커다랗게 툭 불거진 눈과 가무잡잡한 피부는 단정하고 예리한 할머니의 눈초리와도 다르고, 양계장의 주인 부부 와도 다르다. 학교를 처음 갔을 적에는 뭣모르고 먼저 말을 걸기도 했으나,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피하는 모습을 보고 곧 관뒀다. 나는 엄마가 서울에 살고, 얼굴이 반반한 망할 년이라는 것 말 고는 아는 것이 없다. 평소에 내가 뭘 하든 가만히 내버려두던 할머
니도 엄마 이야기를 물으면 늘 그렇듯 못 들은 것처럼 대답하지 않 거나 뭐 그런 걸 궁금해 하느냐고 언성을 높이곤 했다. 열일곱이 된 지금까지도 그렇다. 아, 언젠가 할머니와 통화하는 목소리를 엿들 어본 적은 있다. 나는 이 집에 사는 동안 할머니가 그토록 역정을 내는 것은 처음 봤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것도 그날이었다. “이제 네 아들 아니고 내 아들이다. 네가 여기 내던지고 갔으면 서 무슨 말이 많아!” “엄마! 지금 무슨 소릴,” “시끄럽고, 이런 일로 다신 연락하지 마라!” 거센 파열음이 들리고 한동안 씨근거리는 할머니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할머니가 나오기 전에 얼른 작고 낡은 내 방으로 몸 을 숨겼다. 내가 뭘 하든 신경쓰지 않던 할머니가 내게 하지 못하게 하는 일 딱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엄마에 대해 묻는 것이고 나 머지 하나는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이다. 집으로 걸려오 는 전화는 항상 할머니가 받았고, 할머니가 없으면 아예 받지 않았 다. 그러니 날 받아줄 곳이 이곳 말고는 어디에도 없을 거라는 할머 니의 말은 거짓이다. 그날 들었던 통화는 잠깐이었지만, 엄마는 다 시 나를 찾고 있는 게 틀림없다. 나는 머릿속으로 방바닥 장판 밑에 있는 하얀 봉투를 떠올렸다. 할머니에게 주급을 속여 매달 조금씩 빼돌린 돈이 이제 곧 백만 원이다. 오늘이 주급 날이니 그 돈을 받 으면 딱 백만 원이 된다. ‘서울? 서울 가려면 그래도 백만 원은 있어야 어디 발 뻗고 잠이
라도 자겠지. …근데 그런 건 왜 묻는 거냐?’ 나는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나를 살피던 할머니를 떠올리다 몸 을 가볍게 떨었다. 아무튼 이제 곧 떠날 테니 상관없는 일이다. 조 금만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학교, 오른쪽으로 가 면 양계장이다. 나는 망설임없이 오른쪽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어 차피 학교야 가든 안 가든 똑같다. 언젠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출 석부에 결석으로 체크해뒀던 담임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밤, 서 울로 갈 것이다. 엄마가 있는, 서울로.
양계장 앞은 조용했다. 근 한 달 동안 시끄러웠던 걸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는 평화였다. 부티마가 사라진 뒤부터 여기저기서 사 람들이 몰려들어 문도 제대로 열고 들어가지 못했던 게 생생했다. 나는 잠금장치를 풀고 양계장 안으로 들어섰다. 족히 이천 평은 되 어 보이는 거대한 컨테이너 건물은 언뜻 보기에는 양게장 같지 않 았다. 나는 위생 가운을 입고 위생 장갑을 낀 후 도어락을 해제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혹여라도 닭들이 병균에 감염되면 신선하지 못한 달걀들이 나오기 때문에 위생 장갑과 소독은 필수였다. 안에 들어 서자마자 닭들이 철창 안에서 홰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개가 퍼 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날개가 철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한데 섞여 둔탁하고 난잡한 소음이 되었다. 양계장 문을 처음 여는 일은 원래 부티마가 하는 일이었으나, 한 달 전부터는 내가 맡아서 하고 있다. 나는 익숙하게 라인을 돌며 달걀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라인과 라 인 사이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이 긴 복도처
럼 나 있다. 한 뼘 너비의 닭장에 갇힌 닭들 중 몇몇이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퍼덕거리며 날갯짓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닭들은 얌전 히 철창 안에서 눈을 끔벅일 뿐이었다. 나는 노련한 솜씨로 철창 밑 의 철판에서 닭들의 배설물을 피해 달걀만을 골라 담았다. 그러고 보니 철판의 짚도 갈아줄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삼 층짜리 아파트 마냥 세 겹으로 층층이 쌓인 닭들을 보며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 로 정리했다. 이 라인 역시도 부티마와 함께 담당하던 라인이었는 데, 내가 무티마의 몫까지 전부 맡게 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졌다. 나는 빠르게 다음 라인으로 이동했다. 다른 아주머니들은 한 시간 뒤인 아홉 시에 출근한다. 주인 부부는 점심 즈음에 느즈막이 출근해 달걀이 잘 나오고 있는지 확인한 뒤 돌아가는 게 보통이다. 부티마가 사라진 지는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부티마는 자신아 삼십 대 중반이라고 했는데, 얼굴만 봐서는 그 보다 훨씬 나이 든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일찍 나와서 양계장의 문을 열었고,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으며 주인 부부 다음 으로 이 양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매일 이만여 마리 의 닭들이 낳는 천 오백여 개의 달걀은 어떤 방식으로든 부티마의 손을 거쳐 갔다. 그녀는 달걀 소독과 함께 양게장 안의 열다섯 개 라인 중 무려 다섯 개나 혼자 담당하고 있었다. 나와 함께 담당하던 라인까지 합치면 부티마 혼자서만 일곱 개의 라인을 관리하는 셈이 었다. 부티마는 고향에 있는 제 동생을 닮았다며 나를 자주 챙겨주곤
했다. 내가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였다. 양계장에서는 직원들에게 따로 점심을 주지 않기 때문에 다들 도시락을 싸 와야 했는데, 나는 도시락을 싸 오지 않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할머니가 먹을 상을 차려놓고 나오기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할머니 가 도시락 같은 걸 싸줄 리도 없었다. 몇 번 점심을 굶어본 나는 아 침도 챙겨 먹고 저녁도 일찍 먹는 편이겠다 차라리 도시락을 쌀 시 간이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게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부티마가 보기에는 달랐나 보다. 그녀는 내가 점심시간마다 홀로 일하는 모습을 몇 번 지켜보더니 일주일쯤 지나자 내게 내 몫의 도 시락을 내밀었다. “뭐예요?” 다른 직원들은 중장년 아주머니들이라 말을 붙이기도, 살갑게 답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그동안 양계장에서 내게 말을 붙인 사람 은 날 채용한 주인 부부뿐이었다. 부티마는 경계하며 묻는 내 손에 도시락통을 단단히 쥐여주었다. “도시락. 안 먹고 일하다가 큰일 나.” 나는 안 먹고 일하면 대체 무슨 큰일이 난다는 건지 묻고 싶었으 나 조용히 도시락을 받아들었다. 이런 때 말을 보태면 결코 좋은 소 리는 못 듣는다는 걸 몸소 배웠기 때문이다. 고슬고슬한 쌀밥에 계 란말이가 전부인 도시락이었지만 눈물이 날 만큼 맛있었다. 부티마 는 내가 도시락을 전부 비울 때까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그 후로 도 부티마는 매일 내게 내 몫의 도시락통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내 가 다 먹은 통을 그녀에게 내밀 대까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옆에서 양계장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 기 시작했다. 주로 고향의 가족 이야기였다. 부티마의 동생은 올해 로 스물다섯인데, 그녀가 한국으로 올 때 열다섯 살이었단다. 딱지금네 나이지. 부티마는 말하며 웃었다. 너는 눈이 크고 동그란 게 아드난과 참 닮았어. 물론 키는 아드난이 더 크지만. 부티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종종 동생 이름을 중얼거리곤 했다. 아드난. 나는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해졌다. 나는 변종이었다. 반 쪽은 한국인이고 반쪽은 동남아인 변종. 그렇기에 나는 부티마의 사랑스러운 동생도, 할머니의 자랑스러운 손자도, 엄마의 아들도 될 수 없는 것일까. 한 번은 부티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고향과 가족들을 좋아하면서 왜 이곳에서 계속 일을 하느냐고. 고향에 가고 싶진 않 아? 부티마는 내 물음에 잠시 말이 없다가 웃으며 답했다. “물론 가고 싶지. 그치만 못 가.” 그러니까 부티마의 말은, 자신이 아니면 집의 생활비를 벌어들 일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일이 아무리 고되고 외로워도 집에서 자 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떠올리면 전부 견딜 수 있단다. 그 리고 이미 이곳에서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해졌다고도 했다. 그렇게 말하는 부티마는 지쳐 보였지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티마는 내게 가족 이야기를 할 때면 전에 없이 환하게 웃곤 했 다. 그때서야 부티마가 제 나이처럼 보였다. 그때 부티마의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집에 와서도 한참을 엄마도 저렇게 아름다 운 사람이었을지 고민했다. 할머니에게 부티마의 이야기를 꺼낸 건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노골적으로 부티마를 싫어했다. 내가 처음 부티마 얘 기를 꺼냈을 때, 할머니는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 태국 범 죄자?’하고 반문했다. 나를 볼 때 이따금씩 느껴지던 눈빛이었다. 할머니는 종종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주로 마을에 하나 뿐인 교회에 다녀왔을 때, 혹은 시장에서 만난 불법체류자 이야기 를 할 때, 혹은 그냥 아무 때나 그랬다. 할머니는 부티마 이야기를
“그런 여자 가까이하지 마라.”
늘어놓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곤 홱 뒤돌아 누워 손을 홰홰 저었다. 그만 나가보라는 뜻이
“크흠!”
었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의 당부를 지킬 수 없었다. “부티마는 범죄자가 아니에요. 체류는 어쩔 수 없었던….”
돌아누운 할머니가 큰 소리로 기침을 했다. 나는 말없이 그대로 방을 나왔다. 그 뒤로 며칠 부티마를 멀리해보려 했으나 잘 되지 않 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내게 도시락을 가져다주었고, 나는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 뒤 다 먹은 도시락통을 내밀었다. 엄마가 있었다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부티마의 도시락을 가능한 오래 씹어 먹어려고 노력했다. 입을 우물거리다 보면 꼭 내 이야기를 전 부 들어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는 부티마가 사라지기 얼마 전이었다. 부티마가 오늘은 특 별한 걸 가져왔다며 도시락통을 내밀었다. 뚜껑을 열어보자 처음 보는 음식이 나왔다. 간장 양념이 배어든 넓적한 국수 가닥 위로 알
맞게 익은 숙주가 속살이 발간 새우와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팟타이야.”
내가 말없이 보고만 있자 부티마가 말을 덧붙였다.
그녀가 태국에서 즐겨 먹었다던 음식이다. 집에서 아드난한테 자주 해줬었어. 아드난이 내가 해주는 것만큼 맛있는 게 없다고 했 었는데 … 부티마는 초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젓가 락으로 천천히 볶아진 국수 가닥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오래 씹 었다. 부드러운 새우 살과 쫄깃한 쌀국수, 아삭한 숙주나물이 어우 러져 달큼한 맛까지 났다. 내가 말이 없자 부티마가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천천히 입안에 든 것들을 삼키고 말을 꺼냈다. “맛있다.” 그렇지? 부티마가 환하게 웃었다. 나는 팟타이를 오래 우물거리 며 물었다. “웬일로 태국 음식을 다…” 아. 부티마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전에 없이
“…현.”
진지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내가 국수를 입에 가득 문 채 응과 웅의 중간쯤 되는 발음으로 대답했다. 부티마가 한참 입술을 달싹이다 입을 열었다. “잘하면, 잘하면… 곧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한 부티마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런 부티마를 가만 히 바라보다 다시 팟타이를 먹었다. 어쩐지 속이 메슥거렸다.
“얘, 밥 안 먹니?” “이것만 마저 하고 갈게요.” 나는 사료를 뿌리던 손을 잠시 멈추고 답했다. 박 아줌마다. 그 녀는 나를 얼마간 쳐다보더니 이내 휴게실로 가 버렸다. 철창에 갇 힌 닭들은 목을 쭉 빼고 사료를 먹으려 안간힘을 썼다. 사료를 붓던
“말이 좀 많았어야지.”
걸 멈추고 밖으로 나섰다. 여전히 홰치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은 기자들이 좀 뜸하네요.”
“젊은 사람이 참 안 됐어요, 조금만 더 버텼으면 됐을 텐데. 단 속 때문에 그렇게 된 거 아니에요. 그 단속반 반장은 진급해서 여기 떴다면서요?” 그 말에 도시락을 열던 박 아줌마가 다급하게 쉿, 소리를 내며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댔다. 누가 들었을까 주변을 살피는 고갯 짓이 민첩했다. 얘가 얘가, 큰일날 소릴. 먹기나 해. 들려오는 말소 리를 배경삼아 휴게실 한켠에서 묵묵히 도시락을 꺼냈다. 이제 직 원들은 건넛집 김 씨네 이야기로 화제를 바꿔 쉴 새 없이 떠들고 있 었다. 이래서 전엔 휴게실이 아닌 바깥에서 먹었는데. 원래는 부티 마까지 포함해서 일하는 사람이 총 다섯 명이었는데, 이젠 양계장 에서 일하는 사람이 네 명뿐이다. 나는 드물지만 학교를 나갈 때도 있으니 비정규직이라 제외한다 치면 고작 세 명뿐인 거다. 나를 제 외한 세 명은 전부 , 대 중년이었다. 아까 나를 불렀던 박 아줌마 4 50 가 나를 흘긋 보더니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양계장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휴게실에서 튀기라는 말과 함께 왁자한 웃음소리
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점 심을 계속 먹어버릇하니 거기에 적응이 된 건지, 밥을 먹지 않고 일 을 하면 영 속이 허전해 부티마가 없어도 계속 도시락을 챙겨 다니 고 있다. “그나저나 그쪽에선 계속 연락 온다면서요? 이주노조인지 뭔 지.” 누군가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근데 그럴 만도 하지. 자꾸 토끼 몰듯이 몰아대니까 떨어져서 죽는….” 박 아줌마가 내 쪽을 보며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직원들은 일제히 헛기침하며 화제를 돌렸다. 저기 저 닭들은 죽을 때까지 저 철창에서 사는 거죠? 그렇지, 누군가 긍정했다. “저 닭들은 나오면 잡아먹힐걸? 도망가려다가.” 왁자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긴 도시 근교라고 해도 산짐 승들이 무섭죠. 그때 누군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아저씨였다. 아저씨는 큰소리로 통화를 하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글쎄, 나는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막말로 도망치던 사람 일자리 제공하고, 장례까지 치러줬으면 다 한 거 아닙니까? 아무튼 끝난 일이니까 더 연락하지 말아요! 재수없게….” 통화를 마친 아저씨가 휴게실 쪽으로 왔다. 직원들은 급하게 다 먹은 도시락통을 챙겨 일어났다. 나도 천천히 자리를 정리하고 몸 을 일으켰다. 다시 일할 시간이었다. 그날, 그러니까 부티마의 팟타이를 먹었던 날이었다. 점심을 막
먹고 일어나려는 우리에게 누군가 다급히 달려왔다. 아마 직원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부티마 큰일났어, 단속 떴어 단속. 우리가 영 업 방해라고 막았는데도 막무가내로 들어와서…. 부티마는 예의 그 짙은 쌍꺼풀이 진 눈을 쏟아질 듯 크게 뜨더니 사이렌 소리가 들리 자 급하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마을의 누군가 부티마를 신고한 모 양이었다. 그날 저녁, 단속반을 피해 양계장 뒷편의 뒷산까지 들어 간 낙티마가 추락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동네는 도시 근교인 탓 에 도로와도 밀접했으나 뒤쪽에는 커다란 산이 있었다. 열댓 명이 되는 남자가 부티마를 쫓아 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밥을 먹다 말고 곧장 방 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고 아버지, 아이고 아버지. 할머니가 기도 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바깥을 내다봤다. 그날은 아주 무더운 여 름이었다. 그날 이후로 할머니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학교에 가지 말 라고 했다. 밖에 나갈 때는 살이 하얗게 되는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 라주고서야 방으로 들어갔다. 날마다 양계장 앞에는 기자들이 벌떼 같이 몰려들었다. 부티마는 얼마나 일했나요. 힘든 점은 없어 보였 나요. 이런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런 질문은 많지 않았다. 그들 은 전부 단속반이 얼마나 험악하게 굴었는지, 부티마는 언제 산 속 으로 도망갔는지를 궁금해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이주 노동자 단속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 십니까!”
“여성이 과잉 단속 때문에 죽은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자, 주급이다.”
나는 한동안 양계장 뒤편의 개구멍으로 출근했다.
주인아저씨가 내게 흰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봉투를 받아 품 안 에 챙겨 넣었다. 이걸로 백만 원이다. 직원들은 전부 퇴근한 눈치였 다. 대가 넘었다는 아저씨는 변종인 내게도 꽤 친절한 사람이었 60 다. 하긴 단속반에 쫓기던 부티마를 처음 받아준 것도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요즘 들어 부쩍 거칠어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 내렸다. “안 가냐?” 나는 멍하니 아저씨를 보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아, 소독할 겸한번더 돌아보고 가려고요.” “그래, 뒷정리도 좀 부탁한다.“ 뒤돌아 가는 등에 대고 꾸벅 인사를 했다. 조심히 가세요. 아저 씨가 손을 휘 내저었다. 나는 다시 양계장으로 향했다. 소독약을 집 어 들고 양계장에 들어서자 날개가 철창에 부딪히는 소리부터 들려 왔다. 특히 부티마가 내가 맡았던 라인은 유독 쌩쌩한 놈들이 많았 다. 저래 봐야 금방 익숙해져서 몇 주 후면 축 처져 있을 게 뻔했다. 나는 한 사람이 겨우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좁은 라인 사이로 걸어가 며 소독약을 뿌렸다. 약을 뿌리지 않으면 또 어떤 병이 돌지도 몰랐 고 달걀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내가 지나쳐갈 때마 다 몇몇 놈들이 철창 밖으로 머리를 디밀고 홰를 쳐댔다. 나는 문득 자리에 멈춰 서서 철창을 바라보았다. 닭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놈은 사납게 몸을 부풀리고 목을 쭉 빼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검 은 눈동자가 조명을 받아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몸에 꽉 맞는 철창 이 놈을 옥죈 사슬 같았다. 닭에게 철창이 사슬이라면 나에겐 이곳 이 사슬인 셈이다. 부티마에겐 무엇이었을까. 이곳? 고향에서 자신 만을 바라보는 가족들? 나는 고향을 이야기하던 부티마를 떠올렸 다. 저 닭들은 고향이 어디일까. 분명 저 철창은 아닐 것이다. 철창 에서 시작된 종족은 없다. 그러나 저 닭들도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 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고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한 뼘만한 철창에 갇힌 채 끊임없이 알만 낳으며 어딘지 모를 고향을 향해 발버둥치는 거겠지. 문득 부 티마의 말갛게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열쇠 뭉치가 손에 잡혔다. 어느샌가 손에 땀이 흥건했다. 입술을 꾹 물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내일이면 나는 이곳에 없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열쇠를 꺼냈다. 차가운 금속의 냉기가 위생장갑을 뚫고 들 어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열쇠를 찾아 철창을 잠가둔 자물쇠에 맞 췄다. 달칵,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오직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눈썹 위 로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차례로 라인을 돌며 열다섯 개의 철창을 모조리 열었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머리 꼭대기에 서 심장이 뛰는 듯했다. 목덜미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손에 힘이 빠져 철그렁 소리를 내며 열쇠가 미끄러졌다. 속이 체한 것처럼 메 슥거렸다. 닭들이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뒤도 돌아보 지 않고 양계장을 뛰쳐나왔다. 등 뒤에서 금방이라도 쫓아올 것 마
냥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 뒤로 석 양이 지고 있었다.
땀에 젖어 집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마루에 나와 있었다. 다 녀왔습니다. 나는 태연한 체 인사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할머니 는 이쪽을 흘긋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땀으로 흥건한 목덜 미를 소매로 가볍게 훔쳤다. 할머니는 보통 방에 누워 있거나,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았다. 할머니가 어디를 갔다 오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으나,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아마 동네 끝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정자에서 친구들과 화투를 치고 왔을 테다. 할머니를 지나쳐 욕실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할머니가 내 쪽 은 보지도 않고 말을 꺼냈다. “돈은 받았냐?” 달라는 뜻이다. 급여는 보통 할머니가 관리한다. 나는 품 안의 봉투를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오늘 하루쯤은 내가 전부 가져가 도 되겠지. 부티마가 사라진 뒤부터 아저씨는 종종 약속한 날짜보 다 주급을 늦게 주거나 일찍 주곤 했다. “아뇨, 오늘은 바쁘다고 다음 주에 준다고 하셨어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할머니의 치켜 올 라간 눈초리가 나를 응시했다. 할머니는 한참 나를 보다 그래? 했 다.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고는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봉투를 잘 갈 무리한 뒤 옷 사이에 숨겨두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할머니보다도 작은 키에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크고 둥그런, 툭 튀어나온 눈. 가
무잡잡한 피부 위로 듬뿍 바른 미백 선크림이 허옇게 떠 있었다. 어 딜 보아도 할머니의 핏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무을 받아 씻 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차가운 물줄기가 눈 을 타고, 볼을 타고 턱 끝으로 흘렀다. 나는 타올로 몸을 문질렀다. 흐르는 물을 따라 피부색이 노랗게 물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세 게, 더 세게 ㅎ미주어 밀었다. 볼을 타고 흐르던 물줄기는 어느샌가 미적지근해져 있었다. 내가 주급을 받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으므로 상에 오른 반찬 은 오직 나물뿐이었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할머니가 밥 을 먹으며 한숨을 쉬는 건 일상이었으므로 나는 밥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수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했다. 할머니는 항 상 밥상에서 소리를 내지 않았다. 움직일 때도 조용히 움직이는 편 이었다. 최대한 할머니를 닮으려 노력했으나 이렇다할 칭찬도, 그 렇다고 따가운 멸시도 없었다. 수저를 내려놓은 할머니가 입을 열 었다. “현아.” 나는 풋나물을 우물거리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가 나를 이름으로 부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 이름이 무어냐는 물음 에 강 현이라고 답해준 적은 있었어도, 절대 이름으로만 부르지는 않았다. “돈은 내가 다 보관해 놨다.” 나는 놀라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나는 애 써 침착하게 되물었다.
“예? 무슨 돈이요?” 할머니가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돈 말이다, 돈. 거의 백만 원쯤 돼 보이던데. 내가 너 받는 돈이 얼마인지도 몰랐겄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걸 할머니가 알고 있었다고? 심장이 빠 르게 뛰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할 말이 떠오르질 않 았다. 입만 벙긋거리는 나를 본 할머니가 머뭇거리다 뒷말을 이었 다. “내가… 여태 너한테 해준 게 없는 거 안다. 그래도… 그래도 산 정이 있는데, 여기 있으면 안 되겠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꽉 깨문 입술에서 피 맛이 났다.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서울에 갈 수 없다. 엄마가 있 는, 서울로 갈 수 없다. 누군가 커다란 벽돌로 내 뒤통수를 내리친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벌판에 홀로 놓인 것 같았 다. 갈 곳도, 있을 곳도 없다. “너라도 없으면 이 늙은이가 여서 어떻게 버텼겄냐. 응? 현아.” 그럼 나는? 내가 있을 곳은? 내가 버틸 곳은? 입술이 아릿했다. 어디선가 홰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답 안 하나. 나는 울음이 나
“…네.” “그래.”
올 것 같은 걸 눌러 참고 간신히 답했다.
무거운 정적이 방안을 떠다녔다. 이따금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려
왔다. 할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라고 평생 여서 살고 싶었겄냐. 나도 떠나고 싶었어. 근데 도 통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다. 뭘 해봤어야지, 어디를 가든 말든 하지. 할 줄 아는 게 이 동네서 농사짓고 밥하는 것뿐인데 대 체 어디서, 내가….” 할머니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벽지를, 아니 그 너머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따라서 벽지를 보았으나 할머니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허공에 붕 뜬 것처럼, 어딘가 허전 하고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꼭 바깥에서 부는 바람이 내 안에서 부 는 듯했다. 한동안 가만히 있던 할머니가 다시 수저를 들며 가볍게 말했다. “그나저나 닭장 문이 열렸다던데… 거기 있던 닭반이 뛰쳐나와 서 거 나온 닭들이 거진 다 죽었댄다.” 다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급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할 머니가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할머니의 눈초리가 내 등 언저리를 날카롭게 찔렀다. “네놈 짓이냐?” “아니요.” 거의 반사적으로 답했다. …그래? 할머니는 가만히 나를 쳐다 보다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밥을 씹었으나 쌀알 한 톨도 넘길 수 없었다. 손에 땀이 차서 자꾸만 수저가 미끄러졌다. 수저 소리가 요란했으나 할머니는 여전히 별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잠을 자지 못하고 계속해서 뒤척였다. 할머니는 이미 잠든
건지 집안이 고요했다. 혹시나 해서 살펴본 장판 밑에는 그동안 돈 을 모아 두었던 봉투가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바로 누워 천장을 바 라보았다. 절반. 나온 닭들이 절반이라고 했다. 전부 도망가라고 철 창을 열어줬는데 고작 절반이 나왔단 말인가. 심지어 나온 닭들은 죽었댄다. 거진 다 죽었다고. 아니, 할머니가 나를 떠보려고 거짓말 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양계장으로 가야 겠다. 겉옷만 대충 걸친 나는 곧장 양계장으로 향했다. 닭들이 홰치 는 소리가 들린다. 양계장을 둘러싼 철창이 달빛에 시퍼렇게 빛났 다. 나는 숨을 죽이고 양계장 뒤쪽으로 숨어들었다. 한때 자주 애용 하던 뒤쪽 개구멍을 통해서였다. 양계장 특유의 옅은 소독약 냄새 가 섞인 콤콤한 배설물 냄새와 닭털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닭들이 있는 컨테이너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코끝에 맴도는 비릿한 냄새가 짙어졌다. 새벽의 양계장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컨테이너 앞쪽 에 무언가 그득히 쌓여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거 나온 닭들이 거진 다 죽었댄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떨리 는 발밑에 젖은 풀잎이 밟혔다. 가까이 다가가자 언뜻 그 형체가 보 일 듯했다. 나는 망설이다 한 발을 더 내딛었다. 컨테이너 앞에는 닭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죄다 죽은 놈들이었 다. 맹수에게 물어뜯긴 듯 핏자욱이 낭자해 있었다. 개중 몇몇은 알 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물어뜯겨 겨우 닭털 몇 개나 달려 닭인 걸 알 아볼 수 있었다. 풍기는 역한 냄새에 코를 틀어쥐었다. 양계장 뒷산 의 산짐승들이 틀림없었다. 철조망을 제대로 잠궈두지 않은 게 문
제였나. 그러나 철조망을 잠궈두었다면 닭들은 영영 양계장을 떠나 지 못했으리라. 몸을 옥죄던 철창만 사라지면 날아갈 줄 알았던 놈 들이 절반은 나오지도 않았고 절반은 나와서 전부 죽었다. 마치 철 창이 사라지자 자신들이 직접 제게 맞는 철창을 만들어낸 것처럼. 절반은 끝까지 도망치려다 배고픈 강자들에게 처참히 물어뜯겼을 것이다. 그제야 낮에 들었던 누군가의 말이 스치듯 떠올랐다. ‘저 닭들은 나오면 잡아먹힐걸? 도망가려다가.’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웃던 부티마의 주름진 얼 굴이 눈앞에 선연했다. 나는 가만히 쌓인 닭들을 바라보았다. 컨테 이너 너머로 비추는 어슴푸레한 빛이 닭들을 비췄다. 뻣뻣하게 굳 은 수많은 날개가 무더기로 겹쳐져 있다. 미처 감기지 못한 눈꺼풀 아래의 텅 빈 눈동자가 나를, 그 너머를 응시했다. 나는 그 눈동자를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옮기던 걸음 은 조금씩 빨라졌다. 빠르게, 더 빠르게, 마침내 달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따갑게 볼을 할퀴고 지나갔다. 거칠게 숨을 들 이쉬는 폐부가 차게 식었다. 심장이 뛸 때마다 횃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희끄무레한 빛이 어룬거렸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관창
이 모든 것은 관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는 부어오른 발목을 Z 긁적이며 생각했다. 어제 저녁 마당에 쌓아 두었던 관창을 트럭으 로 옮겨 놓다 사위가 어두운 탓에 접지른 발목이 자꾸만 근질거렸 다. 그런 의 곁에서 어미는 손을 모으고 벽에 걸린 십자가를 향해 Z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쉴 새없이 움직이는 입술이 침으로 번들거
렸다. 부디 저희를 고통으로부터 구해 주시옵고 … 미친 건지 아 닌 건지. 들리지 않게 입안으로 혀를 찬 가 시계를 보고는 몸을 일 Z 으켰다. 슬슬 나갈 시간이었다. 는 제 어미의 정신이 온전한지 아 Z 닌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미에게 질린 상태였다. 겁에 질렸든 무
엇에 질렸든, 아무튼 질려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가 움직이자 기 Z 도를 멈춘 어미가 번들거리는 입술을 벌려 최대한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우리 장군이, 학교 가니?” 그러니까 이럴 때 말이다. 는 도무지 제 어미를 이해할 수도 없 Z 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말없이 고개를 까닥인 가 Z 가방을 둘러메고 대문 바깥쪽으로 향했다. 장군이는 죽었어, 나는
그 빌어먹을 장군이가 아니라고, 따위의 말은 덩어리째 목구멍 안 쪽으로 삼켜낸 후였다. “어, 가냐?“ 트럭 문을 열어두고 조수석에 걸터앉아 관창에 들러붙은 고무 호스 조각을 나무 젓가락으로 긁어내던 아버지가 손에 들린 걸 내 려놓았다. 예. 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가 의 발목께를 Z 유심히 바라보았다.
“발목은.”
“오늘도 따라올 거냐?”
가 어깨를 으쓱였다. 부러진 것도 아니고 뭐. Z “괜찮아요.”
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트럭 뒤에 몰래 Z 숨어 탔던 밤 뒤로 거의 매일같이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멋모르고 졸졸 따라다니던 처음 며칠과는 달리 이제는 제법 망도 보고 관창 도 그럭저럭 잘라낼 줄 알았다. 더구나 아버지를 따라가면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우물쭈물했다. 아 버지가 뜸을 들이는 동안 는 조수석 너머로 보이는 관창을 세어 Z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여덟. 요 근래 수확이 없던 것치고는 많
은 편이다. 가 그 옆에 쌓인 나무젓가락을 열두 개까지 셌을 때쯤, Z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웬만하면 너는 오지 마라. 조심해야 해. 어제 고시텔 하나에 불
“…네?”
이 났단다. …오늘은 더 멀리까지 갈 생각이다.”
가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허공 아래 바닥 위 어딘가에 시선 Z 을 고정한 채로 말을 이었다. “누가 소화전에 문제가 있는 걸 발견한 모양이야.“ 아. 입을 벌렸다 조용히 다문 가 묵묵히 바닥을 쏘아보았다. 관 Z 창을 도난당해도 정기적으로 소화전을 확인하지 않으면 도난당했
다는 걸 알 수 없다. 화재가 일어나고 소화전을 열어본 사람들이 관 창이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는 고시텔이라는 이름 Z 에 불현듯 누군가를 떠올렸으나 애써 불안감을 잠재웠다. 이 동네
에 고시텔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설마 김씨가 지내는 곳일 리 가 없다. 그러나 자꾸만 목덜미가 축축하게 젖어들어가는 것은 어 쩔 수 없었다. 는 저릿한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말라 죽어가는 Z 식물 따위를 관찰하듯 가만히 를 들여다보던 아버지가 트럭에서 Z 내려와 비뚤어진 교복 카라를 정돈해 주었다. 그러고는 어깨를 툭
툭 두드렸다. “얼른 가라, 늦겠다.” 는 다시 트럭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걸음을 Z 옮겼다. 아직 조금 어두운 하늘에 십자가 몇 개가 걸쳐져 있었다.
새벽과 아침 사이의 미묘한 바람이 차가웠다. 엉망으로 흩날리는
머리칼이 귓가를 때렸다. 바람에 제 머리카락을 마음껏 헤집도록 놓아두며 는 언덕을 걸어 내려갔다. 다닥다닥 붙은 복층 빌라들이 Z 느리다면 느리게, 빠르다면 빠르게 의 곁을 스쳐갔다. 오늘도 아 Z 버지는 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는 날 때부터 가 될 수 없었다. 형이 있었다는 뜻이다. 형이 Z
기만 남았던 어미는 아버지의 권유에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몇 년 뒤, 기적처럼 아이를 가진 어미는 하늘이 어미의 뜻에 감복해 잃 었던 아이를 다시 내려보내준 것이라 믿었다. 전부 어미의 낡은 서 랍 안쪽에서 의 나이와 맞지 않는 년도의 산모수첩을 발견했을 때 Z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였다. 는 그때서야 어미의 애정에서 느껴지 Z 던 위화감을 깨달았다. 는 형의 이름을 빌어 살아가고 있었다. 어 Z 디에도 의 자리는 없었다. 틈이 맞지 않는 마지막 퍼즐, 그게 바 Z 의 주민등록 등본에 오른 이름조차 의 것이 아니었다. 로 였다. Z Z
Z 본래 출생신고를 했어야 할 형의 이름을 물려받은 이름은 학교 사 람들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어느 시인의 이름과 같
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사람들에게 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 Z 했다. 이성목. 이성복 아니고, 이성‘목’이에요. 그러나 는 이내 그 Z 게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디에도 의 이름은 없었다. Z 아버지는 이따금 말못할 것을 입에 담는 듯한 표정으로 어미 앞에 서 를 장군이라 부르기도 했으나 끝내 의 이름만은 불러주지 않 Z Z 았다. 형이 살아 있었다면 달랐을까.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으나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런 실없는 생각 을 하기에 의 가정은 중요한 무엇인가 전부 빠져나가 버린 것처럼 Z 텅 비어 있었고 속부터 꼬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는 빈 자리에 억 Z 지로 끼워맞춰진 퍼즐판에서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가정해보는
일에 기력을 쏟기엔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제 자신을 스스로 증 명해내기도 바빴다.
정신을 반쯤 빼놓고 걷던 가 돌연 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고시 Z 텔 앞이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동네 사람 몇몇과 그 곳에 살던 이들 이 고시텔 앞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축축한 목덜미가 생경했다. 심 장이 머리 꼭대기에서 뛰는 것 같았다. 는 꿈을 꾸는 기분으로 천 Z 천히 고시텔 쪽으로 다가갔다.
“소화전이 망가져 있었다면서요? 뭐 중요한 부품 하나가 빠져 있었다면서.” “아니, 처음에 불난 건 가스 누전 때문이라던데? 그러게 건물이 너무 낡았다 했어.” 는 들려오는 말소리를 뒤로하고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김 Z
씨, 김씨가 없다. 황급히 몸을 옮겨 고시텔 주변도 살펴보았으나 김 씨로 보이는 갈색 뒤통수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설마 다친 건 가? 그러나 구급차가 온 것 같지는 않았다. 고시텔 사람들도 김씨를 빼고는 전부 나와 있었다. 초조해졌다.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숨도 거칠어졌다. 대체 어디에 있는, 막 다른 쪽으로 걸음을 떼던 Z 가 멈칫했다. 김씨였다. 유행 지난 새파란 패딩을 입은 김씨는 골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모양을 가만히 바라보던 가몸Z을 돌렸다. 가 아는 김씨는 이상한 데서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다 Z 가가 말을 걸면 괜찮은 척하면서도 속으론 끔찍하게 싫어할 게 분 명했다. “그나저나 소화전에 있는 것도 떼다 파니, 원… 저번엔 누구냐, 영애네 마당 수도꼭지도 누가 떼 갔잖어.”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움찔한 가 조금 더 빨리 걸음을 옮 Z 겼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여기서 나가면 갈 데가 없어. 김씨의 목
소리가 의 걸음을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머릿속이 터져나갈 것만 Z 같았다. 손 끝에 느껴지던 둥글고 차가운 관창의 감촉이 생생했다. 내 잘못이 아냐, 가 중얼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해가 떠 Z 있었다. 의 걸음이 닿는 곳마다 눈물자욱처럼 땀방울이 뚝뚝 떨어 Z 져내렸다.
관창을 떼어다 팔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관창은 소방 호스에 연결하여 화재를 진압하는 데 사용하는 기구이다. 호스와 함께 관창을 잡아 물의 분사를 만든 다음, 화점을 겨냥하여 사용한 다. 그중에서도 구리로 만들어진 관창은 고물상에 가져다 팔면 개
당 오천 원은 받았다. 본래 의 아버지는 트럭을 타고 다니며 제철 Z 과일이며 채소 장사를 했다. 그래도 여태는 그나마 입에 풀칠 정도 는 하고 살았으나 모아뒀던 돈도 조금씩 떨어지고, 사람들은 점점 길거리 트럭에서 파는 야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형 마트나 인 터넷 쇼핑몰은 아버지의 트럭 채소보다 훨씬 품질 좋고 값싼 채소 들을 특가 세일, 새벽배송 따위의 이름을 붙여 불티나게 팔아댔다. 결국 의 교복을 동네 형에게 물려받고,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집 Z 안의 가전들을 하나둘씩 팔아치울 무렵, 아버지는 손잡이를 한 손
에 전부 쥐기도 벅찰 만큼 커다랗고 날카로운 가위를 챙겨들고는 새벽마다 트럭을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후에 알고 보니 새벽마다 소화전의 관창을 떼어 내 고물상에 넘기는 것이었다. 는 아직도 Z 흠이 난 야채가 가득 실려 있던 트럭 뒤편에서 어린애 팔뚝만한 누
런 쇳덩이가 반쯤 들어 있는 자루를 발견했을 때 아버지의 눈빛을 기억한다. 낯빛이 퍼렇게 질린 아버지는 집 쪽을 눈짓하며 검지 손 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비밀이다. 관창이 든 자루와 아버지를 번갈아 보던 는 입술을 꾹 물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Z 낡아빠진 가전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것보다는 나았다. 어쩐지 교복
에서 어젯저녁 먹은 삼겹살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 뒤부터 는 얼마간 아버지의 행동을 살폈다. 아버지는 항상 Z 시쯤 귀가해 늦은 저녁을 챙겨먹고, 열두시가 넘어서야 트럭을 10 몰고 집을 나섰다. 어미에게는 목이 좋은 곳이 있어 새벽장사를 하
러 나간다고 둘러대는 모양이었다. 근래 생기는 수입도 새벽장사에 서 벌어들이는 돈이라고 어미는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이 주 정도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돌아오는 패턴을 살핀 는 아버지를 관찰 Z한지이 주째 되던 날, 평소처럼 교회로 향하는 어미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너도 함께 기도해야지, 그래야 죄를 씻는데. 저번보다 훨씬 오래, 행복하게 살아야지. 몇 번 타이르던 어미는 아버지의 새벽 장 사를 돕겠다는 말에 벽에 걸린 십자가에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집 을 나섰다. 아버지가 트럭에 올라타기 직전, 는 트럭 짐칸에 올라 Z 타 숨을 죽였다. 아버지의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카만 밤을
달리며, 는 처음으로 형이 아닌, 어떤 존재가 된 것 같았다. Z “너 지금 여기서…!” 분 정도 달렸을까, 낡은 아파트 앞에 멈춰선 아버지는 자루를 30 를 발견했다. 뭐라 소리치려던 아버지는 주변을 둘러보고 챙기다 Z 는 입을 다물었다. 는 그런 아버지를 쫓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 Z 다. 트럭에 있으라는 아버지의 말은 무시한 채였다. 그런 를 바라 Z 보던 아버지가 한숨을 쉬고는 걸음을 옮겼다. 이내 아파트 안에 들
어선 아버지는 발소리를 죽여 소화전으로 향했다. 는 아버지가 소 Z 리나지 않게 소화전을 열고, 소방 호스 끝에 달린 관창을 비틀어 빼 내고, 자루에 옮겨 담고, 다시 계단을 오르는 일련의 과정을 전부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이따금 가 있는 쪽을 흘긋 바라보았으나 별 Z 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묵묵히 움직이는 아버지의 손길에서
“거기 누구요?”
일종의 체념 같은 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나이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당황한 듯 자리에서 굳었다. 는 재빨리 아버지 발치의 자루를 낚아채고 계단 쪽으로 Z
달렸다. “아, 담배를 좀 피우려고요… 아내가 밖에서 피우라고 하도 성 화를 부려서 말입니다.” “아파트 안에서 피우시면 안 되지, 금연구역인 거 몰라요? 그나 저나 무슨 소리가…” 세 층이나 뛰어올라서야 는 겨우 숨을 골랐다. 심장이 머리 꼭 Z 대기에서 뛰어댔다. 아버지가 관창을 돌려 빼내고, 자루에 담는 걸
보기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그제야 는 저가 누군 Z 가에게서 빼앗아온 것을 대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에 들린 자루가 견딜 수 없이 무거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조수석에 탔다.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는 꾸준히 트럭 뒤칸에 숨어들었고, 자주 Z 아버지의 짙은 한숨을 마주했다. 너한테 가르칠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구나. 아버지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들릴 듯말듯중 얼거렸다.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는 트럭의 조수석에서 자기 Z 몫의 커다란 가위와 자루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발소리를 죽여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Z 법, 소화전의 문을 소리나지 않게 여는 법, 관창에 흠집이 나지 않
도록 소방 호스를 잘라내는 법 따위를 익혔다. 누군가 지나가는 것 같으면 재빨리 가위와 자루 따위를 챙겨 달리다시피 계단을 내려가 는 것도 의 몫이었다. 목표는 보통 아랫동네의 아파트 등 복층 건 Z 물이었다. 하루는 아파트 한 동의 관창이 전부 든 자루를 싣고 집으
로 돌아가면서 관창이 무슨 역할인지 물어본 적도 있었다.
“연결고리 같은 거다. 물을 뿜게 해 주는. 호스가 꼬이는 것도 막아주고… 그런 건 왜 묻냐?” 는 관창 하나를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골랐다. 손 끝에 닿는 감 Z 촉이 차갑고 미끈미끈했다. 누런 쇳덩이에서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
다.
“그럼 불이 나면 못 끄겠네요.” 잠시 어물거리던 아버지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앞을 향해 시 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는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침을 삼 Z 키는 아버지의 목젖이 불안하게 떨렸다.
“어차피,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없어진 줄도 모를 거다. 소화 전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 걱정 할 시간에 잠이나 더 자라. 학교는 잘 다니냐?” 네, 짧게 대답한 가 눈을 감았다. 꼬이지 않게 막아주는, 연결 Z 고리. 는 문득 제가 불온전한 관창 같다고 생각했다. 진짜 관창은 Z 사라지고, 거기에 끼워맞춰진 어색한 대용품. 허벅지 위에 올려진
관창의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집으로 가기 위해 언덕을 올라 가는 트럭이 자꾸만 덜컹거렸다.
“그러니까 관창은 계백한테…” 관창? 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누가 방금 관창이라고 하지 않았 Z 나? 는 자꾸만 감기는 눈에 힘을 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필기 Z 에 한창인 짝궁의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야 방금 관창… 그거 무슨 얘기냐?”
미간을 조금 찡그린 짝궁이 고개를 돌려 목소리를 죽여 되물었
다.
“관창? …아, 화랑?” 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그거. 선생의 눈치를 보던 짝 Z 궁이 한손으로 입을 가린 채 재빨리 속삭였다.
“관창이라는 용맹한 소년 장군이 나대다가 계백한테 픽. 황산벌 전투. 몰라?” 말을 마친 짝궁이 턱짓으로 칠판을 가리켰다. 칠판에는 분필로 황산벌 전투, 그리고 그 밑에 계백, 관창이라고 쓰여 있었다. 칠판 을 가만히 바라보던 가 다시금 책상 위에 엎드렸다. 칠판 앞에서 Z 열변을 토하던 선생과 눈이 마주친 것도 같았으나 잠시 말을 멈췄
던 그는 다시금 수업을 이어나갔다. 관창, 장군, 관창, 장군. 는 두 Z 단어를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의 집은 관창이 없는 소화전 Z 인지도 모른다. 는 그런 빈 자리를 꿰차고 살아가지만, 관창이 될 Z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도 구태여 소화전을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 에 모르는 것뿐이다. 그럼 어미가 소화전을 들여다보는 날, 는 어 Z 떻게 되는 걸까. 의미 없이 단어를 중얼거리던 가 연필로 교과서 Z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전등처럼 둥글고 큰 끝부분이 두
개 있는 길다란 쇳덩이. 수관이 꼬이는 것을 방지하고, 불행을 막아 주는 장치. 자신이 그린 관창을 뚫어져라 보던 가 그 위를 새까맣 Z 게 칠해 덮어버리곤 다시 눈을 감았다. 어제 한숨도 못 잔 탓인지
잠이 쏟아졌다. 는 보통 학교에서 잠을 잤다. 처음엔 선생도 몇 번 깨우는 시늉 Z
을 했으나 두세 달쯤 지나면 내버려두기 마련이었다. 애초에 말을 섞지 않는 탓에 친한 친구도 없었다. 는 교실의 아이들과 제가 조 Z 금 다르다는 걸 어릴 적부터 깨달았다. 그러니까 그건 아마 초등학
교에 다닐 적이었을 테다. 해가 질 때까지 운동장에서 친구와 함께 논 적이 있었다. 는 그 애를 데리러 왔던 그 애 어머니의 표정을 여 Z 즉 기억했다. 이제 가야겠다며 손을 흔들던 아이가 껌껌해진 하늘
을 보고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너 이렇게 어두운데 괜찮아? 엄마, 성목이도 데려다주면 안 돼?” 괜찮아, 십자가가 많아서 생각보다 밝아. 그 말에 그 애 어머니 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꼭 실온에 오래 둔 음식물쓰레기봉투를 발견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너 엄마가 저런 애랑 놀지 말랬지. 저 런 애가 뭔데? 윗동네 사는 애들 말이야 … 는 멀어지는 첫 친구 Z 와 첫 친구의 어머니를 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다음 날, 는그애Z 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으나 돌아온 것은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 하
는 주눅든 목소리뿐이었다. 는 그러고도 시간이 더 지난 뒤야 학 Z 교 주변에는 십자가가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어쩐지 십자가 이야 기를 하면 아이들은 이상한 사람을 보듯 를 쳐다보곤 했다. 그날 Z 저녁 는 열 걸음에 십자가가 하나씩 있는 제 동네를 오래 걸었다. Z 의 동네엔 교회가 많았다. 늘 보던 풍경이었으나 는 새삼스레 빛 Z 나는 십자가로 가득한 하늘을 노려보았다. 원래 가난한 동네일수록
Z
교회가 많다잖아. 정말?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자꾸만 귓가를 맴 돌았다. 신의 손길이 덜 닿은 곳일수록 돈은 없고 염원은 많다. 저
멀리 붉게 빛나는 십자가는 옆으로 세워진 탓에 가로축과 세로축이 겹쳐져 꼭 거대한 막대기처럼 보였다. 는 그게 꼭 신한테 엿이나 Z 먹으라는 것 같아 조금 웃고 조금 울었다. 구원은 개뿔, 엿이나 먹
으라지. 친구한테 그러는 거 아니라며 키득거리는 아이들을 말리던 선생의 동정어린 눈빛도 떠올랐다. 는 그날 이후부터 학교에서 만 Z 난 이에게 구태여 제 이름을 설명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빠져나온 가 고시텔 뒤쪽의 골목으로 향했다. 와 김 Z
“무슨 일이야. 고시텔에 불이 났다면서.” 가 김씨에게 다가갔으나 김씨는 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Z Z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돈을 세
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입술이 번들거렸다. 김 씨에게 다가가던 가 멈칫했다. 의 모습 위로 어미의 모습이 겹쳐 Z 지기 시작했다.
“김씨,”
“… 만 원이면 모텔에서 하루, 아니면 이틀… 일세방은 하루에 5 이만 원, 씻으려면 … ” 가 조금씩 뒷걸음질쳤다. 조심해야 해. 어제 고시텔 하나에 불 Z 이 났단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관
창을 옮기느라 접질렀던 발목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뜨거운 열기 가 발목에서부터 타고 올라와 를 집어삼켰다. 너 때문이야, 너 때 Z 문이야.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것 같았
다. 뒷걸음질치다 주저앉은 가 김씨를 올려다보았다. 얼마 되지 Z 않는 현금을 전부 센 김씨가 다시 현금을 세기 시작했다. 지폐를 한 장씩 넘기는 손가락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그제야 를 발견한 김 Z 씨가 애써 얼굴을 펴 웃어 보였다.
“어, 네. 웬일이야?” Z 그런 김씨의 얼굴을 살피던 가 몸을 일으켰다. 김씨의 입꼬리 Z 가 조금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웬일은…. 지낼 곳은, 찾았어?” 어, 글쎄에, 말꼬리를 조금 늘리며 김씨가 시선을 피했다. 조금 까무잡잡한 피부 위로 석양이 내려앉았다. 먼 산을 바라보던 김씨 가 입을 다물었다. 짙은 쌍커풀 밑의 다갈색 눈동자가 허공을 부유 했다. 나는 할 일이 생각나서, 가 봐야겠다. 어색한 말투로 이야기 한 김씨가 서서히 멀어졌다. 김씨를 처음 만난 날 이후로, 함께 일 몰을 보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조금씩 시야에서 멀어지는 김씨의 어깨가 조금 움츠러든 것도 같았다. 는 김씨의 새파란 패딩이 보 Z 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 동안 골목에 서 있었다.
김씨를 처음 만난 건 년 전, 가 아직 중학생일 때였다. 조퇴한 2 Z 후 느리게 동네를 걷고 있는데 고시텔 뒤쪽에서 누군가 를 향해 Z 손짓했다. 꼬맹아, 학교는 안 가냐? 담벼락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배 낭 옆에 앉은 여자가 허공에 담배연기를 후, 뱉어냈다. 여자는 조금
왜소해 보였고 팔이 떨리는 것 같았다.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목이 늘어진 긴팔 티셔츠 너머로 부풀어 오른 상처가 언뜻 보였다. 피부 는 조금 가무잡잡했고 질끈 묶은 머리카락은 유행하는 히피 파마를 한 건지 곱슬곱슬했다. 원래 곱슬머리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필 터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벽에 지져 끈 여자는 자신을 김씨라고 부 르라고 했다. 진짜 김 씨야? 아니, 근데 너 왜 반말이야. 당신이 먼 저 반말해서. 김씨는 소리내서 웃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는 재빨 Z 리 김씨의 표정을 살폈으나 그녀는 딱히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근데 왜 김씨야, 김 씨도 아닌데.” “김 씨가 가장 흔하잖아. 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아. 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가 되고 싶듯 김씨도 김씨가 되ZZZ고 싶은 이유가 있을 테다. 김씨를 따라 어깨를 으쓱한 가 손을 내 Z 밀었다.
“나는 야.” Z 김씨가 한쪽 눈썹을 까닥였다. 는 그게 꽤 신기하다고 생각했 Z 다. 김씨가 그렇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왜?” 는 조금 머뭇거렸다. 사실 라는 이름을 이야기한 건 김씨가 Z Z 처음이었다. 말할까, 말까. 김씨의 크고 속눈썹이 짙게 난 눈이 를 Z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긴장이 조금 풀린 가 말을 이었다. Z “그냥, 특이해서.”
“특이해서?”
김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첫 글자랑 뭐가 안 겹치는데?”
뭐 영어 알파벳이 특이하긴 하지. 근데 가? Z “응, 마지막이잖아. 첫 글자랑 안 겹치니까.”
김씨는 도통 모르겠다는 눈을 했다. 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Z 것도 모르냐고 김씨에게 핀잔을 주기 위해서였다. 미지근한 햇빛이 검은 아스팔트 위를 느리게 기어갔다. 김씨가 운동화 끝으로 햇빛 끄트머리를 후볐다. “가장 멀리 있으니까.” “ 랑?” A 가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말했나? 방금 전까지만
Z 트렸다. 아니 그렇잖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도 아니고. 원래
“제트!”
삶이라는 게 돌고 도는… 야, 어디 가! 꼬맹이! 야!
골목을 거의 다 벗어났던 가 고개를 돌렸다. 역으로 비추는 햇 Z 빛 탓에 김씨의 얼굴이 보일 듯 보이지 않았다. 가지 마, 제트. 가 Z 웃는 듯 우는 듯 우스꽝스럽게 표정을 구겼다. 그러니까, 그날은 Z 를 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생긴 날이었다. Z 가 스스로를 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학교에서 제 이름을 설 Z
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게 되었던 그 즈음이었다. 저라도 제게 다른 이름을 붙여주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본능 적으로 살아남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빌어먹을 첫째가 아니 다, 첫째가 아니다. 는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되뇌였다. 그러다 마 Z 침내 시도때도 없이 맴돌던 첫째가 아니다, 라는 문장이 의 머릿 Z 속을 가득 채우다 못해 입 밖으로 터져나왔을 때, 그때는 하필 영어
시간이었다. 막간을 이용한 영어 단어 맞추기 게임을 하던 교실 안 의 모든 이들이 전부 를 쳐다보았다. 분필을 든 채로 를 떨떠름 Z Z 하게 바라보던 영어 선생이 말했다. 그래, 제로의 첫 글자는 빌어먹
을 가 아니지. 제로의 첫 글자는 알파벳 마지막 글자, 다. 첫 글자 a
z 가 아닌 마지막 글자. 처음도 마지막도 아닌 숫자 의 첫 글자인 동 0 시에 개 알파벳 중 가장 마지막 알파벳. 는 그게 꽤 마음에 든다 26
Z 고 생각했다. 교실의 그 누구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제 이름도, 집에서 매일 불리는 장군이란 이름도, 첫째도 아닌, 가. Z 그 얘기를 들은 김씨는 비웃지도, 동정하듯 등을 토닥이지도 않
았다. 그래, . 이야기를 다 들은 김씨는 그렇게만 말했다. 올해로 Z 스물이 되었다는 김씨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쳐나왔다고 했다. 는 Z 소매에 채 가려지지 않은 멍 자국을 보지 못한 척 고개를 돌렸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어머니를 그 집에 홀로 두고 나왔다는 김씨는 운동화 끝으로 자꾸만 햇빛 끝을 파헤쳤다. 그런 김씨의 다갈색 눈 망울을 보던 는 눈동자 색이 그 언젠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호박 Z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비겁하다고 생각해?”
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 김씨는 배낭을 끌어안고 담벼 Z 락에 기대앉았다. 그 옆에 앉은 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석양이 Z 지는 하늘 끝에 걸린 십자가에 반짝, 불이 들어왔다. 김씨는 그날 이후부터 아랫동네 편의점에서 일하며 고시텔에서 지내기 시작했 다. 그 뒤로 몇 번 고시텔 뒤 골목에서 마주친 뒤로는 따로 약속하 지 않고도 김씨가 일을 가기 전, 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그 골목에 Z 서 석양이 지는 모습을 함께 보곤 했다. 붙어 앉은 김씨에게선 항상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동자는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났다. 와 김씨는 마주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Z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었지만 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Z 고 생각했다. 그들은 적어도 그 시간 동안은 같은 하늘을 바라보았
고, 유일하게 서로의 이름을 불렀으며, 같은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하루를 버티게 하는 데 충분했다.
집에 도착하자 어느새 해가 져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아버지의 낡은 트럭이 집 앞에 서 있었다. 그늘에 반쯤 가려진 트럭을 바라보 던 가 들려오는 발소리에 입을 열었다. Z “오늘 가시게요?”
그래, 관창이 든 자루를 트럭 뒤 짐칸에 옮겨 싣던 아버지가 답 했다. 고물상에 가는 게 평소보다 일렀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단단 하면서도 금방 무너질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가 막 말을 덧붙이 Z 려는 찰나였다.
“우리 장군이 왔니?”
손에 작은 십자가를 든 어미가 집 밖으로 나왔다. 를 보고 활짝 Z 웃은 어미가 다가와 손을 꼭 쥐었다. 는 그런 어미를 밀어내지도, Z 더 다가가지도 않았다. 트럭 짐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는 고 Z 개를 돌렸다. 트럭의 문을 연 아버지가 에게 말을 건넸다. Z “어머니 잘 챙겨드리고.” 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와 어미를 흘긋 바라본 아버지가 Z Z 트럭에 올라탔다. 탈탈거리는 소리와 함께 언덕 아래로 사라지는
트럭을 바라보던 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꾸만 발목께가 근질 Z 거렸다. 어느덧 검게 물든 하늘에 희고 붉게 빛나는 십자가가 그득 했다. 교회까지는 걸어서 분이면 충분했다. 기도문을 중얼거리며 5 제 손을 꼭 잡은 어미의 손이 뜨겁고 축축했다.
창밖으로 불빛이 새어들어왔다. 분명 십자가의 불빛일 것이다. 는 생각했다. 주변에 앉은 이들은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어미 Z 는 자그마한 십자가를 두 손으로 붙들고 눈을 감은 채 함께 찬송가
를 불렀다. 교회는 빌라 단지 근처 층짜리 상가 지하에 있었다. 워 2 낙 작은 교회가 많아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수는 많지 않았다. 는 Z 찬송가를 부르는 것처럼 입을 벙긋거리며 손을 모으고 앞을 바라보 았다. 십자가를 보고 선 저들은 하나같이 구원을 바라며 염원하는 걸까. 그때 의 눈에 익숙한 갈색 머리통이 들어왔다. 갈색 머리통은 Z 발소리를 죽여 의자 뒤, 입구 근처의 창 밑으로 향하고 있었다. Z 는 환한 불빛이 새어들어오는 창 밑으로 시선을 옮겼다. 헌금 상자
였다. 작은 고양이처럼 그림자에 숨은 김씨는 담벼락 위를 걷는 고 양이처럼 조용히, 그러나 빠른 속도로 앞으로 전진했다. 다행히 사 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이고 염원하기에 바빴다. 는 저도 모르게 Z 숨을 죽였다. 그러고는 눈을 감은 척 실눈을 뜨고 김씨가 움직일 때
마다 조금씩 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헌금 상자 앞에 도착한 김씨가 날렵하게 헌금 상자를 낚아챘다. 그러고는 패딩 안쪽에서 비슷하게 생긴 플라스틱 상자를 꺼내 앞에 두었다. 는 모른 척 눈을 감고 고 Z 개를 숙였다. 이윽고 뒤쪽으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는 천 Z 천히 눈을 떴다. 아버지는 지금쯤 고물상에서 받은 돈을 가지고 집
으로 돌아오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어디에선 가 또다시 관창을 떼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내가 누군 가에게서 앗아간 관창은 어디로 흘러들어갈까. 분명한 것은 그건 뺏긴 이에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의 이름을 빼앗 아 살아가는 가 제 이름을 잃은 것처럼. 형의 이름을 훔친 집을 떠 Z 난 김씨가 고시텔을 잃은 것처럼. 관창을 잃은 소화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 불에 집어삼켜진 것처럼. 아마 불이 나지 않 았더라면 사람들은 관창을 잃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겠지. 그렇다 면 어미는 소화전을 열어보았다는 걸 잊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염 원하는 걸까. 그러나 관창을 뺏기지 않은 이들은 이토록 간절히 염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십자가의 불빛이 눈이 아리도록 새어들어왔 다. 신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일수록 염원이 많다. 무수한 관창 없 는 이들이 염원을 갖고 기도를 올리기 위해 모여든다. 는 눈부신 Z 십자가 불빛에 눈을 감았다.
“우리 모두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아멘.” 찬송가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며 자리에 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미가 바라는 구원이 저 십자가의 불빛이라면 그것은 신의 손길이 아닌 염원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는 생각했다. Z 어쩌면 모든 관창 잃은 이들은 다른 이의 관창을 앗아야만 살아남
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는 제 옷자락을 끌어당기는 어미의 손 Z 길에 주저앉듯 자리에 앉았다. 자꾸만 발목이 욱신거렸다.
홈 스위트 홈
현경은 매일 오후 시마다 기차, 혹은 비행기가 되어야 했다. 7 “자아, 비행기가 들어갑니다. 옳지, 잘 먹네.” 현경이 아이의 눈치를 살피다 입 안에 수저를 쏙 넣은 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봤자 겨우 한 숟갈이긴 했지만. 요즘 들어 커서 그런가, 아이가 밥을 먹을 때마다 집중력이 자꾸 흐트러졌다. 여기 를 봤다가, 또 저기를 봤다가, 또 이걸 던졌다가. 물론 그 나이 때 애 들이 다 그렇긴 했다. 아이는 고작 두 살이다. 현경은 이유식이 담 긴 수저를 앞뒤로 흔들며 위쪽을 흘긋 쳐다봤다. 여자가 를 CCTV 쓴다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전이다. 현경은 늘 그랬던 것처럼 저녁 8 시에 여자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오늘은 아이에게 뭘 먹였
고, 아이가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를 말하던 현경이 오늘 아이가 소
파에 올라가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여자는 안다고 말했다. “네?” “안다구요. 봤어요, 저도.” 봤다니, 뭘 봤다는 걸까. 소파에 올라가려는 아이에게 그러면 안 된다며 내려오게 한 일? 위험하게 비틀거리다가 다칠 뻔했던 일? 현경은 빠르게 집안을 휙 둘러보았다. 그럼 집 안에 카메라가 있나? 여자에게 묻자 여자는 귀찮다는 어조로 무심하게 대꾸했다.
“아니, 그래도….”
“계약서에 싸인 했잖아요. 못 봤어요?”
“돈 많이 받잖아요. 애 보는데 최저 시급 두 배면, 할 말 없지 않 나?” 여자의 말이 맞았다. 현경은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말하지 말 걸 그랬다. 집으로 돌아가 남편에게 얘기하자 남편은 불같이 화 를 냈다. 그건 불법이라면서, 왜 당하고만 있었냐고 소리를 질렀다. 현경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손질할 때가 지나 끝 이 상한 머리카락이 손끝에 걸렸다. 손끝에 힘을 주며 현경이 입을 열었다. “그럼 관둬? 나 경력도 없고 늙어서 이제 아무도 안 써줘, 그런 데 말고는.” 현경은 이미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다며 거절해놓고 아직도 알바 모집 공고를 붙여둔 집 앞 편의점과, 면접을 본 후 두 달째 연락이 없는 피자집을 떠올렸다. 앞에 앉아 입을 꾹 다문 남편도 똑같은 생 각임이 분명했다. 현경은 아직도 남편이 휑한 팔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충격을 기억했다. 일상생활을 위해서라면 의수라도 맞춰야 했겠지만 그러기엔 돈이 부족했다. 당장 생활비도 모자랐 다.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딸을 생각해서라도 현경이 일을 시작한 건 당연했다. 결국 현경은 계속 해 오던 샤프심 넣기 따위의 부업을 더 늘리고 일자리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여자의 구인 공 고를 본 건 정말이지 천운이었다. 베이비시터와 가정부를 구하는 구인 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여자의 글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현경 은 지금쯤 길바닥에 앉아 신문지를 이불 삼아 눈을 붙이고 있을 수 도 있다. 더구나 출근 시간은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 반 4 이었으니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나 더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출근해서 아이를 보다 여자가 돌아와 얼굴을 확인하고 퇴근하면 그 날 일은 끝이다. 퇴근 시간은 불규칙했지만 최저 시급의 두 배를 준 다는 말에 현경은 무작정 고개를 끄덕였다. 유독 높은 액수가 불안 했지만 정말 그 돈을 주기만 한다면 여자가 어떤 일을 시키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여자가 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유치원에서 하원하 는 아이를 데려오고,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다 재우면 끝이었다. 다만 꼭 지켜야 하는 게 있었는데, 오후 시마다 걸려오는 여자의 8 전화를 꼭 받을 것, 그 날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얘기할
것, 중학생인 딸에게는 일절 관심을 보이지 말 것 세 가지였다. 집 안일은 오전 중에 다른 도우미가 해 놓고 가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했다. 현경은 무심한 말투로 오로지 아이에게만 집중하라던 여자의 얼굴을 기억한다. 딱딱하게 굳은 로봇 같은 얼굴은 건드리면 챙 하
는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그 넓은 집 안에서 현경에게 허락된 거 라곤 깨끗한 집안을 보며 얼굴 모르는 그 도우미의 얼굴을 상상해 보는 것뿐이었다.
평소와 별로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여자가 시부모 님들이 올라오실 거라고 당부해 두었고, 현경에게도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면 되니 신경 쓰지 말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평소와 똑같이, 하던 대로 하면 돼. 스스로 중얼거리면 중얼거릴수록 모든 행동이 신경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숨을 어떻게 쉬었는지, 어떻게 자연스 럽게 여자의 집 안을 걸어다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안 보는 척 하 면서 현경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카메라로 모든 걸 지켜보고 있을 여자. 현경은 지금 제 행동이 어떻 게 비춰질지 한 토막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집에서 싸온 옥수수를 아이에게 먹이려고 했을 때였다. 그 나이 때 애들한테는 음식 맛을 알아가는 게 중요하니까. 정말, 별다를 것 없이 밖에서 파는 것과 똑같은 삶은 옥수수일 뿐이었다. 옅은 노란빛의 옥수수 한 알을 떼 어내 아이의 입술 근처에 가져다 대는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여자 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먹이지 마세요.” 현경은 화들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옥수수를 떨어트렸다. 덩달 아 놀란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어, 어 울지 마. 착하지, 울지 말자. 현경이 옥수수를 챙길 새도 없이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어김없
이 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건우야, 건우야.”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이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현경이 자지러지게 울며 고개를 젖히는 아이를 받치며 한숨을 쉬었다. 여 기서도 저기서도 난리였다. 아이가 몸부림을 치는 통에 아이를 받 치고 있는 팔과 허리가 지끈거렸다. 여자의 시부모는 그새 현경의 옆으로 와 아이를 어른답시고 어르르 까꿍 따위를 해대고 있었다. 아이는 놀라 더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여자는 그 와중에도 계 속 스피커로 아이를 불렀다. 건우야, 건우야. 현경은 머리가 어질함 을 느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에 등장하는, 스마트폰과 원격으 TV 로 연결해 목소리를 들려준다던 원격제어 홈 의 광고가 떠올 CCTV 랐다.
광고 화면 속에서 주인이 없는 빈 집을 방황하는 강아지에게 주 인이 를 통해 목소리를 들려준다. 배고프지? 밥 먹자. 아니, CCTV 그거 말고 옆에 있는 거 먹어야지. 강아지는 주인의 지시에 따라 밥
을 먹는다. 가족들이 웃는 소리가 나오고, 커다랗게 브랜드 로고가 뜬다. 웃음기가 가득하 여자의 나레이션 목소리가 들린다. 안전하고 편안한 우리 집, 홈 스위트 홈. 현경은 어쩐지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그 후로도 여자의 지 시는 계속되었다. 주로 현경의 행동에 대한 지시였다. 건우 밥 먹 여주세요. 건우 좀 재워주세요. 건우 씻겨주세요. 여자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한 쪽 구석에서 여자의 시부모가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 다. 현경은 보이지 않는 여자와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아이 를 안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설마 여기까지 있을까. 화장실을 여러
번 둘러본 현경이 아이를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시부 모에게 자랑을 하려 그랬을 테다. 나는 이렇게 잘 산다고, 저 여자 도 내가 말하는 걸 다 따른다고. 그런 생각들을 하며 현경은 아이의 옷을 벗겼다. “만세.” “아에!” 통통한 뺨으로 웅얼거리는 아이를 보며 미소 지은 현경이 아이 를 욕조 안으로 옮겼다. 부드럽게 거품을 내 아이의 몸을 문지르고 물의 온도를 미지근하게 맞춰 거품을 씻어 내리는 동안에도 현경의 머릿속에는 그 광고 속의 강아지가 떠나지 않았다.
그 집 딸은 특이했다. 물론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아니었다. 현경 의 딸도 꾸미기를 좋아하는 편이고, 집에서 말은 안 하지만 남자에 관심도 많을 테니. 한창 그럴 나이였다. 그 애 이름은 영, 영이었다. 보통 영은 아홉 시나 열 시쯤 느즈막이 들어와 자기 방에 틀어박혀 화장을 하거나 스마트폰으로 남자아이들과 채팅을 하곤 했다. 현경 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칠해진 얼굴 위로 얼룩덜룩하게 그려진 이 목구비를 보며 제 딸을 떠올렸다. 또래인 제 딸은 어떤가. 갑작스러 운 남편의 실직으로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져 꽤나 속을 썩일 터였 다. 돈을 쓸 일이 있을 때도 제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이 집처럼 큰 집에서 살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저렇게 큰 방을 쓸 수 있게 된 다면 딸도 분명 기뻐할 터였다. 현경은 굳게 닫힌 영의 방문 너머를 상상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할 예쁜 옷들, 화려한
장신구, 화장품 따위가 즐비할 방. 현경은 영과 제 딸을 비교하며 가슴이 아릿해짐을 느꼈다. 때때로 영은 그 하얗고 얼룩덜룩한 얼 굴로 나와 현경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아줌마, 아줌마는 어디 살아 요? 우리 엄마한테 얼마 받아요? 배고픈데 밥 해주세요. 아, 커피 마 시고 싶다.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한 번은 영이가 배가 고프다 보 채기에 라면을 끓여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여자는 제 딸 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건우만 봐 주시면 돼요. 묘하게 기분 나쁜 말투였다. 영은 가끔 보란 듯 거실로 나와 믹스커피를 먹었다. 너 어린 애가 그런 거 먹어도 되니? 현경이 물 으면 못 들은 척 다른 소리를 했다. 아, 커피 향이 너무 좋다. 그러면 서 호로록 호로록 소리를 내며 커피를 들이켰다. 영이 남자아이들 과 채팅을 하러 들어가면 현경은 어김없이 식탁 위에 남겨진 머그 컵 속 말라붙은 커피자국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열 시가 훌쩍 넘었는데 여자도, 여자의 딸도 들어오지 않는다. 현경은 색색거리며 잠든 아이를 토닥이며 시계를 흘긋 바라봤다. 그도 잠시, 띡띡거리며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나더니 영이 들어온다. 여전히 얼룩덜룩한 얼굴을 한 채다. 어디서 놀다 왔 는지 영이 움직이는 대로 담배 냄새가 묻어난다. 현경이 잠시 고민 하다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레 제 앞을 막는 현경에 영이 피곤하고
“내 부모 아닌데요.”
의아한 얼굴로 현경을 올려다본다. 할 말 있어요? “밤늦게 다니면 안 돼. 부모님이 걱정하셔.” 담배도 피우니? 부모님이 아시면….
가만히 듣고 있던 영이 말을 끊었다. 어딘지 모르게 화가 난 것 도 같고 금방이라도 울 것도 같은 얼굴이었다. 내 아빠 아니에요. 그 여자도 엄마, 영이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아니고. 그러더니 다시 몸을 돌려 나가버리는 것이다. 현경은 쫓아나갈 엄 두도 내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쾅, 하고 닫힌 문은 아주 단 단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마, 어마. 아이가 보채는 소리가 들 렸다. 그 날 밤 현경에게 문자가 왔다. 여자의 번호였다. [영이한테 신 경 안 쓰셔도 됩니다. 건우한테만 집중해주세요.] 병실에서 문자를 받은 현경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화면이 연신 깜박였다. 기분이 이
“그런 말을 왜 해.”
상했다. 현경의 핸드폰을 슬쩍 들여다본 남편이 말했다. “뭐야, 당신 그 집 딸한테 뭐 해 줬어?” “아니, 그냥 너무 늦게 들어오길래 뭐라고 좀 했더니.”
당신 일만 잘하면 되지. 남편이 시큰둥하게 말을 이었다. 당장 우리부터 신경 쓰자고. 지현이 학교부터 어떻게 해야 할 거 아냐. “아니, 신경이 쓰이는 걸 어떡해.” 현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여자, 내가 보기엔 남편이랑 사이가 좀 안 좋은 것 같아. 뭔가 좀 이 상하다니까? 남편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집에서 남자 흔적 도 찾아볼 수가 없고. 사실 뭐 막, 영이가 사생아라던가 그런 거 아 닐까? 아니면 그 여자가 딸이 있는데 재혼을 해서 애를 낳은 거지. 그게 건우고. 그 여자는 그 집안에서 자기 위치가 좀 불안하니까 아 들만 애지중지 하는 거고. 맞지, 맞는 거 같애. 현경이 고개를 끄덕
였다. 가만히 들어주던 남편이 이내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하여튼 당신은 그 오지랖이 문제야. 남의 얘기 하는 게 그렇게 좋아?“ “진짜 좀 이상하다니까?”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옆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이 반쯤 잠긴 목소리로 신경질을 냈다. 아, 혼자 쓰는 병실도 아닌데 거 조 용히 좀 합시다. 가뜩이나 병실도 좁아 터지는구만. 남편과 현경이 눈을 맞추고 입을 다물었다. 병실 안은 금방 조용해졌다. 이따금씩 수액이 떨어지는 소리, 누군가 코 고는 소리 따위가 간간이 들릴 뿐 이었다.
그러니까, 틀림없다. 현경이 이유식을 저으며 날카로운 눈으로 집안을 훑었다. 남자 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게 확실했다. 하물며 이 집에서 몇 달을 일했는데 머리카락 한 올도 못 보는 게 말이 되는가. 어떤 이유에 선지 모르겠지만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현경은 거실 한가운데 걸려 있는 커다란 사진을 가만히 바 라보았다. 사진 속의 여자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미묘하게 올라 간 입꼬리로 웃고 있었는데, 새빨갛게 칠한 립스틱이 도드라져 보 였다. 신부화장이 유독 진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여자의 얼 굴은 아주 하얗다. 언뜻 보면 긴장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 여자의 얼굴은 처음 카메라 앞에 서 어색해하는 소녀 같기도 했지만 얼굴 이 지금과 별로 차이가 나진 않았다. 그 옆에 선 남자는 얼굴을 굳
히고 서 있었는데, 여자보다 한참 키가 커서 같이 서 있는데도 붙어 있는 느낌이 안 들었다. 미간을 좁힌 남자는 한 점의 표정도 드러내 지 않고 현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잠깐 돋는 오한에 몸을 떤 현경이 다시 그 둘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영이 있었 다. 예의 그 얼룩덜룩한 얼굴에 여자가 입은 것과 비슷하게 생긴 원 피스를 입고, 불편한 표정으로 뒤쪽에 선, 조그마한 여자아이. 현경 은 다시 식탁 위로 고개를 돌렸다. 현경이 오면 식탁 위는 늘 깨끗 하게 치워져 있었다. 아마 현경이 오기 전에 퇴근한다던 가정부가 치워 놓는 거겠지. 물론 현경이 무언가를 먹지는 않지만, 아이를 먹 이기 위해 냉장고를 열 때면 거의 줄지 않는 식재료들을 보곤 했다. 그러니까 남자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을 뿐더러 여자도 남자도 집 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는 얘기다. 현경이 츳, 혀를 찼다. 그 여자도 불안하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애한테 집착하는 게 아니겠어. 현경이 아이 쪽을 흘긋 바라본다. 아이는 꺄르르 웃으며 오디오 펜을 책에 꾹 누른다. 안녕, 난 뽀로로야! 만화 캐릭터의 음성이 나 오자 아이가 웃으며 다시, 또 다시 펜을 누른다. 아까 카메라가 켜 지는 소리가 들렸으니 여자가 접속 중일 것이다. 이젠 현경도 몇 달 간 일하면서 몇 가지 패턴을 알아냈다.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몇 대나 있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띵 하는 알림음 같은 게 들리고 나면 꼭 여자가 아이에게 말을 걸거나 현경이 하는 일에 뭐라고 덧붙이 곤 했다. 고소한 냄새가 올라온다. 오늘의 이유식은 곱게 간 소고기 와 당근을 넣은 것이다. 아이 때부터 입맛을 들여 놔야지. 현경이 중얼거렸다. 얘기를 알아들은 건지 몇 번 더 펜을 누르던 아이가 이
내 배냇짓을 하면서 말갛게 웃었다. 그걸 보고 있던 현경의 입가에 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정말, 예쁘지 않을 수가 없는 아이였다. 웃 으며 계속 냄비를 젓던 현경의 왼쪽 팔이 조금 저려오기 시작했다. 현경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반대쪽 손으로 주걱을 옮겨 쥐 었다. “아악!” 팔이 엇나간 건 한 순간이었다. 반경이 크게 빗나간 주걱이 냄 비를 확 엎었다. 순간 눈앞이 하얗게 질렸다. 팔이 뜨겁다 못해 얼 음을 끼얹은 것처럼 느껴졌다. 현경의 왼 팔뚝 위에 멀건 죽이 쏟아 졌다. 오랫동안 냄비를 저은 탓에 팔에 힘이 빠져 주걱을 놓친 탓이 었다. 타들어갈 것 같던 팔은 이제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다. 다행 히도 냄비는 바닥이 아닌 싱크대에 엎어져 있었다. 엎어진 냄비 틈 새에서 이유식이 찔끔찔끔 새어나왔다. 그 모양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현경이 이내 물을 틀었다. 치익, 하고 냄비에서 희뿌연 수증기 가 올라왔다. 계속 물을 틀고 있던 현경이 이내 그 물줄기에 팔을 갖다 댔다. 아까는 느끼지 못했던 쓰린 통증이 느릿느릿 올라오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병원에.” 현경이 중얼거렸다. 병원에, 병원에. 그제야 조금 정신이 돌아오 는 것 같아 아이 쪽을 바라봤다. 옥수수를 먹이지 말라던 여자는 그 런 현경을 지켜보면서 아무 말도 없었다. 카메라가 꺼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현경은 가만히 눈을 끔벅였다. 여전히 여자는 잠잠 했다.
아무리 흐르는 물에 대고 있어도 열기가 식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발갛게 부풀어 오른 살갗은 마치 거대한 분홍빛 웅덩이 같 았다. 분화구 같은 팔뚝을 보던 현경은 문득 그 안에서 뭔가 툭 튀 어나올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병원에 가야겠다. 수건에 찬 물 을 적셔 팔위에 얹은 현경이 아이 옆에 앉아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 다. 네. 여자의 그 무뚝뚝하고 건조한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을 타고 넘어왔다. “저, 아까…” 현경이 머뭇거리다 말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여자가 먼저 선수 를 쳤다. “애는요, 멀쩡해요?” 현경이 입을 다물었다. 멀쩡해요, 라니. 어감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마치, 어디 상하진 않았냐고 묻는 것처럼, 장바구니를 떨어 트렸을 때 그 안에 든 것들이 멀쩡하냐고 묻는 것처럼. 네, 괜찮아 요. 현경이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아이는 졸린 건지 눈이 감기고 있었다. 현경이 아이의 등을 살살 쓰 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병원을 좀 가고 싶은데요. 일찍 퇴근할 수 없을까요?” 그럼 아이는 어쩌구요.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현 경이 가만히 아이를 내려다봤다. 감기던 눈은 아예 굳게 닫혀 있었 다. 현경이 아이를 토닥이던 손에 힘을 조금 뺐다. 어떻게 하실 거
냐구요. 여자가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그냥 데리고 빨리 다녀오면….”
“심한 거 아니면 그냥 조금만 참으세요. 오늘 일찍 갈 테니까.” 현경이 전화가 끊긴 핸드폰 화면을 가만히 바라봤다. 띵, 하고 연결이 끊기는 소리가 났다. 문득 현경은 이 넓은 집안이 너무 갑갑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영이 들어왔다. 종종 현경에게 말을 걸던 영은 이따금 언 니가 부럽다는 말을 했다. 현경의 딸이 영보다 두어 살 많다는 걸 알게 된 뒤부터 영은 현경의 딸을 언니라고 불렀다. 언니는 좋겠다. 아줌마는 언니가 먹고 싶다고 하는 거 다 해 줘요? 언니는 공부도 잘 하죠. 언니는 착한 딸이겠네. 영은 식탁에 앉아 아이를 보는 현 경을 내려다보며 그런 말들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니까, 며칠 전 여 자가 문자를 보낸 후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니 실로 오랜만인 것이 다. 영은 가벼워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썩이는 가방을 벗어두지 도 않고 곧장 식탁으로 향했다. 영은 식탁에 앉자마자 아이를 가만 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내가 짐이 되면 그냥 그렇다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현경은 말없이 까르륵거리는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영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말 안 했으면 좋겠어요. 끝까 지 모른척했으면 좋겠어. 그 때 문이 다시 열렸다. 영이 깜짝 놀라 몸을 크게 들썩였다. 현 경도 놀라 고개를 들었다. 이 시간에 영 말고 집에 올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 때 검회색의 정장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막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단단하고 무심한 얼굴이었다. 몸에
딱 맞는 정장 자켓은 아주 비싸 보였다. 현경은 자연스럽게 제 남편 을 떠올렸다. 후줄근한 셔츠, 친근한 미소…. 남자는 급하게 들어와 안방으로 향했다. 서류봉투 같은 걸 들고 나온 남자가 영을 보고 미 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벌떡 일어난 영이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 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근데 넌 왜 여기 있니.” 남자의 말에 영이 어색하게 시선을 굴리다 제 방으로 뛰쳐들어 갔다. 남자가 쯧, 혀를 찼다. 커다란 거실에는 정적만이 맴돌았다. 똑, 똑, 시계 분침 소리와 아이가 배냇짓을 하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잠깐 아이를 보 더니 웃었다. 현경은 그제야 아이를 안아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독 큰 키의 남자는 사람을 내리 누르듯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주 눅이 드는 느낌이라 현경이 조금 어깨를 움츠렸다. 팔이 화끈거렸 다. 이리 온. 남자가 팔을 내밀며 웃었다. 현경이 조금 급하게 말을 붙였다. “저, 애가 방금 밥을 먹어서…”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리온, 까꿍. 남자는 이제 혀까지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기어코 현경의 품에서 아이를 앗아가다 시피 하는 것이다. 아이가 놀라 히끅,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막 안으시면…,” “제가 아빱니다. 아주머닌 신경 쓰지 마시고 할 일 하세요.” 남자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응, 아가. 남자가 아이와 눈을 맞추고 활짝 웃었다. 아이의 낯이 더욱 창백하게 질
려간다. 아이가 그의 품에서 발버둥을 쳤다. 괜찮아, 괜찮아. 남자 가 억지로 아이를 고쳐 안으며 토닥였다. 현경은 그 모습을 지켜보 며 멍하니 서 있었다. 팔뚝의 화끈거리는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홈, 스위트 홈. 광고의 나레이션 목소리가 얼핏 귓가에 어룬댄다.
오후 시, 현경은 오늘도 비행기가 되었다. 7 “자아, 비행기가 들어갑니다, 아아, 옳지, 잘 먹네.” 현경이 기계적으로 비행기를 흔들다 아이가 수저에 정신이 팔 린 새 수저를 안으로 쑥 집어넣었다. 숙련된 솜씨였다. 요즘 들어 커서 그런가, 아이가 밥을 먹을 때마다 집중력이 자주 흐트러졌다. 여기를 봤다가, 또 저기를 보고. 물론 그 나이 때 애들이 다 그렇긴 했다. 현경은 다시 이유식이 담긴 수저를 앞뒤로 흔들며 위쪽을 흘 긋 쳐다봤다. 여자는 여전히 저를 지켜보고 있을 테였다. 수저를 든 팔에 붙은 거즈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따라서 덜렁댔다. 현경은 문 득 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 시간이 한참 지나서 흉이 크게 질 거라 던 의사를 떠올렸다. 더 이상 이유식이 입 안으로 들어오지 않자 아 이가 손끝으로 현경의 옷깃을 잡고 보챘다. 아이구, 잘 먹는다. 현 경이 다시 입을 벌린 아이의 입 속에 수저를 집어넣었다. 명치께가 답답했다. 여자의 집은 여전히 좁다.
광장을 나서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임민영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은 소외된다. 그중 누군가는 눈에 띄어서도 안 되고
, 일상이 휘발된 자리에 남은
(「투명한 존재」) 쓰레기들을 주워야 한다 (「가로등의 시간」) 행나무 (「은행나무 사거리 - 번길 행복고시원 앞」) 16 4 어 벨트를 타고 나온 가방 (「어떤 사람의 발자국은 혼자 소리가 날 것 같 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무수히 많은 세상을 다」) 잘라다 붙여 놓은” (「모자이크」) 이 작품을 ‘광장’이라고 부른다. 광장 한복판에 서서, 보이지 않는
. 자신을 몸통이 꺾인 은 나, 공장의 컨베이
모자이크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들을 실선으로 이어가며 기록한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끝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기대에 부푼 채 산책로를 통과하고 나면 분수대가 독자를 환영
한다. 투명한 사유를 끊임없이 내뿜는 분수대는 작가와 함께 광장 의 중심을 책임진다. 「방황하는 자를 위한 등불」은 김현의 평론 집과 이에 대한 김윤식의 분석을 다룬다. 작가는 기존의 비평을 검 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고찰을 보여준다. “어쩌면 비평은 타 인의 등불을, 그 뿌리를 발견해내는 읽기의 작업인지도 모른다.” 이 는 「빚, 굴레, 유대」에서 분명하게 증명된다. 작가는 금전적인 부 채뿐 아니라 사회적 역할과 개인적 관계에서 오는 압박감과 책임감 또한 빚으로 인정한다. 독자 자신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고심했 던 마음을 조명함으로써 빚 너머를 살아갈 용기를 발굴한다. 작가의 섬세한 빛은 「소설에 대한 소설 쓰기: 최제훈론」에서 도 발견된다. 작가에 따르면 최제훈의 소설은 인물의 입에서 입으 로, 이 소설에서 저 소설로 넘어가는 구전성이 뛰어나다. 반전은 그 이야기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느 독자라면 이 지점 에서 발을 멈추겠지만 작가는 소설의 내용뿐 아니라 기능에도 집중 한다. 최제훈의 소설들이 복제품인지 새로운 환상문학인지를 의심 하는 작가의 시선은 예리하다. 「분리된 자아, 너머의 세계」는 임 솔아의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다룬다. 시집의 자 아는 분열하는 와중에도 범죄 및 재난의 피해자나 비인간에 연결된 다. 이 연결은 지구라는 가짜 “모형”
안에서나마 공동체적
(「모형」) 유대감을 지속하고자 하는 노력이기에 결코 사소하지 않다. 작가는 시인의 이러한 연결선을 독자에게까지 이어준다. 광장의 중심을 지나면 그 뒤에는 벤치가 있다. 독자는 벤치에 앉 거나 누워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것을 기대하지만 세 편의 소설들
은 이 착각을 비웃는다. 「홰」에서는 고국으로 가려다 사망한 이 주 노동자 부티마, 닭장을 탈출해 짐승에게 잡아먹힌 닭들, 할머 니의 폭력에서 벗어나려다 실패한 현이 나란히 겹쳐 보인다. 「관 창」의 는 소화전의 관창을 떼어 판 일로 인해, 친구 김씨가 화재 Z 로 죽을 뻔했다는 것에 놀란다. 하지만 이후 김씨가 헌금함을 훔치
는 것을 목격하고 회의감을 느낀다. 「홈 스위트 홈」에서 현경은 베이비시터 일을 하느라 큰 화상을 입어도 병원에 갈 수 없다. 홈 는 근무지인 집을 더욱 좁고 답답하게 만든다. 소설에서 공 CCTV 통으로 나타나는 노동에 대한 압박과 물질적‧사회적‧심리적 부
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처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어떤 독자는 그들이 계급의 전복을 꿈꾸지 않는, 지나치게 소극 적이고 무력한 인물임에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이곳 현실의 실제가 아닌가. 작가는 이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재구성하였 을 뿐이다. 현실뿐 아니라 광장에도 자본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이 없다는 사실은 작가 역시 광장을 벗어나지 않은 채, 관찰하며 기 록하기로 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섣불리 발걸음을 내디디기보다 는 작가의 곁에 머무르며 그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 더 좋은 선택 처럼 느껴진다. 광장을 나서라고 마련해준 자리에서 감히 이런 선 언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작가의 곁을 떠날 준비가 나는 아직
찾아온 빛
되지 않았다. 갑자기 날아든 씨앗
(「투명한 존재」) 처럼, 처음으로 불린 별명 (「빚, 굴레, 연대」) 산뜻하고 새로운 확장을 응원할 뿐이다.
처럼, 빌려준 만큼 처럼
(「관창」)
광장을 나서며
거대한 광장 한복판에서 막 빠져나온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광장 한복판에 있습니다.
처음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면접을 보러 오던 날이 생각납니 다. 지하철을 오래 탄 탓에 조금 피곤했고, 바람이 차가웠으며 학교 의 모든 모서리가 새로웠습니다. 이제 그 모서리들이 절반쯤 눈에 익어가는데, 벌써 졸업이 손에 잡힐 듯 가깝네요. 혼자였다면 결코 마치지 못했을 여정의 끄트머리에서 감사 인 사를 전하고 싶은 분들이 많습니다.
우선 해설을 써 준 민영, 정말 고마워. 서로의 첫 책에 해설을 써 줄 수 있는 행운이 삶에 몇 번이나 찾아올까? 만듦새가 엉성한 비
평을 구석구석 꼼꼼히 뜯어보고 첨언해 준 윤희야, 네가 없었다면 부채론을 완성하지 못했을 거야. 너와 함께 공부한다는 사실이 년 4 동안 얼마나 위로였는지 전부 전해진다면 좋을 텐데! 나의 가장 멋
진 친구 예빈아! 문학 이론과 평론 이야기를 진지하게, 또 깊게 나 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최고의 행운이지. 나를 행운아로 만들 어 줘서 고마워. 반드시 네 이름을 지면에서 보게 될 거란 확신이 있지만, 그 시기가 조금 더 빨리 오기를 바라는 건 나의 욕심일까? 오랫동안 함께 글을 써 온 주현, 너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수있을 것만 같아. 고마워. 언제까지고 너와 이상한 농담을 하며 웃고,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어. 같은 학교를 두 번이나 다닐 수 있는 행 운을 선사해 준 가영, 은지, 윤희, 승연 고마워. 더 이상 학우가 아니 더라도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자. 무엇이든 함께 보고 쓰자고 전화 하면 귀찮은 내색 없이 함께해 주었던 민아야, 항상 고마워. 곧 다 른 전시를 함께 보자! 맛있는 밥을 함께 먹고, 내 평론에 칭찬을 아 끼지 않아 주었던 현정 고마워. 네 친구임에 언제나 감사해. 여름방 학 때 소설 모임에 함께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채연, 정온 고마워. 너희의 소설을 곧 지면에서 볼 수 있기를! 기 친구들 전부, 어디 34 선가 함께 글을 쓰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너희가 있다고 생각하며
무수한 날들을 버틸 수 있었어. 고마워. 그리고 나의 귀여운 행운 아이템들. 예진, 승민, 채영, 효빈, 유 니게! 너희가 있어 학교 생활이 더욱 즐거웠어. 졸업하고도 계속 만 나고 싶다고 해 준 지원, 고마워. 덕분에 작품집 편집을 마칠 수 있 었어. 졸업 준비에 지쳐 있을 때 귀여운 감자 이모티콘을 보내 준
이진 언니도 고마워. 언니의 졸업 전시에도 갈 수 있길 바랄게. 학 교 생활을 이끌어 준 혜린 언니, 혜란 언니, 예본 언니, 기원 선배, 동현 선배 고맙습니다. 강의실에서 간식을 나눠 먹곤 했던 민지야, 고마워. 매미가 울던 여름부터 겉옷을 껴입어도 추위에 떠는 겨울까지 함께 울고 웃으며 쓴 작업 스터디, <스파르타 창작실> 멤버 원영, 건영 언니, 현아 언니, 규리 언니 정말 고생 많았어. 달에 한 권씩 책 을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 준 <부욱부욱> 멤버 지원 언니, 가영 언니 고마워. 막내 취업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 줄 거지? 어떤 책 이든, 영화든 가리지 않고 함께 보고 토론해 주었던 왕진 언니 고마 워. 더 많은 영화를 보자. 나의 오랜 친구, 나경, 윤아, 보금, 혜림! 아주 오랜 친구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친구이기란 쉬워 보이지만 어려 운 일이지. 항상 고마워. 얼마 전 다정한 인사를 건네 주었던 현경, 고마워. 우리 꼭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 언제 만나도 즐겁게 문학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민, 너와 같은 해에 졸업할 수 있어 기뻐. 졸업 전시의 굿즈를 만들게 되었다고 어설프게 청한 도움에 기 쁘게 응해준 예진, 현서 고마워. 언제나 블룸즈버리, 그리고 너희의 모든 작업을 응원하는 것 알지? 도윤! 함께 글을 읽고, 극을 보고, 수많은 대화를 하며 글을 다시 사랑할 수 있었어. 고마워. 앞으로도 오래오래 맛있는 음식과 좋은 것들을 많이 즐기자!
글이 완성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선생님의 글처럼 들여다봐 주신 복도훈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책의 만듦새를 꼼꼼히 살펴 주신 김미도 교수님, 진로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는 제자에게 따뜻 한 조언을 아끼지 않아 주신 최영희 교수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돈도 안 되는 문학이 하고 싶다고 고집 부리는 어린 딸을 년 동안 묵묵히 지켜봐 주신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7
헬멧을 쓰고 짖는 개처럼
광장을 나선 후에도 읽고 쓰기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눈보라 속에 를 보내는 조난객처럼 SOS 희미하더라도 끝없이 쓰겠습니다.
2023 년 늦가을 김지연
광 장 김지연 | 지음
쇄년월일1 2023 11 9
김지연 펴낸이 도서출판 구주 펴낸곳 김지연 편집디자인 김지연 표지디자인 - - 010 5793 @ 2455 . 전화 fanta1416 naver com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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